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5일 ‘신뢰 외교와 새로운 한반도’ 제하의 외교통일안보 공약을 발표하였다. 이 공약은 지난 날 역대 정권들이 내놓았던 것들을 적지 않게 재탕한 흔적이 역력하다. 등뼈 없는 공약 같은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한다.

박 후보의 안보공약은 논란을 일으킬만한 뜨거운 현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피해갔다.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로서 보수정통의 이념을 소신껏 펼치지 못하였다.

박 후보의 안보공약은 서울과 평양에 각각 ‘교류협력 사무소’ 설치,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기초한 3단계 민족공동체통일 구현, 청와대 내 ‘국가안보실’ 신설, 남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등을 나열하였다.

그러나 이 공약들은 결코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20여 년 전 노태우 대통령부터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들이 내놓았던 흘러간 내용이다. 북한의 변함없고 잔혹한 도발 속에 흘러간 공약으로 ‘새로운 한반도’를 개척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

박 후보의 안보공약은 절박한 현안들에 관해 기피적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천안함 격침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제시한 5.24 조치에 대해선 단호한 말이 없다. 5.24 조치는 천안함 공격에 대한 북한의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 등을 요구하였다.

우리 정부는 ‘선 북의 사과 -후 남북관계 재개’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문제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대화 과정에서 북의 사과를 받겠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도 우선 대화부터 재개해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면 된다고 한다.  

당연히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대선주자로서 박 후보는 안보공약에서 5·24 조치에 대한 결연한 입장을 표명했어야 옳다. 북한이 먼저 사과·책임자처벌·재발방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한 남북정상회담과 북에 대한 경제지원 재개 등은 없다는 등의 날선 공약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단호한 내용을 담지 못했다.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비서와 정상회담도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보수꼴통”으로 몰리게 된다는 점을 겁낸 탓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또 다른 천안함 도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5·24 조치를 흐지부지 넘기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 표출이 필수적이다. 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반드시 집고 넘어서야 할 핵심 현안을 비켜 간 것이다.

그는 대북정책과 관련,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진화’해야 한다”면서 햇볕정책이나 상호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북정책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중대 조건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북한이 남한의 대북유화책에 호응해 함께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퍼주며 비위맞춰준 햇볕정책에도 ‘진화’한 게 없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초기 유화적인 “중도실용” 접근에도 화답하지 않고 도리어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등 잔혹한 도발로 나섰다. 이 대통령을 김대중·노무현처럼 길들이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그러한 북한의 도발 작태에 대한 대응방식은 자명하다. 단호히 대처하는 상호주의 원칙 적용이다. 상호주의 원칙은 5.24 조치 강행을 통해서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박 후보의 외교안보 공약은 “제3의 길” 또는 중도실용으로 어정쩡하게 섰다. 국가의 안보 보다는 젊은 세대와 중도적인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탓이다. 안보 포퓰리즘(대중영합 인기몰이)의 산물이다. 어정쩡한 “제3의 길”로 대한민국의 평화를 다질 수는 없다. 북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만이 요구될 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