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싸움? 기륭전자…무슨 일

▲ 최동렬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회장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최동렬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사진) 회장이 야반도주 논란으로 궁지에 몰렸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가운데 노조원들 몰래 회사를 이전하다 사회적인 분노까지 샀다. 2010년 노사 간 합의로 6여 년간의 갈등이 끝나는 듯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양측의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조합원들은 “최 회장이 약속한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다가 야반도주까지 했다”며 격분했다. 반면 기륭전자 측은 “조합원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소속 직원이 아니므로 이전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이들의 싸움이 파국으로 치달릴 것으로 보인다.

▲ 사무실 이전으로 비어있는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본사.

사무실 이전 장소 ‘비밀’…묵묵부답
사측 “직원 고용 한 적 없다” 주장

지난 6일 [일요서울]이 찾아간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사무실에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만이 남아있었다. 새로 이전했다고 공시한 주소로도 몇 차례 찾아가 봤지만 기륭전자 직원들은 만날 수 없었다.

기륭전자는 지난해 12월 30일 정직원 복귀를 약속한 노동자들을 버려둔 채 도둑이사로 사무실을 이전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조합원들은 “회사 이전에 대한 어떤 얘기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며 “출근해보니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들어와 사무실 안의 짐들을 옮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사무실의 행방을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유일하게 그 자리에 있던 총무부장으로부터 임대료 5000여만 원을 내지 못 해 짐을 빼게 됐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임대료 체납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면 왜 우리에게는 이전 주소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냐고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며 “사무실을 옮긴 이유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측의 말대로 건물주가 임대료를 받지 못해 기륭전자를 쫓아낸 것이라면 사무실 물건을 폐기처분하거나 팔아버렸을텐데, 굳이 창고를 임대해 보관해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단순히 관리비를 내지 못해 쫓겨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며 “이미 전부터 옮겨간 사무실에서 업무를 봐 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사무실을 지키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또 오전에는 상도동의 최 회장 자택 앞에서도 농성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은 사측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며 최 회장과의 만남도 가지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농성을 저지당하기도 했다. 당시 최 회장은 경찰에게 “우리 회사에서 일한 적도 없고,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왜 여기에서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의 발언이 더욱 큰 논란이 된 것은 기륭전자가 2010년 체결한 ‘사회적 합의’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전에도 기륭전자는 정규직화 문제를 두고 노사 간에 6여년이란 시간 동안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 2010년 11월 기륭전자 노사는 국회에서 조인식을 가지고 합의를 선언했고, 사측은 조합원들에게 1년 6개월 뒤 정규직 복직을 약속했다.

조합원들은 합의 내용에 따라 지난해 5월 기륭전자로 복귀했지만 대기발령이 내려진 채 급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 측은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4대 보험 가입 등이 힘들다고 했다”며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해서 기본적인 4대 보험만이라도 먼저 처리하자고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가 어렵다더니 재무팀을 새로 뽑고, 새로운 이사진 선출, 최 회장의 운전기사까지 새로 고용됐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변명을 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조합원 측은 “불성실 공시를 이유로 주식매매 정지까지 받은 기륭전자다”며 “야반도주로 비난을 받자 지난 3일 이사회를 통해 사무실 이전을 결정했다는 공시를 하는 등 거짓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이전한 주소를 알려주고 약속을 온전히 이행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면서 “끝끝내 회사가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노사 간의 합의를 쉽게 저버리는 행태는 바로 잡을 것이다”고 말했다.

경영 정상화가 우선
외면한 것 아냐

이에 기륭전자 측은 “회사가 어려워 규모를 축소해 근처 오피스텔로 사무실을 옮겼다”며 현재 사무실에서만 업무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또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2010년 노사 간 합의를 한 것은 맞지만 경영정상화가 됐을 때 약속 이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상장폐지 심사가 끝나고 경영난이 해소된 뒤 최 회장의 의견에 따라 이번 문제의 해결 방향이 결정될 예정이다”고 밝혔다.

현재 기륭전자는 국외로 이전한 공장을 매각하는 등 지속적인 경영난을 겪어왔고, 사무실 임대료가 밀려 건물주로부터 지난해 12월 퇴거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기륭전자 관계자는 “직원들 대부분이 회사를 나가고 10여 명 정도만 남아있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어서 합의 내용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남아있는 직원들 급여도 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규직 채용이 가능하겠나”고 말했다. 실제로 조합원들이 출근했다고 말하는 지난해 5월부터 임금을 주거나 생산라인에 투입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생산라인이나 공장 가동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어 “생산라인 정상화가 되려면 투자를 받고 회사가 안정되는 게 우선이다”며 “새로운 투자자가 등장했을 때 재무팀이 고용됐고, 기존의 운전기사가 그만 둬 새로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새로운 이사진 선출은 당시 투자자의 요구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불성실 공시’도 “거짓 내용을 올려서가 아니다”면서 “공시를 제 때 바로 올리지 못해 벌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부적인 문제부터 해결돼야 하는데 조합원들은 미국까지 원정 시위를 나오면서 계약이 깨지게 만들고, 생산라인을 점거하는 등 회사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 중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도 있다”며 “어떤 다른 의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편 기륭전자는 1966년 설립돼 방송용 셋톱박스 등 위성방송 관련 기기를 제조하는 업체다. 1995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며 승승장구 했지만 2000년대 들어 경영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직원 규모도 2001년 185명에서 현재 10여 명으로 급감했다.

또 코스닥 시장에서는 거래 중지 상태에 있으며 상장 폐지를 검토 받고 있다. 기륭전자의 상장폐지 여부는 이달 안으로 심사위원회를 열어 결정할 예정이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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