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첫 칼 휘두른 금감원장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처음으로 내부 출신을 수장으로 맞이한 금융감독원이 ‘보험민원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생보사와 손보사 등 보험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문제는 금감원의 의지가 놀랄 만한 성과를 만들어낼지 혹은 정권초 ‘반짝’ 지시로 사그라질지다. 한편에서는 보험민원 양적 축소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보험업계의 현황을 들여다봤다.

<사진=뉴시스>

 신임 금감원장 “금융 소비자보호 방안” 강구
 첫 기한은 3개월…민원율 얼마나 줄어들까

신임 금감원장의 칼끝이 보험업계를 정면으로 겨눴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이달 중으로 보험 민원을 감축할 수 있는 계획안을 만들어 오는 7월 감축 이행실적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접수된 보험민원은 전체 금융권 민원의 절반이 넘는 4만8471건에 달했으며 전년대비 증가율도 18.8%로 은행권이나 금융투자업계에 비해 훨씬 높다. 이미 보험업계는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인상, 변액보험 수익률 논란 등으로 업계 이미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중된 상태다.

이에 금감원이 보험산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보험민원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가시적인 효과가 있을 때까지 검사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민원 감축부터

먼저 금감원은 지난 5일 보험회사 CEO 회의를 개최해 수장 주관 하에 자체 민원감축 계획을 수립,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보험사들은 자체적으로 과거 민원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2년간 분기별 민원감축 계획 및 구체적 이행방안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에 매 분기별로 이행실적을 보고해 평가에서 부실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CEO 면담 및 현장검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보험업계를 떨게 한 장본인은 새로 취임한 최수현 금감원장이다. 최 원장은 행정고시로 재무부에 들어간 후 금융위원회 기획조정관, 금융정보분석원장,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을 거쳤다. 특히 최 원장이 강조한 것이 금융소비자보호인 만큼 민원이 많은 보험사들은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 원장은 취임식에서 “금융감독 업무 전반에 대해서 감독과 검사, 소비자 업무를 연계시켜 다양한 소비자보호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금감원이 이러한 칼을 빼든 배경에는 일본의 사례가 숨어 있다. 앞서 일본 금융청의 보험금 미지급 점검은 기존 민원을 100분의 1로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험사들의 주요 미지급 사례가 2001년 24만1021건에서 2010년에는 100분의 1 수준인 2331건으로 줄어든 것이다.


민원 100분의 1로 줄어든 일본 벤치마킹


일본 금융청은 보험금관련 민원이 증가한 메이지야스다생명에 대해 2004년에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1999년부터 2004년까지의 사망보험금 미지급 213건 중 162건, 15억2200만 엔이 부당하게 지급거부된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일본 금융청은 다른 보험사들을 상대로도 지속적인 검사를 실시해 보험금지급 관리체계 및 미지급 사례 재검증 등 업무개선명령 조치로 대대적인 성과를 거뒀다.

금감원 역시 이 사례를 참조해 점검항목을 분기별로 선정하고 보험회사 감사조직의 전수조사를 거쳐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향후 검사에서 동일 유형의 미지급 사례가 적발되는 경우에는 경영진에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당장 바빠진 것은 보험사 수장들과 보험담당 금감원 직원들이다. 보험사 수장들은 지난 9일 보험업계를 한 데 모으는 민원감축 태스크포스(TF)에 직접 참여하고 민원담당부서를 직속으로 두는 등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금감원 직원들은 지난 10일까지 일본으로 출장을 떠나 일본 금융청과 보험협회, 보험사들을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와 관련, 현대해상은 매월 두 차례씩 민원 개선 간담회를 열어 본사 주요 부서 팀장이 민원 유발 과정을 직접 점검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기상예보에서 착안한 민원예보제도 가동해 위험도에 따라 발생건수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운영할 예정이다.

한화생명의 경우에는 각 지역본부에 고객의 소리 체험관을 설치해 직접 민원 콜센터 현장에서 지켜보게 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나HSBC생명은 매월 셋째주 수요일을 건강한 금융검진의 날로 정해 직원들을 교육하고 불시에 영업점 암행검찰을 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단기간 민원 축소에 따른 부작용도

한편 일각에서는 보험민원을 줄이자는 취지에 대해서는 동감하나 단지 양적 축소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보험사들이 3개월 만에 분기별 첫 이행실적을 제출하고 2년 내 민원건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대목이 그러하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는 만큼 보험사들의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험사 관계자는 “금감원의 압박으로 최고경영자가 민원을 직접 챙기는 통에 내부에서는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단순히 비율을 줄이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민원의 내용을 따져보고 해결하는 것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보험업계에서는 금감원의 이번 조치가 자칫 블랙컨슈머 양산이나 보험사기 등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며 경계의 시각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일부 가입자들이 보험사를 상대로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겠다”며 합의를 유도해 금품을 받아 챙기는 사례가 여전히 횡행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보유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민원사례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나 보험사기자들은 민원 발생 초기단계에서부터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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