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활용하라” 잊혀진 인물들, ‘대선판’은 ‘복귀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을 지낸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등 상도동계 인사들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희무 전의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김덕룡, 문 후보,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이신범 전의원.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3김 시대 인사 등 DJ·YS 영향력 업고 ‘화려한 복귀’
김현철·김덕룡 등 상도계 文…한광옥·한화갑 등 동교동계 朴 

대선 때마다 ‘올드보이 귀환’에는 아주 특별한 패턴이 있다. 대선 후보들을 적극 지지하며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주군의 정신을 논하는 얘기가 꼭 등장한다. 정치권에 등장하기 위한 일종의 명분이다. 물론 조금은 다르지만 올드보이들의 귀환 사례는 거의 유사한 형태를 띤다. 다만 이들의 등장에 정치권은 의구심을 갖는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퇴출당한 이들이 과거만큼 영향력이 있을까, 지지한다고 해도 표로 돌아올까, 아니면 재기를 노리기 위한 것일까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초박빙 승부를 펼치면서 ‘거물급 인사 영입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 한 획을 그었던 이른바 ‘올드보이’들이 그 대상이다. 각 당에서 외면 받았던 여당인사는 야당 후보를, 야당인사는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올드보이 귀환’ 명분은 ‘대통합’이다. 우리 시대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을 해결하자는 목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 합당, 총선과정을 거치며 공천에서 떨어진 이들이 반대진영에 몸을 담았다는 점은 의혹의 시선을 쉽게 거둘 수 없는 이유다.

여민리서치 이은영 대표는 지난 12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안고, 마지막 도전을 하는 것이고, 문재인 후보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안고 도전한다”며 “우리사회는 새로운 사회로 도약하느냐 못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때문에 올드보이들의 귀환은 한 시대가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공천에서 탈락하고 당에서 외면 받았던 인사들이 대거 상대진영으로 지지선언을 했기 때문에 그 이면에 ‘음모’가 있다는 인식이 짙다. 때문에 국민들은 ‘올드보이 귀환’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광옥·한화갑·박세일 朴 지지

올드보이 귀환의 막을 올린 인사는 새누리당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다. 전북 전주 출신인 한 부위원장은 호남의 정신적 리더였던 DJ의 정치적 동지로 일컬어지는 동교동계의 핵심이다. 특히 DJ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5일 박 후보를 지지, 새누리당에 합류했다. 남남갈등이 존속되는 한 남북통일은 멀어진다는 이유를 붙였다.

이를 기점으로 ‘올드보이 영입전’이 막을 올랐다. 한 부위원장 뒤를 이어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도 올드보이 귀환을 알렸던 것이다. 지난 11월 박 후보를 지지선언,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이 전 대표는 “좌파정권이 출현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박 후보를 적극 지지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평당원으로서 적극적으로 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지난 12일에는 강원도 유세를 통해 문 후보 지지선언을 한 안철수 전 후보와도 불꽃 튀는 지원유세를 벌였다.

한화갑 전 대표도 올드보이 귀환 대열에 합류했다. 전남 신안 출신인 한 전 대표는 권노갑 민주당 고문과 함께 동교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리틀 DJ’로 불렸다. 민주당 내 친노(親盧) 세력에 대한 불만이 많아, 지난 4월 총선 직후에는 “문재인 상임고문이 대선 후보가 되면 민주통합당은 필패”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가 박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동교동계가 발칵 뒤집혔고, 동교동계 인사들로부터 역공을 받기도 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올드보이 귀환 멤버 중 하나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영입됐던 그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제정 문제를 놓고 박 후보와 갈라섰다. 그런 그가 지난 5일 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길이 시대가 잘못되는 것을 막고, 나라를 구하는 애국의 길이자 ‘선진화와 통일’로 나가는 역사의 대의에 맞는 길이라는 이유였다.

이 외에도 이인제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은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의 합당을 통해 합류했고, 지난 총선에서 이해찬 전 대표에게 패배한 심대평 전 대표도 박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충청권의 맹주로 불리는 김종필 전 총재 역시 박 후보를 지지해 박 후보는 올드보이를 통해 ‘보수대결집’을 이뤘다.

윤여준·김덕룡·정운찬 등 文 지지

민주통합당 문 후보 진영에서도 이와 같은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올드보이들이 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해 16대 총선과 대선 때 선거 전략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여의도연구소장을 두 차례 지낸 윤여준 전 장관은 지난 9월 문 캠프에 합류했다. 문 캠프로서는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까지 끌어안아 외연을 넓히겠다는 의도에서 그를 영입했다. 문 후보 측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드보이로 분류되는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도 지난 10일 문 후보를 지지했다. 박 후보의 당선은 역사의 후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김 의장은 MB정부를 탄생시킨 6인회의 멤버로서 지난 총선에서 MB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DR이라는 약칭으로 유명한데 영문이니셜이 비중 있는 정치인에게만 붙는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캠프 한 관계자도 지난 11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DR이 문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PK지역 분위기가 급격히 좋아졌다”며 “PK지역에서 40%이상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운찬 전 총리도 11일 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윤여준 국민통합위원장과 박영선 공동선대본부장이 정 전 총리 영입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총장 출신인 그는 MB정부의 국무총리에 올랐던 거물급 인사로 17대 대선에서 당시 여권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국무총리 이후 국민들에게 잊혀진 얼굴이었지만 문 후보를 지지하면서 단번에 문재인 정부 탄생 시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문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YS-박근혜 갈등에는 김 전 부소장의 공천문제가 기폭제가 된 바 있다. YS는 아들 현철씨의 공천을 줘야 한다고 한 반면, 박측에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

그래서일까. 김 전 부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의 민주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의 묵시적인 동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도 문 후보를 지지했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 은평을에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을 이기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고, 당도 자취를 감췄다. 이 때문에 그를 정치권에서 멀어진 사람, ‘올드보이’로 규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여야 모두 거물급 인사 영입전에 나선 것은 초박빙 구도 속에서 조금이라도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막무가내식 영입전, 그리고 잊혀진 인물들의 재등장은 한국 정치사에 현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대선은 ‘올드보이 복귀판’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됐다.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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