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청와대가 오는 4월로 임기(2년)가 만료되는 송광수 검찰총장 및 고위간부에 대한 인선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여권 주변에선 벌써부터 후임 총장과 고위간부들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히 나돌고 있다. 이번에 단행될 검찰 고위층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중후반 국정운영 기조와 맞물려 그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따라서 집권초 ‘검찰 기수 파기’ 인사를 단행한 바 있던 노 대통령이 이번에도 ‘깜짝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검찰측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또다시 ‘기수 파기’ 등 깜짝 인사를 단행할 경우 조직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노 대통령과 검찰간의 피할 수 없는 3차 대전이 임박해오고 있는 분위기다.참여정부 출범이후 노 대통령과 검찰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마찰을 빚은바 있다. 그 첫 번째는 사시 23회인 강금실 변호사를 초대 법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한 파격 인사. 노 대통령은 당시 강 장관을 앞세워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 인사관행을 파타하고 ‘개혁과 서열파괴’ 인사를 단행했다. 2003년 3월9일 실시된 ‘노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는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과 서열파괴 인사 의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노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는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졌고, 검찰 수뇌부를 비롯한 중간 간부, 평검사들이 각각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 검찰 파동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감지됐다.

하지만 검찰의 분위기를 감지한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이 사시 13회인 송광수 현총장을 발탁, 물갈이 폭을 최소화하면서 우려했던 1차 검찰 파동은 봉합됐다.두 번째 마찰은 지난해 6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 신설 및 대검 중수부 기능 축소 또는 폐지 문제를 둘러싼 노 대통령과 송 총장간의 갈등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고비처를 부패방지위원회에 설치하라고 지시했고, 부방위는 대통령 친인척, 전·현직 총리, 의원, 판·검사 등 주요 공직자 거의 대부분에 대해 수사권을 행사하고 국회에 특검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는 검찰의 핵심기관인 대검 중수부의 기능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도 중수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검찰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6월14일 송 총장은 “중수부 폐지 주장은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며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먼저 저의 목을 치겠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노 대통령도 물러나지 않았다. 송 총장 발언 직후(6월15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변화의 흐름을 거역하고자 하는 저항이 완강하고 여론몰이식이나 투쟁으로 관철하려는 흐름이 있다”며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은 없으나 할 일을 하는 대통령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송 총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질타는 잠시 송 총장 사퇴 압박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청와대가 “대통령의 발언은 송 총장 발언의 부적절성을 지적한 것이지 사표를 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라고 입장을 정리하면서 2차 검찰 파동으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검찰간의 불편한 관계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중수부 존폐 문제 등 검찰을 자극할 수 있는 민감한 현안이 잠복해 있고, 차기 검찰총장 및 고위층 인사 단행이 4월로 다가왔기 때문이다.특히 4월로 예정된 차기 총장 후임 인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송 총장의 기수(사시 13회)를 감안하면 사시 15~17회 인사중 후임총장이 발탁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사시 15회인 이정수 대검차장과 김종빈 서울고검장이 거론되고 있고, 16회에서는 김상희 법무차관, 서영제 대전고검장, 윤종남 서울남부지검장, 임래현 광주고검장, 김성호 부방위 사무처장, 17회에서는 정상명 대구고검장, 안대희 부산고검장,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차기 총장은 노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할 이른바 ‘코드 인사’가 될 가능성에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다. 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인 고비처 신설 및 대검 중수부 존폐 문제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집권 중후반 개혁정책을 원할히 추진하기 위해선 검찰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 구축이 절실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여기에 참여정부 출범후 빈번했던 검찰과의 갈등을 감안하면 차기 총장은 ‘노무현 맨’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 관계자들의 중론이다.청와대 주변에선 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시절 가깝게 지낸 ‘8인회’ 멤버인 정상명 대구고검장과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 PK출신으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안대희 부산고검장 등 17회 발탁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연초 교체설이 나돌았던 이용섭(전남 함평) 국세청장이 유임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영남 출신인 이들 17회 인사를 차기 총장으로 기용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이처럼 송 총장 후임으로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17회 발탁설이 나돌자 검찰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17회가 차기 총장으로 기용될 경우 20여명에 달하는 검찰 고위층이 대거 퇴진 리스트에 오르는 등 검찰 인사 파동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검찰은 청와대측의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기아자동차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한 수사 지휘체제를 대검 형사부에서 중수부로 전환했고,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는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 사건 재수사에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아차 사건과 관련해서는 취업을 청탁한 정·관계 인사들이 포함된 리스트를 확보한 상태다. 특히 이 사건에 대해 송 총장이 직접 수사 지휘를 내리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검찰이 여권을 압박할 뭔가를 잡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현정부의 도덕성 시비가 도마위에 오르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검찰은 또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여권 인사들의 연루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는 한화가 전윤철 재정경제부 장관 겸 공적자금관리위원장(현감사원장)에 이어 현 여권의 고위 관계자에게도 로비를 벌인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검찰 주변에선 벌써부터 정·관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김승연 리스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의장과 소장파 K의원, 민주당 C전의원 등이 대표적이다.이처럼 검찰이 정·관계 사정태풍으로 확대될 수 있는 두 사건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는 4월 단행될 차기 검찰총장 및 수뇌부 인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기수 파기 등 깜짝 인사를 단행할 경우 정·관계 사정카드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청와대를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검찰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코드 인사’를 단행, 검찰 인사 파문을 야기할 경우 여권 비파일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 등 정면대결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