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은 ‘권력의 축소판’

▲ 뉴시스

폭력이나 괴롭힘에 피해 학생 최후 수단으로 자살  
교권 추락 심각 “수업시간은 마치 도깨비 시장 방불”

[일요서울ㅣ이광수 기자]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요즘 청소년 범죄는 흉악성과 대범함으로 어른 범죄 뺨칠 정도다. 이처럼 청소년 범죄가 끊임없이 메스컴을 달구는 가운데 최근에는 ‘사기 원조교제’라는 신종 범행이 발생해 충격을 안겨줬다. 이 범죄의 경우 청소년들이 주축을 이뤄 조직적으로 사기와 성매매를 저질러 파문이 상당했다. 이뿐 아니라 살인, 강도, 강간 등 청소년의 범행이라 보기엔 믿기 어려운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포착되고 있다. 사실상 잇단 사건사고로 인해 범죄의 안전지대로 생각되는 학교조차 범죄의 위험에 쉽게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교내서 벌여지는 폭력의 수위가 날로 높아짐에 따라 [일요서울]은 학교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들춰 봤다.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국가 중 최하위다. 이명박 정부 4년 내내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단연 1위는 자살이었다. 여기서 쟁점은 자살원인이다. 교내 왕따, 심부름, 폭력, 협박 등으로 인해 피해 학생이 자살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이던 A군은 같은 반 친구 B군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정신적 충격으로 현재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B군은 ‘미운 놈 때리기’란 스마트폰 게임 애플리케이션에 A군의 사진을 합성한 뒤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직접 때리진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널 때리고 싶다”고 괴롭혔다. A군은 수차례 “하지 말라”고 했지만 B군은 “내 휴대폰으로 내가 게임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막무가내였다. 참다 못한 A군의 신고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려 B군이 전학을 갔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탓에 자주 마주쳤고, “나대지 말라”는 등 B군의 언어폭력은 계속됐다.

가해학생 폭력 잔인해져 자살까지

학교폭력을 걱정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소년, 학교, 학부모 등 지역사회와 함께 정부에서 규정한 4대 사회악 중 하나인 학교폭력 근절은 꼭 필요한 실정이다. 학교폭력은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학교를 다닐 때부터 지속돼 왔고, 과거에는 학교폭력을 당해도 참거나 감추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투신자살을 하고, 가해학생의 폭력이나 괴롭힘은 더욱더 잔인해지고 지능화 돼가고 있다.

기자는 신림동에서 가출한 무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무리 중 얼마 전 자퇴를 한 박모(여·17)양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학교가 멀어 자주 학교를 안 나갔다. 자퇴한 이유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한 것”이라며 “늦을 경우 선생님에게 전화 한통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가도 잠만 잔다. 별다른 제재가 없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라며 학교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양은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대들어도 선생님들이 체벌하지 못한다. 종종 체벌을 가하려는 선생님들이 있다. 이럴 경우 스마트폰을 꺼내 도리어 동영상을 찍어 협박한다”라며 교권 추락의 실례를 들었다. 

박양은 또 “우리 학교도 왕따가 있다. 왕따들은 왕따를 당할만하다. 외모적으로 비대하거나 못생겼거나 잘난 척 하는 애들이 대상이다. 이럴 경우 상습적으로 이들에게 심부름을 시켜 복종케 만든다”며 “말을 안 들으면 폭언과 폭행을 가한다”고 해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원조교제 돈 벌어 PC방·찜질방 가기도

이들 무리들은 채팅을 통해 원조교제를 한 뒤 번 돈으로 PC방이나 찜질방에 간다고 한다. 박양은 “친구 중 한명은 채팅을 통해 한번에 10명과 성관계를 갖는다. 시간이 아깝고 고수익을 챙길 수 있어서다. 또 교내 화장실에서 친구들이 성관계를 갖는 걸 종종 목격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털어놨다.

이어 박양은 “남녀 공학이다 보니 수업시간에 유사성행위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선생님들도 알지만 못 본 척하는 것이다”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박양의 무리 중 김모(19)군이 기자에게 다가와 말을 거들었다. 김군 역시 자퇴를 하고 가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김군은 “학교에서 배울게 없다. 학교에 가면 후배들이나 동급생들 중 돈 있는 애들을 골라 돈을 갈취 하는 것이 전부”라며 “학교를 그만 두니 이와 같은 일도 못한다. 간혹 돈이 필요할 때는 여자 친구들을 부추겨 원조교제를 시킨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처럼 교내서 발생되는 폭행이 점차 진화되어 교외로 나와 또 다른 범죄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점차 높아지는 현실에서 학교폭력의 궁극적인 피해자는 학생만이 아닌 교사와 학부모를 포함한 모두가 피해자이다.

고등학교 교사 1년 차인 김모(26·여)씨. 그녀는 교권추락이 심각하다고 설명한다. “체벌을 할 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수업시간은 도깨비 시장을 방불케 하고 여선생님들이 들어가면 치마를 들추기도 한다”라며 “이것은 약과다. 남학생들 같은 경우 수업도중 주요부위를 내민 적도 많다. 이럴 경우 당황해 하지 말고 화장실 가서 해결하라고 타이르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부모·교사 도움 효과 없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은 지난달 22일 ‘2012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16개 시·도 초등 4학년~고교 2학년 학생 553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청예단은 2001년부터 매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 결과 지난해 학교폭력 피해율(12.0%)과 가해율(12.6%)은 각각 전년도의 18.3%, 15.7%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피해학생들 중 자살을 생각했다는 비율은 31.4%에서 44.7%로 크게 늘었다. 피해학생 중 4~5명은 자살까지 생각한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 후 고통을 느꼈다는 응답률도 2011년 33.5%에서 지난해 49.3%로 늘었다. 청예단 관계자는 “학교폭력이 양적으론 줄었지만 학생들이 체감하는 질적인 부분은 더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유형으로는 보이지 않는 ‘언어폭력’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욕설과 모욕적인 말이27.3%로 가장 많았고 폭행이 18.0%, 협박이나 위협이 13.9%, 괴롭힘 13.2%, 집단 따돌림 12.5%, 돈이나 물건 갈취 7.6%, 사이버 폭력 4.5% 순이었다. 특히 학교폭력 중 사이버 폭력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2011년 1.8%에서 2012년 4.7%로 2배 이상 늘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학교폭력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화된 이후 교육당국과 경찰의 대책이 쏟아졌지만 상당수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폭력을 당하고도 아무런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학교폭력 피해학생 중 33.8%가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으며 부모나 교사 등에게 도움을 요청한 학생 중 41.8%는 ‘도움이 효과가 없었다’고 답했다.

가해학생에 경각심 줘 교육 상담 필요

학교의 안전과 평온한 분위기 조성은 어른들이 지켜줘야 할 의무이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폭력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학교문제’이므로 원인과 처방의 고민에 있어 ‘학교’가 그 중심에 서야 할 것이고, 경찰은 교육당국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동반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교사나 학부모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교사가 학부모를 불편한 감시자로 여기고 학생이나 학부모는 교사를 불신하는 상황에서는 학교폭력에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교사·학생·학부모 간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과 대화를 나누고 경찰은 이들 사이의 교량적 역할을 해준다면 학교폭력 근절의 길은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경찰은 가해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은 개인의 인권침해가 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다만, 가해학생을 처벌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가해학생들을 교육하고 상담해 학생들이 가볍게 여기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바로 알려주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선도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교육과 상담 신뢰가 학교폭력근절에 시발점"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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