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논란이 스크린으로 옮겨 붙나

▲ 뉴시스

"범인 쫓는 것 아닌 사건을 통해서 본 소통에 관한 이야기"
 진실 공방 다시 수면위로…군 당국, 상영금지 가처분 검토

[일요서울ㅣ최은서 기자]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대중들 앞에 처음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영화는 천안함 폭침 원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발표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군 당국은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는 등 발끈하고 나섰다. 군 당국은 이 영화가 창작 영화가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에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의 대응을 두고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 ‘영화의 내용이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일요서울]은 백승우 감독과 국방부, 천안함 재단·천안함 유가족 모두의 입장을 들어봤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3년 전 정부와 군 당국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관심을 모은 천안함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더구나 지난해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 등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정지영 감독이 기획·제작했다는 점에서 더 이목을 끌었다. 이 8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는 백승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정지영 감독은 “나 스스로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납득할 수 없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제작진의 의도대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쪽에서는 현재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시기여서 한국 사회 내부분란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천안함 사건 결론 미진”

천안함 프로젝트 제작진은 영화 제작 의도는 ‘소통’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가 왜 경직돼 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는 영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 제작진은 “의심은 소통의 출발점인데 우리 사회는 소통이 없다”고 토로했다.

백승우 감독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와 군의 결론이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것은 우리 사회가 천안함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이상 못하게 막는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북한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었다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을 것이다.

북한이라는 단어가 주는 패러다임이 분명히 있다.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고 단절되는 분위기 그 자체가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라며 영화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범인을 찾는 영화’일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영화 속에 천안함 사고를 누가 일으켰으며 범인은 누구인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선도 짙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 영화는 범인을 찾는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서 본 소통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의 의도라고 설명한다.

백 감독은 이어 “분명히 말해 둘 것은 영화는 범인을 찾고 있지 않다. 영화를 만들었지만 범인이 누군지도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군 당국의 발표와,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실었다. 절대로 음모론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범인을 쫓는 영화가 아닌 사회모습에 대한 다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종북논란과 관련해서는 “천안함이라는 패러다임이 주는 패러다임일 뿐이다. 사실하고는 관계없다. 종북이라는 단어가 너무 웃긴다. 북한은 어린이가 기아상태에 빠져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북한을 쫓아간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종북주의자가 진짜 있기는 한가. 우리 사회가 북한과 관련해서는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천안함이라는 사건과 남북관계는 별개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점에 나온 이 영화가 한국 사회 내부분란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제작진은 의아해한다. 백 감독은 “천안함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꼭 이야기로 다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 지금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시점에 천안함을 영화로 다뤘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휴전상태이기 때문에 남북문제는 계속해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북한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지금 이 시기가 어떻든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때문에 이 영화 속에 의혹이 아닌 사실만을 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찮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 영화 속에는 팩트(fact·사실)가 아닌 것이 없다.

국방부에서는 강박관념식으로 자신들이 발표한 것 외에는 팩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가 의혹을 제기하고 반박한 것 자체는 엄연한 또 하나의 팩트다. 이 영화는 과학 다큐가 아니다. 기획을 정지영 감독이 했다는 점과 천안함이라는 단어만 보고 색안경을 쓰는 것 같다. 이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영화에서 집중적으로 다른 의혹은 ‘좌초’다. 앞서 정부와 군 당국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공격’으로 결론 내린 바 있다. 이는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의 다국적 전문가가 합동조사를 벌여 내린 공식 결론이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는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좌초’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백 감독은 “여러 의혹 중에서도 ‘좌초’를 집중적으로 다룬 까닭은 촬영을 하기 위해 만나본 모든 사람들의 공통분모가 ‘좌초’였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좌초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단 좌초가 있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군 당국, 논란 재점화 경계

국방부는 이 영화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혹을 제기한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 중이다. 천안함 유족들도 이달 말게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군 당국과 함께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이 영화에서 정부와 군 당국의 입장을 충분히 싣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 영화로 인해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 46명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백 감독은 군 당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46명의 장병과 유족들에 안타까운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지, 명예를 훼손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 이 사건이 폭침이든 사고사이든 천안함 46명의 장병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렇게 희생되는 사람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 이 영화다”고 해명했다.

이어 “군 당국이 유족을 내세워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말이 안된다. 군은 특수집단이자 특수권력인데, 특수권력이 민간 영화에 대해 올려라 내려라 간섭하는 것 자체가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만약 군 당국이 법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 역시 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극장에 올릴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국방부가 영화 내용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싣지 않았다며 굉장히 억울해 한다. 사실 국방부 의견만큼 모든 언론을 동원해서 자세하고 충분하게 설명한 것이 어디있겠느냐.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대중이 알고자 하면 검색, 책자, 백서 등을 통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영화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국방부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촉구에 나섰다. 언론개혁연대 관계자는 “천안함 진실이 무엇인지가 아직 논쟁 중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발표에도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합리적인 의심을 영화나 보도, 개인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 등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의심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느냐.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한다. 국방부는 충분히 영화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갖고 있는 정부기관이다. 그런 곳에서 합리적 표현 자체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천안함 폭침사건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피격된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46명의 장병이 희생된 사건”이라며 논란이 재점화 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어 “우리 민군합동조사단을 비롯해서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러시아 등 다국적 조사단이 참여해 과학적·객관적으로 조사 검증한 결과로, 국제적으로 사실상 공인된 내용”이라고 단언하며 “영화 상영을 고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현재까지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천안함 재단 관계자는 “천안함 재단과 유족들은 현재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다. 이 영화를 본 후 의견을 모아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천안함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개봉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상영도 되기 전에 파문에 휩싸인 만큼 과연 개봉될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고발영화 ‘붐’ 사회문제 재조명

지난해부터 사회고발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 2011년 ‘도가니’로 시작된 실화 소재 영화들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들이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났다.
도가니는 한국사회의 부패와 힘없는 개인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공분’을 이끌어냈다. 여론의 힘 덕분에 2011년 11월에는 일명  ‘도가니법’이 상정되는 등 사회적 여파가 상당했다.
‘부러진 화살’은 석궁테러라 불리는 사건을 바탕으로 사법부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개봉 이후 사법부를 질타하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80년 광주의 비극을 그린 ‘26년’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 수기를 토대로 만든 ‘남영동 1985’, 용산 참사 사건을 다룬 ‘두개의 문’이 차례로 개봉되면서 사회적 문제를 헤집었다.
이들 영화들은 기득권을 고발하는 등 시사 고발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며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이들 영화 모두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생생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공분을 이끌어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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