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아버지, 친딸 납치 행각 전모
최근 억대 보상금을 노려 친딸을 납치·감금한 비정의 40대 가장과 이를 사주한 공범이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일어났다.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아버지 박모(48)씨와 병원브로커 전모(47)씨가 그 장본인들. 이들 두 사람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돼 숨진 아내의 사망보험금 2억 원을 처가에서 관리하자, 이를 받아내기 위해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범행을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취재결과 밝혀진 박씨의 납치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5년 말께에도 처가에 있는 딸을 납치해 수일 간 가둔 전력이 있었던 것.
사건을 담당한 충남 공주경찰서 관계자는 “박씨는 언어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숫자 개념이 없음에도 불구, 돈에 눈이 멀어 딸을 이용해 이 같은 납치극을 꾸몄다”며 “최근에는 전씨의 부추김에 의해 아내의 사망보험금 권리 여부에 대한 민사소송 및 변호사 선임까지 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동안 충남 공주 시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인면수심’ 아버지의 납치행각 전모를 취재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와 전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인 2004년 초순 경.

‘병원브로커’인 전씨가 우연히 박씨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인해 수년 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박씨에게 접근하면서부터다. 병원브로커란 병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돈 받고 환자를 알선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 박씨의 아내는 지난 1999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돼, 6년 째 병원신세를 지고 있던 터.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의식과 갈수록 나빠져만 가는 건강에 병원 측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던 시점이었다.

전씨는 이러한 내막을 알기 위해 박씨에게 접근, 아내의 현상태와 병원 측의 진단 등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물론 전씨가 박씨에게 다짜고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여느 ‘브로커’들이 그러하듯 전씨 역시 ‘작업’을 위해 주변을 맴돌며 얼굴을 익혔다. 그러던 중 전씨는 박씨가 일반인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박씨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박씨가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점을 이용해 ‘조종’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경찰조사결과 박씨는 8~10세 정도의 연령 수준이었으며, 정신지적능력지수는 ‘38’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내 사망보험금 노려 친딸 ‘납치’

3개월여 뒤, 박씨의 아내가 결국 숨졌고, 이때 전씨는 박씨의 아내 역시 정신지체 장애인이었으며, 이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박씨의 딸을 장인, 장모가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박씨의 아내에 대한 사망보험금이 처가에 지급된 사실도 함께 알게 됐다.

이에 전씨는 박씨에게 일명 ‘남편의 권리 찾는 법’에 대한 강의(?)를 하며, 민사소송을 진행하도록 부추겼다.

이어 전씨는 “처가에서 보호 중인 딸아이를 데려오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납치’라는 위험한 제안을 내놓았다.

사리분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의존하게 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 박씨는 전씨의 말대로 행동했다.

지난 3월 17일 충남 공주시 이인면 모 초등학교 앞. 박씨는 하교하던 자신의 딸에게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승합차에 태우려 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도망가기 시작했다.

딸이 아버지를 보고 도망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 딸은 왜 이렇게 부리나케 도망갔던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박씨의 납치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여 전에도 딸을 납치했던 전례가 있었던 것.

경찰은 “조사결과, 딸은 과거 아버지에게 한번 납치당한 경험이 있어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며 “게다가 딸이 박씨의 손에서 자라지 않아 아버지에 대한 정도 없었을 뿐더러,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창피해서 피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은 “그러나 당시에는 전씨와 공모하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공포의 감금생활

박씨가 향한 곳은 으슥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전씨의 집 근처 개사육장 관리실. 사냥개 10여마리가 풀려 있는 이곳은 10살짜리 소녀가 아닌 건장한 성인남성이라 해도 과연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이들은 이곳 관리실을 딸을 감금할 장소로 사용했다. 딸은 목이 터져라 “살려 달라, 구해 달라”고 소리쳤지만, 주변의 개 짖는 소리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수십 시간 동안 울부짖다 지친 딸이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박씨에게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박씨는 오히려 “네가 협조만 좀 해주면 된다. 재판
이 끝날 때까지만 나와 함께 있자”며 딸을 달랬다.

이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딸이 감금되어 있는 개사육장 관리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납치 당시 목격자의 신고와 실종신고를 받고 비상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이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가 발각된 것.

경찰은 “최근 납치사건이 잦아, 신고를 받고 이번 사건에 공주시내 경찰인력이 투입됐다”며 “딸을 구하기 위해 긴급 출동했는데, 결국 돈을 노린 아버지의 납치극으로 밝혀졌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상황파악을 잘 하지 못하며, 약간의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아버지가 자기 딸을 데려가는 게 무슨 죄냐, 나는 남편과 아버지의 권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려 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장인과 장모는 박씨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

장인은 “2년여 전 딸을 납치했을 때는 오죽 힘들면 그러겠거니 했으나, 이번엔 전혀 모르는 사람과 공모까지 해 치밀하게 납치극을 꾸미고, 민사
소송까지 한 것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라면서 “이건 죽은 딸을 두 번 죽이는 꼴”이라며 분개했다.



#영화 모방범죄 논란

최근 들어 ‘굵직굵직한’ 납치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골프장 부자 납치사건’에 이어 ‘인천 초등생 유괴살해사건’, 심지어 부모를 상대로 ‘납치 자작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영화 ‘모방범죄’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인천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은 ‘이형호 유괴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의 ‘그놈’과 범행대상 및 수법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벌어진 ‘납치자작극’ 역시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본 30대 남녀가 수 천 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모방범죄 논란을 일으킨 영화는 종종 있었다. 영화 ‘친구’와 ‘말죽거리 잔혹사’는 수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뒀지만, 학교 폭력
을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학생들의 모방 비행이 잇따르자 정치권에서 규제 방안을 검토하기까지 했다.

영화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은 지난해 초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이후에도 계속 같은 지역에서 실종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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