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류 원혜영, 쇄신파 이종걸, 초·재선그룹 박영선 추대

▲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단 오찬에서 박기춘 원내대표와 상임고문단이 비상대책위원장 선출을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대선 패배 후 격랑에 휩싸인 채 표류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이 박기춘 원내대표를 새롭게 선출한데 이어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을 위한 막판 작업에 돌입했지만 최종 인선까지는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계파 갈등을 없애겠다던 민주통합당은 각 진영이 자파(自派) 후보를 내세움으로써 주류-비주류 간 갈등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비대위 구성 이후에도 ‘친노 책임론’ 및 ‘당 쇄신 방향’을 놓고 계파 간 입장차가 커 당내 잡음과 갈등이 더욱 표면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다.

“그 나물에 그 밥, 사심만 가득”

민주통합당이 당 수습책을 마련할 비대위원장 인선을 위한 공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고위정책회의에서 비대위원장 선임과 관련 “오는 9일 의원총회와 당무위원회 연석회의를 통해 최종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끝까지 총의를 모아 혁신의 신호탄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좌클릭, 우클릭이 아니라 오직 국민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전했다. 이어 “낡은 이념을 벗어나서 진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비대위원장을 당의 총의로 뽑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전날 열린 당직자 시무식에서 “비대위원장을 추대로 결정하기 위해 많은 의견을 들었지만 현장에는 사심과 사욕이 득실거린다”며 “사심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듣는 비대위원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각 계파에서 자신들의 대표 주자를 비대위원장에 내세우며, 주류-비주류 간 갈등 양상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에서 패한 뒤에도 여전히 당권만을 염두에 두고 상대방 견제에만 골몰하는 현 상황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실제로 범주류에 속하는 인사들은 원혜영 의원을, 486 및 초·재선의원은 박영선 의원을, 비주류인 쇄신파 의원들은 이종걸 의원을 각각 추대하고 있으며, 일부 진영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불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선대위에 몸담았던 안경환 새정치위원장이나 윤여준 환경부장관, 야권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비대위원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외부인사에게도 개방돼있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당내에 있어야 당을 많이 이해한다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다만, “위원장이 당내에서 되면 외부 비대위원들을 영입하자는 의견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중진그룹, 누구 밀까?

당내 일각에선 당초 비대위원장으로 정세균 상임고문이나 김한길 전 최고위원 등 일부 중진인사들이 거론됐다. 박 원내대표 역시 정 고문과 김 전 최고위원 그리고 박병석 국회부의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고문과 김 전 최고위원 모두 이를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원장에 인선될 경우 차기 지도부 진출이 가로막히고 또한 대선 패배 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현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부담감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당 상임고문단과 오찬을 갖고 비대위원장 인선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정세균 고문이 범주류에 속하지만 정동영 고문을 비롯해 대부분의 상임고문단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비주류에 속한다.

고문단은 이 자리에서 “선거 패배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과 수수방관했던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엄정한 선거 평가를 위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주류와 비주류 모두를 배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각 진영 ‘자파 후보’ 추대

외견상 계륵이 돼버린 비대위원장에 눈독 들이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스스로 나서겠다는 인물도 전무하다. 하지만 당 쇄신에 대한 방향타를 잡고 차기 전당대회를 주도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라는 점에서 각 진영은 자파 후보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친노계 주류와 일부 중진 그룹에선 원혜영 의원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유인태 의원 등 일부 중진 원로 그룹은 지난달 말 모임을 갖고 원 의원을 추천키로 하고 박 원내대표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의원은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출범 이후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야권통합정당의 임시 공동대표를 맡아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1.15전대를 준비한바 있다. 이 때문에 관리형 인사로 적합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반면, 쇄신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측에서는 이종걸 의원을 내세우고 있다. 이 의원은 비주류 의원들로 구성된 ‘쇄신모임’의 좌장격을 맡고 있으며, 그간 당 주류에 맞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쇄신모임 소속 의원 10여명도 지난달 30일 회동을 갖고 비대위원장 3대 조건으로 △특정 계파로부터 자유로운 자 △대선 패배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 △개혁적 이미지를 지닌 인사 등의 기준을 정하고 이 모임 소속인 이 의원을 적임자로 추천키로 의견을 모았다.

주류와 비주류 측 지지 후보가 각기 다른 가운데 주류 측은 혼란을 막고 당의 조기 수습을 이유로, 비주류 측은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과 당 쇄신을 이유로 서로 다른 계파의 카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주류와 비주류 인사가 추천하는 양강 후보 속에서 일부 486 인사들과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영선 의원이 추대되는 분위기다.

당내 합리적 개혁파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박 의원은 특히 젊은 의원들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으며, 야당의 선명성과 쇄신 그리고 화합을 위한 최적의 인물로 지목되면서 출마를 권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박 의원이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일정부분 통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당내 일각에선 김부겸 의원과 이낙연 의원 그리고 이석현 의원 등도 비대위원장에 거론되고 있다.

쇄신형에서 관리형으로

민주통합당은 당초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쇄신형’ 비대위원장이 당 쇄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다. 그러나 계파 간 이해가 갈리면서 ‘관리형’ 비대위원장이 필요하다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상임고문단도 박 원내대표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입장이 관리형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점은 아직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류 측 인사들의 입김이 일정부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아울러 주류-비주류 간 계속된 반목에 당 중진 및 고문단이 관리형 체제를 통한 안정화를 요구한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당내 일각에선 중도 성향을 지닌 원혜영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원 의원을 비대위원장에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하지만 원 의원이 범주류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참신한 인물이 인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허나 이들은 당내 소수파인 비주류에 속한 한계를 지녔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대위원장 인선이 계파갈등으로 치닫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또 다른 측에선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당 중진인 이석현 의원은 “비대위원장을 두고 계파간 자기 사람을 내세우며 아웅다웅할 바엔 중도적인 사람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낫다”며 “박기춘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직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다만, 이럴 경우 ‘비대위원장-원내대표 분리’를 주장했던 박 원내대표가 스스로의 주장을 뒤엎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당내 비판이 따를 수 있고, 결국 이는 박 원내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비주류 측에서는 그간 계속해서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쇄신형 비대위원장 체제를 요구했다. 반면, 주류 측은 당 안정화를 위한 관리형 비대위원장 인선을 요구했다. 다만, 관리형 체제로 전환되면서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조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 상임고문단은 “비대위는 차기 지도부를 세우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데 전념하고 지난 총선과 대선에 대한 엄정한 평가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며 ‘관리형’ 비대위원장에 무게를 뒀다. 신기남 고문도 “당의 진로 문제는 전당대회에서 진검승부를 통해 하는 것이 좋다”며 “비대위원회는 징검다리니 비대위원장은 짧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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