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 증발 조희팔 정·관계 전방위 로비 리스트 존재”

▲ 조희팔, 유진그룹으로부터 9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고검 김광준 부장검사가 지난 13일 오후 특임검사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조희팔 자금 은폐한 검사 더 있다” 자금관리 정황도
검·경 ‘검사 비리 의혹’ 수사 놓고 갈등 고조 내막

[일요서울 | 오병호 프리랜서] 중국으로 밀항한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그동안 소문으로 나돌았던 조씨의 전방위 로비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면서 대선정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경찰의 조희팔 자금수사로 촉발된 검찰간부 비리의혹을 수사 중인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서울고검 김광준(51) 검사가 이미 확인된 부산지역 사업가 최모씨 명의의 차명계좌 외에 2∼3개의 차명계좌를 더 개설해 이용한 정황을 포착, 자금 입금 내역을 확인 중이다. 김 검사에 대한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조씨의 전방위 로비 의혹의 불씨도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조씨가 검찰과 경찰의 부실수사 속에 유유히 밀항선을 타고 중국으로 도주하면서 그동안 검·경이 조직적으로 조씨를 비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동시에 조씨가 검·경뿐 아니라 정치권 등 전방위로 로비를 벌였으며 조씨의 뇌물을 받은 이들 중 상당수가 사정기관 고위인사거나 여권 핵심인사일 것이라는 소문도 무수히 나돌았다. 검찰과 경찰은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조씨가 도망친 이후 계속 뒤를 추격하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번 김 검사의 뇌물수수 혐의 중 조씨의 뇌물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검·경을 비롯한 여권핵심부 뇌물수수설도 힘을 받고 있다.

김 검사는 최씨 명의의 차명계좌로 조씨 측근과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내사ㆍ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총 9억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ㆍ알선수재)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지난 14일 “특임검사팀이 김 검사가 최씨 명의의 차명계좌 외에 2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면서 “또 확인된 것 외에도 의심스러운 계좌를 한 개 더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검사의 차명계좌는 ▲부산지역 사업가 최씨 명의의 차명계좌 ▲2009~2010년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재직 당시 이용한 부속실 여직원 명의 계좌 ▲또 다른 인물의 명의로 개설된 것이 확인된 차명계좌 ▲김 검사가 이용한 사실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차명 의심계좌 등 최대 4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임검사팀은 최씨 명의의 계좌 외에 다른 계좌에서는 대가성 있는 돈이 입금됐는지 여부를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검사가 최씨 명의 계좌로만 9억 원대의 대가성 있는 금품을 수수한 만큼 추가로 이용한 2∼3개 차명계좌 입금 내역이 확인될 경우 김 검사의 금품수수 총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임검사팀은 이와 관련, 김 검사가 여직원 명의의 계좌로 모 업체로부터 1억 원 안팎을 추가 수수한 사실을 이미 확인했으며 대가성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계좌의 경우 여직원이 김 검사의 지시를 받고 돈을 입출금한 만큼 통상적인 차명계좌는 아닌 것으로 특임검사팀은 판단하고 있다.

조씨 차명계좌로 로비  

차명계좌와 관련해서도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특임검사팀의 조사가 있기 전인 조씨 밀항 직후부터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조씨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사정기관 인사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돈을 살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와 관련된 정황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황증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따로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최근 김 검사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면서 검찰과 경찰이 경쟁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의식한 기선제압이라고 보고 있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내부 비리를 덮기 위한 긴박한 움직임 아니냐”고 보고 있다. 서로 상대방의 조씨 뇌물수수 혐의를 캐내 더 이상 상대편의 공격을 억제함과 동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조씨 사기사건의 피해자 단체인 바른생활실천시민연대(이하 바실련)의 한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은 조씨 비리와 관련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며 “누군가 먼저 총을 쏘면 맞은 쪽에서 또 한 방을 쏘는 상황이다. 양쪽 다 조씨의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조씨는 사정기관과 정치권 인사들을 상대로 막대한 금품을 살포했다. 어떤 인사가 조씨로부터 돈을 받고 비호해줬는지 우리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조씨를 추적하고 있는 한 인사는 “조씨의 측근들을 상대로 수년간 조사를 벌여왔다. 조씨가 로비를 하면서 로비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조씨 측근으로부터 조씨가 그 리스트 덕분에 아직 무사히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만약 실제로 이 리스트가 존재하고 그 실체가 세상에 공개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바실련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차명계좌를 통해 조씨로부터 뒷돈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에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정치권 인사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리 의혹 검사 더 있다

▲ 조희팔 다단계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조씨의 활동 근거지는 대구경북지역이다. 김 검사는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이 시기 김씨로부터 수사무마 청탁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특임검사팀은 김 검사가 전 국정원 직원의 부인 김모씨로부터 수사무마 청탁과 함께 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와 관련, 지난 11일 서울 강남에 있는 김씨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수사무마 청탁을 하기 위해 김 검사의 근무지를 따라 주소지를 몇 차례 옮겨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히 수사무마 청탁을 위해 근무지를 따라 주소지를 옮겼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청탁을 위해 근무지역을 따라다니며 주소지까지 옮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특임팀 주변에서는 김씨와 김 검사가 청탁 외에 다른 사건들로도 서로 엮여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김씨와 조씨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김 검사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다른 검사들도 조씨 뇌물수수 비리에 연루됐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여러 정황들이 비리 검사가 더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바실련 측은 김 검사의 조씨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그는 조씨의 뇌물을 받은 여러 검사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바실련의 한 관계자는 “조씨 사기 사건 수사와 재판을 잘 살펴보면 조씨와 그 측근들로부터 검사와 법조계 인사들 그리고 경찰 관계자들이 뇌물을 받은 냄새가 풀풀 난다”며 “조씨와 관련된 재판과 검찰 조사는 수백 건에 이르지만 대부분이 무혐의처리나 집행유예 등 피의자들에 면죄부를 주는 일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검찰이 수사를 소극적이거나 아예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이 관계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예컨대 한 검사의 경우 조씨 사건이 발생할 초기 조씨를 조기에 검거할 수 있는 상당한 자료를 손에 쥐고도 이를 혼자 붙잡은 채 수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리고 나중에 피해자들의 수사 요구가 거세지자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처리해 조씨의 밀항을 방조 또는 도와줬다는 것이다.

바실련 측은 “조씨 사건을 조사한 검찰과 경찰은 처음부터 사건을 덮을 계획을 가지고 수사에 임했다”며 “그러다보니 완전히 수사의 기초를 무시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방식으로 수사를 했다. 이를테면 범인이 코앞에 있는데도 잡지 않고 다른 쪽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며 범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바실련 측은 “우리는 사정기관에서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수년간 여러 각도에서 내용을 살폈다”며 “그 과정에서 특정 인사들이 조씨의 로비를 받고 사건을 은폐한 정황을 찾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실련 측에 따르면 조씨 사건을 조사한 검사 가운데 고의적으로 부실수사를 한 이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으며 이 검사들이 조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정황도 상당부분 확보한 상태라는 것이다. 다만 바실련 측은 이 문제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철저하게 조사해 공개할 계획이다.

한편 조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에 유입된 조씨 자금이 1조원대에 이른다는 소문까지 확산되고 있다.

또 현 정부의 고위인사 중 2~4명 정도가 조씨의 해외 도피에 관여했으며, 조씨의 사업에 이들 고위인사들의 측근들이 협력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들에 따르면 조씨 사업에 핵심적으로 개입한 A씨의 경우 현 정권의 핵심실세 K씨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공공연하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바실련에 따르면 조씨가 밀항할 당시 경찰의 움직임이 석연치 않다. 이에 “경찰이 윗선의 별도 청탁 없이 움직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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