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교화프로그램… 제2 범죄인생 만든다”

▲ <뉴시스>
[일요서울|오두환 기자] 2010년 여름 화물차를 운전하던 A(51세)씨는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다. 당시 A씨는 고속도로 갓길에 주차를 하고 잠을 자던 B씨의 차를 들이받아 B씨의 자동차를 파손했고 다리를 다치게 했다.
처음 B씨의 가족은 1억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지만 생계유지가 힘들었던 A씨는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B씨의 가족들은 합의금을 7천만 원, 5천만 원으로 점점 낮췄고 나중에는 100만원을 불렀다. A씨의 아내는 급하게 100만원을 마련해 합의금을 지불했다.

보호관찰소의 행정시스템 바뀌어야
부산 소년원 생활 2년 “그곳은 지옥원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B씨의 친척들이 합의금 100만원으로는 부족하다며 민사소송을 걸었다. A씨는 합의를 할 수 없었고 2010년 12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활동 120시간, 준법운전강의 40시간 등의 처벌을 받게 됐다. 이후 A씨는 120시간의 사회봉사활동을 마쳤다.
하지만 준법운전강의 40시간을 받지 못했다. 개인사정과 함께 생계유지를 위해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이후 A씨는 청주보호관찰소 영동지소를 통해 교육을 문의했으나 일정 인원 이상의 교육생이 모여야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다시 일터로 향했다.

보호관찰찰소에서 강사를 초빙하기 위해서는 보통 120만원~150만원 정도의 강사료가 지출된다. 영동지소는 재정이 넉넉지 않아 소수인원의 경우 청주보호관찰소나 대전보호관찰소에서 교육 받을 것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A씨는 2011년 6월 20일 이후로 영동지소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영도지소 관계자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했지만 A씨를 만날 수 없었고 결국 2011년 7월 21일 구인증을 발부 받아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러던 중 A씨는 2012년 9월 6일 인천에서 사고접수를 받고 출동한 인천지방경찰청 경찰들에 의해 검거돼 교도소에 수감 됐다.

집행유예 기간에는 주거지 상주가 원칙이다. 하지만 A씨는 이를 지키지 않았고 영동지소 관계자들에게 주거지 변경을 알리지도 않았다. 결국 A씨는 두 아이와 아내 그리고 치매에 걸린 장모님을 둔 채 교도소 생활을 하게됐다.
영동지소 관계자는 “사정이 어떻던 주거지 변경이나 교육 연기 등을 우리들에게 요청하기만 했어도 구속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봉사활동까지 열심히 마친 상태였는데 A씨는 이러한 요청을 하지 않았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틀도 안 되는
교육 못 들어 구속

지난 11일 천안교도소 면회실에서 만난 A씨는 밝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가족들 이야기를 꺼내자 “생계유지가 어렵다. 갑갑하다”며 씁쓸해 했다. A씨가 교도소에 들어온 후 그의 가족 생계는 아내가  떠맡고 있다. 현재 A씨의 아내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대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 그리고 86세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요양보호사 일로 버는 돈 58만원과 생계지원비 38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그나마 여름에는 식당일 알바를 해가며 추가로 버는 수입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끊긴 상태다.

A씨는 교도소에 들어온 이후 자신의 가족들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런 그의 노력을 알고 교도소에서도 A씨의 자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줬다. 그 결과 자선사업가의 도움으로 대학생인 아들이 매달 20만의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다.
A씨는 “40시간의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할 말은 없지만 참 안타깝다”고 전했다.

소년원 시절
경찰들로부터 고문당해
   
사실 A씨에게는 교도소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 있다. 17세 때인 1979년 그는 단순 절도로 부산 소년원에 들어갔었다. 그는 소년원을 ‘지옥원’이라고 부르며 “부산 소년원에서 지냈던 2년 동안 복수와 잔악성을 배웠고 그 경험으로 소년원 관계자와 경찰 전부를 잔인하게 죽여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경찰로부터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A씨는 “교도소는 새로운 범죄와 완전범죄를 연구하고 익히기 위한 범죄 연구소일 뿐이다. 그곳에서 전과자들은 더 화려한 범죄를 계획하며 그 꿈을 실현시킬 날을 기다릴 뿐이다”라며  “현실성 없는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바뀌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유일한 희망은
남겨진 가족들

A씨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아직도 A씨가 교도소에 있는지 모른다. 그는 “언제나 ‘아빠가 최고야’를 외치는 딸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도 A씨는 이틀에 한번 꼴로 딸 아이와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도 처음 아빠가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다행히 전임 교도소장이 집을 방문해 아이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해 지금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A씨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사람은 아내다. 남편 대신 생계를 꾸리고 아이들도 키우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까지 돌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이들 가족이 살고 있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은 도시와 달리 일거리도 별로 없다.
하지만 A씨가 나오는 내년 4월까지 어떻게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생이 된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한시름 덜었다. 하지만 A씨 가족들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겨울이 될 것 같다.

가족의 행복 위해
부부간 의사소통 원활해야

A씨가 구속된 1차 원인은 본인의 잘못이다. 이로 인해 교통 사고가 났고 강의를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가족 간의 의사소통 부재다. 특히 A씨와 아내는 평소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A씨 부부는 IMF 이후 연이은 사업실패로 빚을 지기 시작했고 제3금융권 대출 등으로 빚이 늘어만 가 결국 카드 돌려막기까지 하게 됐다. A씨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해 빚을 갚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아내와의 사이도 서먹해 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둘 사이에 대화가 쉽지 않았다. 영동지소에서 교육 참여를 알리는 연락이 남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내는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지난해 개인파산을 신청해 승인 받았다. 그녀는 “더 이상 빚 독촉에 숨 막히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안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쓰러진 가정을 책임져야 할 중압감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디 내년 봄에는 A씨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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