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조흥은행직원 400억원대 횡령사건과 관련, 지난 2월 해당 증권사로부터 ‘의심스러운 금융거래 보고’를 받고도 묵살해 결과적으로 손실액이 수백억원대로 늘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재경부는 특히 사건이 불거지자 조사를 맡은 금융감독원 등에 “재경부가 (2개월 전)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론 등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협조요청을 하는 등 보고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일요서울>이 단독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트레이드증권은 조흥은행 자금부 대리 김모(31)씨의 수상한 금융거래 내역을 금감원에 보고하기 2개월여 전인 지난 2월7일 재경부 소속 금융정보분석원(이하 FIU:Korea Financial Intelligence Unit)에 이미 조사의뢰 보고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이는 지금까지 이 사건과 관련해 이트레이드증권이 지난 4월14일 금감원에 처음으로 조사의뢰를 한 것으로 공식 발표된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트레이드증권의 오광배 컴플라인언스 팀장은 “지난 2월 초 고객의 손실과다 계좌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은행의 뭉칫돈이 개인 증권계좌로 여러 차례 들어오는 데다가 손실이 한 번에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등 김씨의 수상한 금융거래가 포착됐다”며 “이에 따라 지난 2월7일 이 같은 내용과 함께 김씨의 개인 금융정보 및 조사의뢰를 전자메일로 재경부 FIU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트레이드증권에서 재경부 FIU에 올린 보고서는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금융기관과 보고책임자의 명의로 작성됐다. 보고서에는 김씨의 거래일자 및 현금 수표등 거래수단, 거래방식, 총 금액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또, 김씨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신상정보와 계좌 정보, 거래종목 등이 적혀 있다. 이트레이드증권은 보고서에 ‘김씨가 한번에 몇십억원대의 고액거래자인데도 불구, 김씨의 소재지가 서울 소재 부촌(富村)이 아닌 점과 연령이 젊은 점 등을 고려, 김씨의 의심스런 거래 형태가 엿보인다’고 설명했다.오 팀장은 “보고를 올린 후 곧바로 FIU로부터 조사의뢰 보고에 대한 접수를 확인하는 접수증을 회사 메일로 보내 왔으며, 보고내용과 접수증은 현재 회사에서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금감원도 현재 이트레이드증권의 관계자들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재경부 소속 FIU에 제출한 보고내용과 접수증을 확보했으며, 정확한 경위를 조사중이다.

그러나 재경부는 의심스러운 금융거래에 대한 해당 증권사의 보고를 받아 놓고도 이 같은 사실을 2개월이 넘게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재경부가 이트레이드증권의 조사의뢰에 대해 즉시 조치를 취했다면 조흥은행의 손실규모가 최소화될 수 있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이트레이드증권이 재경부에 신고한 2월 당시만해도 김씨의 조흥은행 고객돈 횡령액은 80억원 가량이었다.재경부 소속 FIU는 지난 2001년 11월 금융기관을 이용한 범죄자금의 자금세탁과 외화 불법 유출 방지 등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특정금융거래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2천만원 이상의 혐의거래에 대해서 FIU에 이를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또한 보고를 받은 FIU는 검찰, 경찰, 국세청 및 금감원 등에서 파견된 분석위원실로 보고사항을 배당, 원장의 결재를 받아 2개월 이내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내부 업무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경부 FIU가 어떠한 이유로 2개월이 넘도록 이번 사건을 묵인내지 방치해 왔는지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트레이드증권은 재경부 FIU에 수상한 금융거래에 대한 보고를 올렸는데도 2개월여가 넘도록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김씨의 손실규모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부득이 금융감독원에 이 사실을 추가로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업계의 관계자는 “이트레이드증권이 뒤늦게나마 금감원에 사건을 접수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5월 선물· 옵션 만기를 앞두고 주가가 계속 하락할 경우 김씨의 횡령액은 자칫 1,000억원대로 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FIU의 김석동 원장은 “직무상 어떠한 사실도 대외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며 “금융정보분석원이 사전에 이 같은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 및 처리과정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경부 FIU는 조흥은행직원 횡령사건의 파문이 확산되자 이 사건을 조사 중인 금감원 등에 “2개월 전에 재경부 FIU가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았다는 내용을 언론 등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협조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은폐의혹까지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금감원에 친구도 많고 평소 금감원 고위 관계자들을 잘 알기 때문에 (사건 발생 이후) 사적인 전화 통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 어떠한 협조요청도 한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김 원장에게 협조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금감원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사고 경위에 대한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

업무지침상 2개월 이내에 모든 분석작업 종료해야금융정보분석원(FIU:Korea Financial Intelligence Unit))은 재경부 소속으로 지난 2001년 금융기관을 이용한 범죄자금의 자금세탁행위를 예방하고 외화의 불법 유출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이에 따라 FIU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내용을 보고받고 국내외 각종 관련 정보를 연계해 심사·분석한 후 혐의 거래인 경우에는 검찰 등 법 집행기관에 통보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금융회사는 한화 2천만원이나 외화 1만달러가 넘는 금융거래 중 돈세탁 등 불법성이 있어 보이는 거래에 대해 즉각 FIU에 보고토록 의무화 하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 금융회사가 의심스런 금융거래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 하도록 법규로 명문화 시키지 못한 금감원에 비해 한 단계 높은 강제성을 띠고 있다. 2실 4과로 구성돼 있는 FIU는 금융회사로부터 혐의거래 보고가 접수되면 관련 법령상 행정자치부, 경찰, 건강보험 등 관계 행정기관에 해당자의 전과기록 및 재산상황, 신용불량 여부, 부동산 보유 여부 등 행정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외환거래일 경우에는 해당 계좌에 대한 계좌추적권도 가지고 있다. 분석 위원은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감원 등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로 내부업무지침상 2개월 이내에 모든 분석 작업을 마친 후 혐의가 있을 경우 법집행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도록 돼 있다. 모든 관련 서류는 5년간 보관토록 돼 있으며, 혐의거래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불필요한 서식 절차를 없앤 온라인 정보시스템이 지난해 12월부터 가동 중에 있다.

조흥은행 직원 400억대 횡령 사건은

김씨, 한 차례에 70~100억원 ‘배팅’지난 4월 14일 조흥은행 자금 결제실 김모 대리가 고객돈 400억원을 빼돌려 이중 330억원을 날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대형 금융사건.김 대리는 작년 11월 23일부터 올 3월말까지 은행 ‘기타 차입금’ 계정에서 400억원 가량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대리는 이 돈을 증권사에 개설된 본인과 가족 명의의 계좌를 통해 선물·옵션에 투자, 약 332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잔액 68억원에 대해서는 지급 정지 조치가 취해졌다. 조흥은행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은행간 자금이 이동할 때 ‘BOK 와이어(한국은행 자금 결제망)’가 사용되는데 김 대리는 타 부서가 다른 곳으로 자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이체지시서’ 메일을 위조한 뒤 상사의 결재를 받아 자금을 증권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리는 사건 초기에는 5억원에서 10억원 단위로 투자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금을 회수하기 위해 한 번에 70~100억원가량을 투자하는 등 대담함을 보였다. 금감원은 사고발생 원인 및 내부통제시스템상의 문제점이 파악되는대로 조흥은행 관련자와 감독자에 대해 엄중 문책할 방침이어서 대대적인 인책이 뒤따를 전망이다. 조흥은행은 지난해 2,652억원대의 흑자를 남겼으나, 김씨가 횡령한 돈은 지난해 이 은행 순익의 15%에 이르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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