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 13일 초등학교 1학년 김모(8)양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노모(33)씨와 정모(33)씨등 2명을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절친한 친구의 딸 유괴

노씨와 정씨는 지난 10일 오후 3시 35분께 서울 강동구 A아파트 근처에서 김양을 승용차로 유인했다. 당시 김양은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노씨와 김양의 아버지 김모(34)씨는 전북 익산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절친한 친구사이다. 평소 김양은 노씨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노씨는 김양을 승용차에 태우고 서울을 빠져나갔고 정씨는 오후 4시부터 강동구 일대를 돌며, 공중전화를 이용해 김씨가 운영하는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현금 1억 5,000만원을 준비해 중부고속도로 동서울 만남의 광장으로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김씨는 딸이 납치됐음을 알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 했다.김양의 어머니 유모(33)씨는 급히 마련한 현금 1억 2,000만원을 들고 동서울 만남의 광장으로 갔지만 유괴범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양을 승용차에 태운 노씨는 경기도 이천의 B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은신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김양은 “집에 보내달라”고 보채며 울자 노씨는 김양의 가슴을 2~3차례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노씨는 숨진 김양을 야산에 버리고 도주했다.

용의자 CCTV에 찍혀

경찰은 정씨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공중전화 인근의 C은행 현금지급기의 CCTV에 찍힌 화면을 분석, 정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정씨의 휴대전화를 알아낸 경찰은 위치추적을 통해 지난 13일 새벽 1시쯤 인천의 한 PC방에 있던 정씨와 노씨를 붙잡았다. 삼촌이라고 부르며 아버지처럼 따랐던 아버지의 친구에게 살해된 김양은 싸늘한 시체가 돼 새벽 6시쯤 야산에서 나뭇가지에 덮인 채 발견됐다.경찰에서 노씨는 “김씨에게 3년 전 5,000만원을 빌려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했고 그 뒤 김씨가 빚 독촉을 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씨는 노씨가 사업에 실패하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빌려준 돈을 받는 것을 거의 포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씨와 정씨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사이로, 노씨는 범행 10일 전 정씨에게 범행을 제의했다.경찰은 “범행에 이용된 차량에서 납치 직후의 이동 장소와 돈을 받을 장소 등이 자세히 적힌 A4용지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범행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다”고 말했다.

신중하지 못한 경찰 수사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여러 가지 허점을 드러내 여아의 살해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 오후 8시 35분쯤 급히 택시를 타려던 정씨를 발견하고 경찰서로 임의동행, 조사를 했지만 그냥 풀어준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친구를 만나러 왔는데 왜 잡느냐”고 경찰에 항의하자 그대로 풀어줬다. 또 경찰은 약속 사실 확인 차 정씨의 휴대전화 통화목록에 있던 노씨와 통화를 했다. 경찰은 노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인데 당신이 노OO씨 맞느냐”고 확인했지만 노씨는 “그런 사람 아니다. 전화 잘못 걸었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씨는 정씨가 경찰에 검거된 것을 알고 바로 휴대전화 전원을 껐다. 또 풀려난 정씨는 노씨에게 “아이를 풀어주고 도망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경찰은 “당시 정씨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어 장시간 잡아둘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의 신중하지 못한 수사도 도마위에 올랐다. 김씨 부부가 경찰에 신고를 하자 곧바로 김씨의 주유소 부근에 경찰 30여명 정도가 배치됐다. 그러나 주유소 직원들은 “너무 티가 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또 정씨는 검거된 후 “공중전화를 건 장소 근처에 도착한 경찰이 사복을 갈아입는 장면을 보고 수사가 시작됐음을 알았다”고 진술해 경찰은 수사가 치밀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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