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정무특보 신설 요구 ‘봇물’

[일요서울|홍준철 기자] 박근혜 정부가 장차관급 인사들의 연이은 사퇴로 인사 시스템에 커다란 허점을 노출했다. 여기에 정부조직법 통과를 두고 정무기능까지 마비된 게 아니냐며 비판이 당내에서부터 일고 있다. 특히 인사 검증을 맡고 있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와 정무 수석실이 사실상 ‘충성파’로 이뤄져 있어 ‘측근 정치’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 화살은 당장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일원이자 청와대 ‘왕수석’으로 불리는 이정현 정무수석에게 쏠리고 있다. 비례대표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이 정무 수석이 여야 대화 창구를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당내 일각에서 정무특보 신설을 주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 이정현 정무수석 <정대웅 기자>

정부조직법·인사청문회 사전협조 전무

허태열 비서실장 여권 중진의원에 ‘SOS’
 
 ‘성접대 동영상’ 파문 한 가운데 있었던 김학의 법무부 차관에 이어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자진사퇴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인사검증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났다. 김용준 총리 지명자와 이동흡 헌법재판관 지명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지명자까지 장차급만 5명에다 정권인수위와 청와대 인사까지 포함하면 11번째 중도사퇴다. 여야로 구성된 인사청문회 과정에다 언론들의 연이은 의혹 제기로 내정자들의 자진 사퇴 배경이 됐다.

여야 소통창구 인사검증시스템 허점

이뿐만 아니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그 과정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원안고수’라는 선을 잡아놓은 상황에서 정무 수석마저 대여 대야 소통창구로서 역할이 미비했다는 비판이다.
비판의 대상으로는 이정현 정무수석이 도마위에 올랐다.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포함된 친박계 실세인데다 정무 기능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왕수석’으로 불리는 이정현 수석에 대한 이런저런 구설수가 돌면서 정무 특보로서 역할론에 회의적인 반응이 여당내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수석은 사실상 청와대를 대변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해왔다. 그 일환으로 이 수석은 지난 2월 27일 강창희 국회의장을 면담하고 여야 지도부를 방문해 설득했다. 하지만 ‘말’이 설득이지 사실상 일방적 통보였다는 후문이다. 이 수석은 강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조직법의 통과에 대한 필요성과 직권 상정 해법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여야간 합의를 이끌수 있는 방안은 일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메신저’역할만 할뿐 야당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청와대가 어느 선까지 양보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선 아무런 해법을 갖고 있지 않은 셈이다. 오로지 야당이 안된다면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이라도 해달라는 취지로 채찍만 들고 당근책은 없었다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라 이 수석의 대언론 관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수석은 정무수석이 된 직후 언론사 편집국장에게 일일이 전화해 새정부가 임기초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홍보 수석이나 대변인이 아닌 정무수석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일부 언론사의 반응도 나왔다. 한 마디로 월권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 상임위별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도 ‘청와대 정무 수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청와대가 ‘문제 많은 인선’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국회가 ‘새정부 발목을 잡는다’는 식으로 오히려 무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새누리당 농해수위소속 한 인사는 “인사 청문회가 벌어지는 상임위에는 여당 의원들이 다 있다”며 “자당 의원들에게 청와대에서 어떻게 인선을 했는 지 어떤 국정철학을 갖고 있어 추천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면 여당 의원들이 못 도와줄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정무수석은 둘째치고 정무수석실에 근무하는 어떤 인사도 찾아오지 않고 ‘알아서 통과시켜 달라’는 분위기다”며 “여당 의원들을 거수기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통상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비서관이 청문회 통과 협조를 역대 정부에선 해왔던 게 관행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출범해 상임위별로 이뤄진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에서 국회를 방문해 협조를 구했다는 말은 ‘카더라식’으로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인사는 “내 경우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인사청문회전에 청와대에서 차한잔하자고 초대해 만났더니 ‘야당 누구 누구 의원이 강성이니 만나 설득 좀 시켜달라’고 부탁해 화장실에서 야당 간사를 만나 설득했다”고 토로했다. 이동필 농림수산부 장관의 경우 청문안 통과가 불투명했지만 여야 의원들이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뤄져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한 대표적인 사례다.

대통령 실장도 ‘왕수석’ 눈치

그러나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이 향후에도 앞장서 여야 의원들을 만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허 실장 자체가 ‘힘’ 있는 친박 실세와는 거리가 먼데다 68세 적잖은 나이와 3선 출신으로서 나서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초 내정 당시에는 여야를 넘어 정치권 두루두루 잘 알고 있는데다 행정경험까지 있어 정무형 비서실장으로 불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왕수석’으로 불리는 이 수석이 존재하고 있는 이상 정무형 기질을 온전히 발휘하기에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는 이 수석과 박 대통령간의 관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수석은 누구보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친박계의 핵심 중 핵심인사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박 당선인 대변인격으로 불릴 정도로 ‘박근혜 입’으로 불렸다.

이 수적의 주요 정치 이력은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명직 최고위원이 전부다. 하지만 직에 어울리지 않게 박 대통령을 위한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성격으로 이런 점이 박 대통령의 마음에 들었다는 평이다. 이 수석의 ‘파워’는 한때 ‘박의 남자’로 불렸던 김무성 전 의원과 갈등이 있었지만 오히려 김 전 의원이 박 대통령과 소원해지고 이 수석은 측근으로 남아있는 것만으로 친박계 실세중 실세임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석의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너무 지나치다보니 ‘외부와의 소통과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선 당내 회의감이 존재하고 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 수석이 발로 열심히는 뛰지만 사실 과거 정무수석과 비교해 보면 중량감에서 약한 게 사실이다”면서 “청와대 정무 기능을 보완하기위해선 정무특보를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 대안을 내놓았다. 실제로 여당내 분위기는 당내 중량감 있고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과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인사를 정무 특보로 앉혀 ‘측근정치’를 견제하고 대여의도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역대 청와대 정무수석 변천사
정무 대형사고 막는 에어백

 
YS 이원종 DJ 문희상 이강래막강
-MB-박근혜 정부선 위상 갈수록 추락
 
역대 청와대 정무수석을 보면 힘의 부침사가 엿보인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가장 오래했고 영향력도 막강했다. 이 전 수석은 4년 동안 YS를 보좌했고 그림자 참모로 유명하다. 청와대 재임 시절 단 한 차례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고 총선 출마도 고사했다. 대통령 앞에서 직언을 서슴지 않고 다혈질이라 핏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 왜 우리는 이원종 수석 같은 사람 없나라고 탄실할 정도로 정무적 감각이 뛰어났다는 평이다. 하지만 실세인 만큼 돈과 공천 관련 잡음의 진원지로 지목돼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때에는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을 필두로 이강래, 김정길, 유선호 전 의원과 조순용 전 KBS 기자 등이 돌아가며 했다. 조 전 KBS 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선이상으로 중진의원까지 지냈고 문 위원장은 대선 패배이후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직을 수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정무수석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 정부는 유인태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임명을 끝으로 아예 정무수석 자리를 폐지했다. 이에 대해 DJ정부 시절 이강래 전 의원과 함께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정무 수석실을 없애면서 당.청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그리고 노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대여의도 정치에 나서면서 갈등을 유발한 측면이 있다고 평했다.
 
정무수석 자리가 여야뿐만 아니라 당내 정파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데 자리가 없어지자 대통령이 여야간 갈등을 역으로 조장하게 된 셈이다. 급기야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겨냥해 대연정 깜짝 제안을 했고 이 사건은 당과 청이 어긋난 대형 사고로 기억됐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정무 수석이 다시 부활하고 게다가 정무특보, 특임장관을 두면서 정무적 기능을 보완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맹형규 전 행자부 장관, 박형준 전 특보, 정진석 이달곤 전 수석이 정무 기능을 담당했다. ‘MB의 남자로 불리는 이재오 전 의원은 특임장관을 맡아 정무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박계와 친이계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이 전 장관으로선 당내 갈등 조정보다는 대야 대정부 관계속에서 역할을 찾는데 치중했다.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한 이 인사는 정무 수석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모시면서 정치를 디자인하고 여론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고 행정과 치안까지 일에 한정된 영역이 없다본인이 일을 하고 싶으면 이것저것 찾아다니며 할 수 있고 놀고 싶으면 마냥 놀 수 있는 부서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런 역할과 위상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고 대통령의 메신저역할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며 최소한 청와대와 정부, 여당과 야당간 완충 역할만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새정부에 기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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