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아내 영정 들고 제주도에 간 눈물겨운 사연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소셜커뮤니티 페이스 북에 하나의 사진이 올라왔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커다란 종이에는 “저는 지하철 택배원입니다”로 시작하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좋아요’ 1만 건 이상 눌러지면 지키지 못한 칠순 기념 제주도 여행을 회사 대표가 보내준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 사연은 큰 울림을 낳았다. 67만 명의 가슴에 훈훈한 감동을 전한 것이다.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된 할아버지는 숨겨진 사연을 담담하게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미 아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 [일요서울]은 몸의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아내의 영정사진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한규태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봤다.

지난 3월 한 지하철 택배 업체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 속의 한규태(필명 배창희·68)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회사에서 좋아요 만 번 넘으면 제 아내랑 제주도 여행 보내준대요”라는 내용의 글이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한규태 할어버지 사진을 올린 택배회사 대표는 “사당동에서 지하철 택배 일을 하시는 배창희 어르신입니다. 어르신 아내 분께서 칠순이 되셨답니다.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 하셔서 이렇게 글을 올려드립니다. 제주도 보내 드립시다”라는 내용의 글을 덧붙였다. 이 게시물은 만 하루가 되기도 전에 1만 건을 훌쩍 넘겨 67만 건 이상의 ‘좋아요’를 달성했다.

기적의 칠순 선물

한규태 할어버지는 “만 명이란 숫자가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표에게 갑자기 연락 와 ‘좋아요’가 수십 만 건이 훌쩍 넘었다고 했을 때도 믿기지가 않았다.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했다. 수십만 건이 넘었다는 연락을 받고 사무실로 달려가 또 다시 인증 사진을 올리게 됐다”라고 입을 열었다.

한규태 할아버지는 페이스북에 사진이 올라간 지 하루 만에 ‘젊은이 여러분 감사합니다. 67만 명의 좋아요 응원 덕분에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2박3일 동안 즐거운 여행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인증사진을 찍게 된 것. 이 회사 대표는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다음 주 비행기 예약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성원에 어르신께서 굉장히 기뻐하시네요! 여러분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라고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이 훈훈한 사연 속에는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한규태 할아버지가 함께 제주도를 가고 싶어 했던 아내는 이미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던 것. 두 사람은 칠순을 앞두고 꼭 제주도를 다녀오자고 약속했지만 아내는 칠순을 한 해 남겨놓고 눈을 감았다. 한규태 할아버지는 “대표도 뒤늦게 내 아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대표는 ‘어르신 혼자 여행을 가시지 마시고 딸이나 며느리와 함께 가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제주도 여행을 간다면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생각했다. 늘 가방 속에 지니고 다니는 아내의 영정사진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한규태 할아버지는 “아내와 나는 결혼 기간 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신혼여행은 자연스럽게 단념하게 됐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아내가 의상실을 개업하고 밤낮없이 일하다 암이라는 지독스런 병을 얻고 말았다. 암은 마음을 한시라도 놓지 못하게 했다. 유방암 초기로 시작한 아내의 투병생활은 대장, 폐, 머리 순으로 암이 차례로 발병되면서 15년이나 이어졌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렸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다. 아내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한이 된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항상 병상에 누워있던 아내가 안타까웠던 한규태 할아버지는 아내가 환갑을 맞이했을 때 ‘내가 당신을 꼭 살려내겠다. 칠순 때도 내 곁에 함께해 달라. 당신 칠순 때는 단 둘이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자’고 약속했다. 아내는 환한 미소로 빙긋이 웃었다고 한다.

한규태 할아버지는 “아내는 소녀같았다. 긴 투병생활에도 밝은 성격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영정사진도 투병기간 중 찍은 사진이다. 암과 씨름한 탓에 좋은 추억도 만들어주지 못하고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지난 2월이 아내 생일이었다. 유난히 아내 생각이 많이 난다. 마지막에 머리에까지 암이 발병하면서 의사가 1년을 선고했다. 아내는 3~4개월 만에 돌연 떠났다. 유언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살려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크다”라고 고개를 떨궜다.

“모든 풍경 함께 보고 싶었다”

결국 제주도 여행은 아내의 영정사진과 함께했다. 꿈꿔왔던 제주도에 발을 내딛으면서 한규태 할아버지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특히 성산일출봉과 유채꽃밭에서는 아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기쁘고 쓸쓸한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한규태 할아버지는 “유채꽃밭에 하트로 조형물을 만든 곳이 있더라. 그 조형물 밑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아내 사진을 옆에 두고 앉아 유채꽃밭을 바라봤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만 머리 속에 맴돌았다. 제주도에 있는 내내 아내 사진을 꼭 품에 갖고 다녔다. 아내에게 내가 보는 제주도 풍경을 오롯이 보여주고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 첫날 제주관광공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가니 침대가 트윈이었다. 아내의 부재가 현실적으로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라고 제주도 여행 후일담을 털어놨다.

제주도를 다녀온 후 한규태 할아버지에게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에게 최근 근황을 묻자 “아내가 내 곁을 떠난 지 7년 째다. 현관 잘 보이는 곳에 둔 아내 영정 사진에 ‘잘 다녀올게. 나 왔어’라고 늘 인사를 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바로 내 옆에는 없지만 어딘가에 아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내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했다. 나의 사연이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내에 대해 물어보니 ‘이제서야 갔구나’ 실감하게 됐다. ‘내 곁에 아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구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외로움과 우울이 날 덮쳤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우울증이 뭔지 알게됐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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