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式 사정 시나리오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공공부문 정상화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에서다. 앞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과 신제윤 금융감독원장·황창현 감사원장도 공공기관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첨병했다. ‘공기업 정상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기업 사정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공정위→금융위→감사원에 이어 정부의 전방위적 칼날이 드세진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미 공기업 수장의 사찰설까지 주목받고 있다.

철도파업서 뒷심 보인 정부 산하기관 경영정상화 대책 ‘퇴짜’
민영화 늦추는 공기업 사찰설 실적부진 기관장 조기해임론까지

박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기업 자체의 방만·편법 경영이 심각하다”며 “경영이 부실한데도 성과급과 과도한 복리후생비를 지급하고 무분별한 해외 자원개발과 투자 등 외형확대에 치중하고 유사·중복사업을 불필요하게 추진한다든지 자회사를 세워 자기 식구를 챙기는 잘못된 관행들을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 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현재 295개 공공기관 부채 잔액은 493조 원이다. 이는 2008년 290조 원에서 2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합치면 686개 기관의 총부채는 565조8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국가부채(443조원)를 훌쩍 뛰어넘는다.

사정정국에 숨죽이는 재계

박 대통령이 공공부문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것은 집권 2년차 경제회복에 공공부문이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인지 감독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감사원의 눈빛이 매섭다.
공정위는 새해 초부터 대형공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노대래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공공분야 모두 소수 독과점 기업이 시장을 좌우하고 있고 우월적 지위남용이 문제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매우 시급한 과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 잡는 데 공정위가 선조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비정상 거래가 정상거래로 이해되는 상황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는 쉽지 않다.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이해하도록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강화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노 위원장이 공공 분야의 우월적 지위 남용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당국 역시 금융공공기관의 예산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후속조치로 보인다.
이를 위해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근절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금융공공기관은 금융감독원, 수출입은행, 정책금융공사, 기업은행,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캠코), 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8곳이다.
금융공공기관 관계자는 “방만한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공공기관의 비정상적인 운영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을 엄격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도 예고되면서 지역 공기업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공기업 감사 주무 부서인 공공기관 감사국을 비롯해 산업금융감사국 등의 인원을 차출, 30여명에 이르는 ‘감사 준비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진다.
아직 감사 대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차적으로 한국전력·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철도공사 등 부채규모가 크고 운영상태가 방만한 40여개 공기업이 타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특히 대구시 산하 공기업들의 ‘배짱 경영’ ‘낙하산 인사’ ‘정규직만의 성과급 잔치’ 등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어 이들이 우선시 될 것이란 전망도 우세하다.
민영화(지분 매각 포함)를 앞둔 공기업을 집중 사찰중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현 정부가 코레일의 파업 과정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뚝심을 보인만큼 민영화를 앞둔 공기업이 그 시기를 늦추는 것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가 예견되고 있다. 이는 과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이 안산도시개발 민영화 추진과 관련해 김모 대표를 사찰한 바 있고 카지노업체를 운영하는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의 민영화 과정도 관여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이번 소문도 주목받는다. 안산도시개발은 경기 안산 일대의 지역난방을 맡은 기업으로 안산시-삼천리 컨소시엄에 매각돼 민영화에 성공했다.

한편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공공기관들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대통령까지 나선 상황에서 경영개선 자구책을 재차 분석하는 공기업도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공기업 수장들의 줄사퇴 표명이 이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도 주목받고 있다.

skycro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