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남재준 추진 개혁·통일기반 마련 투트랙 전략

[일요서울ㅣ오병호 프리랜서] 국가정보원 개혁안 발표가 임박하면서 여야 간에 국정원 개혁을 둘러싼 신경전이 정점을 찍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으로 촉발된 국정원 개혁 논의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수사로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의 대치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 개혁 문제는 정기국회의 최대 현안이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파문과 관련해서도 국정원 연루설이 불거지면서 국정원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의구심이 가득차 있다. 이 때문에 개혁 요구는 어느 때보다 거세다. 국정원은 최근 자체개혁안을 마련해 곧 발표할 계획이지만 야권을 만족시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가 분명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까지 개혁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여기에 최근 국정원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정원이 개혁 이후 간첩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야권의 개혁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정국이 혼란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여야 대치상황이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현 상황이 더 이상 장기화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한편에서는 추석 이후 정국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국내정치 개입 근절 방안으로, 견해차가 확연한 여야의 한판승부가 정기국회에서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부대표가 지난 8일 “대북심리전단의 활동은 적법했지만 일부 의혹을 살 만한 일이 있었다”고 여지를 두긴 했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법 개정에 부정적이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근거로 법과 제도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정치 개입 근절 방안을 두고도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미 1994년 국가안전기획부법에 국내정치 개입 금지를 명문화했고, 18대 국회에서 처벌조항도 마련한 만큼 운용의 문제라는 게 새누리당의 입장이다.

여권과 국정원 안팎에서는 “법에 다 규정돼 있는데 뭘 개정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무턱대고 국가정보기관의 힘을 빼려고 해선 안 된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민주당 국정원법개혁추진위 간사인 문병호 의원은 “국내파트의 역할과 기능이 포괄적이어서 언제든 국내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법 개정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여권의 ‘셀프 개혁’ 주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직원들이 국회와 정치권, 언론사 등에 출입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제한하겠다는 정도다. 또 국내정치 개입 금지 위반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법 개정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정원 개혁 야권 압박 조짐

한 고위당직자는 “국정원이 직원 윤리조항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이달 중 자체 개혁안을 제출할 것”이라며 “당 차원에서 별도의 개정안을 준비할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반면 민주당은 아예 국내파트를 없애자는 입장이다. 국내정보 관련 기능과 역할을 검찰ㆍ경찰ㆍ기무사 등으로 넘기자는 것이다. 대공수사권에 대해선 일부 이견이 있지만 수사권 전체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회나 감사원을 통해 예산을 통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되어 있는 국정원의 위상 변화도 검토 대상이다. 추석 직후 관련법 개정안을 당론 발의할 계획이어서 여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국정원 개혁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출발이 대선 불법개입 의혹이었다는 점에서 여권이 적극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혁의 대상인 국정원이 내란음모 의혹 수사를 공개하며 정국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결국 검찰의 댓글 의혹사건 재판 결과와 국정원의 ‘이석기 사건’ 수사 결과가 국정원 개혁의 향배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정원이 추가 대공수사를 통해 야권을 더욱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은 이번 이 의원 수사를 통해 대선개입 의혹으로 실추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함과 동시에 전반적인 국민적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정치권이 아닌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간첩수사를 추가로 펼 수도 있다는 말이 들린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부에서 “국정원이 대공사범과 간첩수사를 학계, 정치권, 시민단체 등 사회 전방위로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 긴장하고 있는 곳 중 하나는 대학가다. 과거 간첩 고첩 수사를 살펴보면 대학가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적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최근까지 국정원이 수집한 간첩 관련 첩보들 중에는 대학교수 등과 관련된 것도 일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종교계와 방송 언론 인터넷사이트 관계자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진보성향의 정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과 통진당 등은 국정원의 대공혐의자 수사칼끝이 결국에는 야권으로 향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는 분위기다. 대공수사가 그 성격상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사의 시작은 다른 곳이라 하더라도 결말은 정치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야권의 분석이다.

그러나 정치권 한편에서는 향후 국정원의 대공혐의자 및 간첩수사가 야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야권에서 국정원 개혁을 부르짖고 있어 남 원장이 정치적 논란을 초래하지 않는 쪽으로 국정원 활동을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정국 주도권 쥔 남 원장 행보

남 원장은 개혁과 관련, 국정원의 대공 대북 업무를 강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 원장은 측근들에게 “안보를 위해 국정원의 제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강경반공 성향의 남 원장의 개혁안은 더 이상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쓸 계획이다. 이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반드시 이긴다’는 중국 고병법서의 구절과 맥을 같이 한다.

남 원장이 세운 국정원 개혁안을 살펴보면 국정원은 국내 파트의 기존 기능을 통일과 국익·새로운 위해요소 차단 등 3개 분야로 전면 재조정하는 자체 개혁안을 마련하고 대북부서의 전면 개혁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일을 위해 무엇보다 북한을 확실하게 견제하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남 원장의 주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파트는 통일기반 조성 및 미래전략 수립, 국익차원의 경제안보,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대비한 새로운 위해요소 차단 활동 등 크게 3부분으로 개편된다. 통일기반 조성은 햇볕정책과 같은 온건성향이 아니라 빠르고 정확한 대북정보 획득으로 북한의 움직임을 제대로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MB정권 때 국정원은 대북정보력 부재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일각에서는 대북정보력 부재로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과 같은 안보불안 현상이 심화됐다는 지적을 산 바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가칭 통일전략국이나 미래전략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북파트 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이와 별도로 대북업무와의 중복되지 않은 통일 대비 전략부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치권 주변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야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 강력한 개혁안을 마련 중이다.

민주당은 국회 통제를 받지 않는 국정원 예비비 예산 사용을 금지하고 탄핵 대상에 국정원장을 포함하는 내용 등을 개혁안에 담을 예정이다. 이처럼 야권에서 국정원 견제를 강화하면서 일각에서는 “야권의 개혁 공세로 안보를 위한 국정원 기능강화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의 향후 간첩수사가 야권의 “정치적 음모 아니냐”는 식의 공세로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권도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다. 김 대표가 요구한 국정원 개혁 방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국정원 스스로 철저한 개혁을 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박 대통령은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정원법의 철저한 준수를 ‘약속’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국정원법을 만들어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법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면서 “청와대는 관련법을 준수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정원을 운영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회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만들면 이를 국회에서 논의해 부족하거나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라는 점을 피력하면서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이 의원 사건과 같이 대공수사에 대한 논의는 일단 민주당이 한걸음 물러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 의원의 간첩혐의 수사에 대해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면서 거리를 뒀다. 이에 민주당은 여론을 의식해 국정원이 추가로 대공수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치적 의도에서 추진되는 대공수사는 방지하겠다”고 약속받는 선에서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ilyo@ilyoseoul.co.kr

정권따라 입맛대로 변하는 국정원 개혁안

민주당이 잇따라 내놓은 국가정보원 개혁방안의 핵심은 ‘국내 정치 개입 금지, 예산안 제출 의무화 등 국회 통제 강화’ 등이다. 이 내용은 공교롭게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제출했던 국정원 개혁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원 개혁이라는 과제는 정권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입장도 뒤바뀌어 왔던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 개혁은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06년 참여정부 시절 당시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비대한 권한과 기능을 대폭 손질하는 법안을 쏟아냈다. 당시 법안은 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전향적인 내용이 많았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전부 개정안' 이 대표적으로 ▦헌법·법률 위반 시 국가정보원장 탄핵소추 ▦특정정당 및 정치인 동향파악 감시 금지 및 처벌 조항 추가 ▦국정원 대공수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 강화 ▦예산안 첨부서류 국회 제출 의무화 등 혁신적인 내용이 대다수였다.

당시 이 법안에는 여의도연구소장이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무성, 홍준표 등 중진 의원 19명이 서명했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 돼 사실상 당론으로 추인됐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2003년 당내'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설립 기획단'을 설치하고 국내 수사 파트를 검찰로, 대북관련 부문은 통일부와 기무사로 이관하는 개혁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이 같은 개혁 요구를 ‘여당 견제용’으로 판단하고 애써 눈을 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내 정치사찰 기능을 폐지하는 대신 대북ㆍ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집권 이후 국정원의 조직적 반발 등에 부딪히며 국정원 개혁 공약은 결국 유야무야 돼버리고 말았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입장은 지금 여당인 새누리당의 모습과 똑 닮아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국정원 개혁 요구에 “국정원 개혁은 법이 아니라 조직 운영의 문제”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정원의 위상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정권 보위 기구로 활용할 유혹을 떨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장에 대통령 측근을 임명하다 보니 국정원이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정보기구로 전락하는 것”이라면서 국정원의 기능 위주 재편을 촉구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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