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자 약속의 향방은


- 정부, 예산안서 농협 1조 현물출자 대신 340억 이차보전 전환
- 산은 민영화·농림부 예산뿐 아니라 중앙회-지주 간 알력도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가 경제 부문과 금융 부문을 나누는 신경분리를 단행한 후 맞이한 새해 첫 예산안에서 정부 지원 1조 원 현물출자의 꿈이 날아가 울상이다. 대신 연 340억 원의 이차보전을 약속받았지만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는 향후 현물출자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최원병 회장이 MB정권 말기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MB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최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신년사에서 “‘어떠한 난관을 만나도 조금도 두려워할 바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소외구(無所畏懼)의 기개를 제안한다면서 농업인과 고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끊임없는 변화와 쇄신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에 닥쳐 온 난관은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약속한 1조 원의 현물출자가 340억 원의 이자지급 대납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농협에 대한 1조 원의 현물출자 대신 농협발행채권(농금채) 1조 원에 대한 이자 연 340억 원을 대납하기로 했다.

농협이 경제와 금융 부문을 각각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지 10여 개월이 흘렀지만 정부의 약속 이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3월 농협의 신경분리 당시 사업구조 개편을 5년 앞당기는 대신 총 5조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중 4조 원은 농금채 4조 원에 대한 이자 연 1600억 원을 5년간 지원하고 나머지 1조 원은 산은금융지주와 한국도로공사 주식을 5000억 원씩 현물출자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산은금융 주식을 현물출자하면 자칫 산업은행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 6월 제출된 산업은행 외채 국가보증 동의안은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산은 민영화 문제가 난데없이 농협에 큰 불똥을 튀긴 셈이다.

급한 대로 농협은 해당 현물출자분을 이자대납 방식으로 돌려서 지원받는 이차보전 방식을 건의했다. 정부는 이를 수락했고 올해는 이자를 대납하더라도 내년에는 못다 한 현물출자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구성되면 이와 같은 방침이 어떻게 전환될지 모른다.

농협 신경분리 부추긴 정부는 뒷짐만

앞서도 농협에 대한 정부지원은 계속해서 논란을 빚어왔다. 김영록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농업경제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구실로 사업구조개편을 밀어 붙이더니 농협법 개정 시 약속했던 사항들이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농협법 개정 시 부족자본금 지원을 먼저 경제부문에 배분하고 정부가 차입을 통해 부족자본금 전액을 지원하라는 부대의견을 달아 통과시켰음에도 정부는 농협 자산 실사와 경제사업활성화 용역 결과 제시한 부족자본금 6조 원 지원 요청을 묵살한 바 있다면서 결국 정부가 농협 신경분리 직전에야 지원내용을 이차보전 4조 원과 현물출자 1조 원으로 바꾸고 당초 중앙회를 통해 지원키로 했던 약속을 어기며 현물출자 1조 원을 금융지주에 직접 지원한다고 바꿨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의원은 게다가 정부가 유동성이 전혀 없는 산은과 도로공사 주식으로 각각 5000억 원씩 총 1조 원을 출자하겠다고 하는데 산은과 도로공사 모두 비상장 공기업으로 유동성이 전혀 없어 2012년 예산안 통과 시 유동성 있는 현물출자 지원을 명시한 부분과 배치된다면서 더구나 도로공사 주식으로 출자를 받을 경우 도로공사 주식과 농협금융지주 우선주의 가치증가 차이로 상환시점에는 지원받은 도로공사 주식 외에 추가로 약 945억 원의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중앙회-농협금융지주의 묘한 알력 다툼

일각에서는 이러한 출자 방식 변경이 농협에 대한 지원을 점차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농협중앙회 노조는 올해 예산안에서 제시한 이자대납은 합의금이나 다름없다고 비판 중이다.

허권 농협중앙회 노조위원장은 정부가 약속했던 현물출자 대신 이차보전으로 돌린 것은 대국민 약속을 파기하고 합의금을 준 것이라며 향후 농협뿐 아니라 금융노조 차원에서 대응해 정치권을 압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이 이차보전을 건의한 배경에는 농협금융지주(회장 신동규)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숨어있다.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는 농협에 대해 이차보전보다는 현물출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아닌 농협금융의 입장에서는 현물출자보다 이차보전 방식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애초 약속한 1조 원에 달하는 현물출자 주식 중 반은 민영화 문제에 둘러싸인 비상장 산은 주식이고 나머지 반도 역시 비상장인 한국도로공사 주식이다. 정부의 현물출자 시 농협금융은 이 주식들을 보유하는 대신 1조 원의 현금을 농협중앙회에 주게 된다.

문제는 비상장주식의 위험가중치가 400%인 데 반해 현금은 위험가중치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현물출자가 농협금융의 BIS비율을 추락시키고 자본적정성을 떨어뜨리는 구조를 형성하는 아이러니다. 반면 이차보전 시에는 농협중앙회가 농금채를 발행해 자금을 차입하는 형태가 되므로 농협금융은 안전한 위치에 서는 격이다.

한편 정부의 이차보전은 현물출자 시 바로 중단될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해당 예산안의 부대의견에는 향후 농협에 대한 현물출자가 이뤄지면 출자액에 해당하는 이자보전 지원을 중단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현물출자가 이차보전으로 바뀐 배경에는 알려진 산은 민영화나 농림부 예산 배정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 묘한 알력 다툼과 MB맨인 최원병 회장 내몰기까지 고려해야만 향후 정부 출자의 향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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