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형 미드필더로 진화…여유있는 경기로 중원 무법자 역할
지난해 잇달아 발생한 악재 불구 초심으로 돌아간 파격 행보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전반기 스완지시티에서 입지가 좁아지며 선덜랜드로의 임대를 결정한 기성용이 주춤했던 모습을 모두 벗어버리고 선덜랜드 에이스로 우뚝서게 됐다. 특히 이적 후 파올로 디 카니오 전 감독이 경질되는 등 부침을 겪기는 했지만 거스 포옛 감독의 신뢰를 얻으면서 공수를 드나드는 신공을 발휘하고 있다. 더욱이 이적한 지 반 년도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플레이라는 평가다.

▲ <뉴시스>
기성용은 지난 2일(한국시간) 영국 선덜랜드에 위치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아스톤 빌라와의 2013-201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라운드서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뛰었다. 다만 팀은 아쉽게 0-1로 패배했지만 기성용은 가장 빛난 선수로 평가받았다.

이날 기성용은 볼 배급과 컨트롤을 비롯해 위협적인 슈팅 등 중앙미드필더가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보여주며 EPL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더욱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여유있는 플레이는 기성용의 변신을 대변했다. 기성용은 전반 10분 선덜랜드 수비 진영에서 상대 전진 압박에 막혀 코너 플래그 근처까지 몰렸다. 골라인 근처에 있던 동료 역시 상대 마크에 가려 패스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성용은 멀리 차내지 않고 침착하게 공을 끌었다. 결국 짧은 패스 공간을 만들며 팀의 공격권을 이어가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후에도 그는 드리블과 패스를 섞어가며 경기를 지배한 중원의 무법자였다.

이처럼 기성용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거듭난 데는 포옛 감독의 신임이 밑바탕이 됐다. 원래 기성용은 FC서울 시절부터 스코틀랜드 셀틱에 있을 때만해도 공격적인 미드필더를 맡아왔다.

하지만 잉글랜드로 건너가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담당했다. 스완지 시티에서는 리그 29경기에 출전했지만 골을 넣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슈팅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해는 롤러코스터를 탔다고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기성용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강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여기에 2012-2013시즌에는 스완지시티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캐피털원컵 우승을 이끌었지만 2013-2014시즌 개막과 함께 벤치 신세로 전략했다. 주전 경쟁에 밀려 설자리를 잃었다.

결국 기성용은 더 많은 경기를 뛸 수 있는 선덜랜드를 선택했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이에 포옛 감독은 기성용에게 공격적인 역할을 맡기기 시작했다. 지난달 14일 웨스트햄 유나이트와의 16라운드에서 기성용은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을 소화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17일에는 철시와의 캐피탈원겁 8강전 경기에서 자신의 잉글랜드 무대 데뷔골을 결승골로 장식했다.

이어 에버턴과의 18라운드 경기에서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직접 성공시키며 선덜랜드의 승리를 견인했다. 명장 조세 무리뉴 첼시 감독은 “기성용은 선덜랜드의 키 플레이어다”라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기성용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포옛 감독도 기성용의 원터치 패스·드리블·볼 관리 능력·양발 사용 등을 높게 평가하며 “기성용은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하는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복 없는 플레이 정상급 선수 예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성용은 큰 기복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정상급 선수를 예고하고 있다.

그는 최근 출전한 10경기서 모두 6점(스카이스포츠 기준) 이상의 평점을 받았고 지난 27일 에버트전서는 팀 내 최고점인 9점을 받았다. 기성용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매 경기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상대 압박으로부터 공을 간수하는 능력은 이미 톱클래스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기성용의 정확한 패스 능력은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를 추구하는 포옛 감독의 스타일과도 맞아 떨어져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반응이다.

또 기성용의 패싱능력에 필적할 만한 동료 선수가 없다는 점도 기성용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 스포츠전문매체 스카이스포츠는 아스톤 빌라전 직후 기성용의 대해 “(이날 뛰는) 미드필더 가운데 최고였다”고 평가하며 팀은 졌지만 팀 내 최고인 평점 7점을 부여했다.

이와 함께 기성용은 지난해 EPL에서 가장 패스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일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에 따르면 기성용은 지난해 EPL에서 가장 패스 성공률이 놓았던 선수 1위를 차지했다.

기성용은 성공률 91.2%를 기록했고 그 뒤로 무사 뎀벨레(90.5%·토트넘)가 선정됐다. 또 다른 유럽리그를 포함한 순위에서도 나폴리(이탈리아)에서 뛰는 발론 베라미(91.7%)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했다.

영국 런던 지역 일간지인 인디펜던트도 통계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 닷컴’을 인용해 기성용을 집중 조명했다. 이 매체는 선덜랜드 키플레이어인 기성용에 대해 여러 항목으로 나눠 분석했는데 패스 부분에 뛰어나다는 ‘스트롱’으로 표기했고 경기마다 1~2개의 결정적인 패스를 건넨다고 보도했다.

기성용의 고공행진에 속이 타들어가는 건 스완지 시티다. 스완지 시티는 중앙 미드필더인 존조 셸비가 들어오면서 기성용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기성용의 활약과 달리 셸비의 활약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스완지 시티는 최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페르난지뉴, 야야 투레, 알렉산다르 콜라로프에 연속골을 허용했다. 윌프레드 보니가 두 골 만회했음에도 2-3으로 패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중원에서의 셸비는 80분간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어느 하나 인상적이지 못했다. 야야 투레와의 중원 싸움에서 밀린 것은 물론 공격과 수비에서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결국 셸비는 스카이스포츠로부터 최하 평점인 6점을 받았다.

또 스완지 시티는 지난 시즌 간결한 패스플레이로 주목 받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중원에서 무게감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 시즌과 같은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지 언론들과 팬들은 기성용의 복귀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바이탈풋볼은 지난 2일 “스완지 시티 팬들이 기성용의 복귀를 원한다”고 전했다. 이는 바이탈풋볼에서 진행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으로서 ‘기성용을 복귀시켜야 한다’라는 질문에 90%의 스완지 시티 팬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진화하는 기성용 빅클럽 진출 눈앞

초심으로 돌아간 기성용이 9월부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하면서 특유의 안정감과 날카로운 패스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다시 경기장 안에서 중심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도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10월 브라질·말리와의 2연속 평가전을 앞두고 기성용을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그가 합류하자 대표팀의 경기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과 접전을 벌인 끝에 0-2로 분패했고 말리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기성용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성용은 “경솔한 행동으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며 “경기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실수를 만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또 그는 “모든 초점은 6월에 맞춰져 있다.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대표팀이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팀 가운데 만만한 상대는 없다. 우리의 경기력을 최대한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타고난 재능에 지난해 위기를 겪은 뒤 정신력을 재무장하면서 한층 더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주전 경쟁에서 밀렸을 때도 그라운드를 밟기 위해 내린 결정은 박수받을 만하다.

박주영은 매번 홍명보호의 공격 핵심으로 주목을 받지만 소속팀에서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이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 하고 있다.

이와 달리 기성용은 자신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어엿한 에이스급으로 부상했다.

물론 기성용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기성용의 부친인 기영옥 광주광역시축구협회장이 “기성용의 헤딩력이 떨어진다. 원래 헤딩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헤딩 능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성용은 187cm의 장신에 거칠기로 소문난 스코틀랜드 리그를 거치며 체력적인 측면에서 향상됐다. 지난 첼시전서 연장 후반 8분 직접 헤딩슈팅으로 득점을 노리는 장면을 연출한 것도 기성용이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증표로 볼 수 있다.

진화를 거듭한 기성용이 공중마저 장악할 수 있다면 빅클럽에서 뛸 날도 머지않은 현실이 될 것이다.
또 브라질월드컵 8강 진출의 꿈을 위해 중원 사령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길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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