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처리를 막기위해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다.새해 벽두부터 여의도 정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4대개혁법안 후폭풍이 여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컸던 만큼 그 실망감 또한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인도양 주변에서 일어난 사상 최대 규모의 ‘쓰나미’(지진·해일을 일컫는 일본어)가 여의도 정가를 강타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나돌 정도로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성난 민심을 반영하듯 정치권에서도 이상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여야를 망라하고 지도부 책임론 및 퇴진론이 거세지고 있고, 보혁 갈등도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차기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계파간 세력싸움도 가시화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도래할 것이라는 이른바 ‘3월 정국 빅뱅설’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빅뱅설의 중심에는 파행으로 막을 내린 여야간 극한 대치정국이 자리잡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 연말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 개혁법안’ 처리를 놓고 ‘올인’ 승부를 펼쳤다. 이러한 여야의 극한 대치는 경제·민생법안 등 산적한 현안 법안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상대당을 ‘폭력저지당’과 ‘날치기당’으로 매도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성난 민심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정치개혁을 염원하는 4·15총선 민의는 온데 간데 없고 17대 국회도 정쟁과 파행이라는 구태를 답습했다. 아니 과거 보다 더 심각하고 치유 불가능하다는 악평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정국 재편론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성난 민심을 기조로 한 악평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여야간의 첨예한 대치는 차치하더라도 여야 내부에서조차 이념·보혁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연말정국때 열린우리당 천정배·한나라당 김덕룡 두 여야 원내대표간의 두 차례의 협상 결과를 의원총회에서 백지화시켰다는 사실은 이러한 심각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여야를 망라한 이른바 ‘의총 대반란’은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와 불신을 기조로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야 정치권의 정체성 상실과 더불어 보혁 세력간의 보이지 않는 이념 갈등이 잠재돼 있다. 여야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온건파는 설 자리를 잃었고, 지도부의 협상안도 무용지물이 됐다. ‘의총 대반란’이후 일부 여야 의원들은 “이럴바엔 차라리 헤어지자”는 주장도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4대법안 후폭풍이 여야 내부의 치열한 이념·정체성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3월 정국 빅뱅설’도 바로 이러한 갈등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4대법안을 둘러싼 이념갈등이 장기화되고 이로 인한 내홍이 심화될 경우 이념과 정치노선을 같이하는 세력간의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이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빅뱅설의 골자다. 또 정국 빅뱅이 추진될 경우 그 시기는 4월 재보선 직전인 3월에 단행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미니 총선’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4월 재보선은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지지층이 일부 겹치고 있는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과반 의석 사수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정계개편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여기에 여야 모두 내부적으로 극심한 이념갈등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러한 문제를 하루빨리 치유하지 못한다면 4월 이전에 정국 빅뱅이 단행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보법 연내처리를 고수했던 열린우리당 강경파들은 지도부 책임론과 용퇴론을 주장하는 동시에 4대개혁 법안을 포함한 각종 개혁법안 추진을 위해 모든 정치적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강경파들은 당내 온건파들의 소극적 자세를 문제삼아 분당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한나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보법 폐지 문제를 놓고 극렬한 보수세력과 전향적 개혁파로 분화되는 등 극심한 이념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권주자인 박근혜 대표를 정점으로 한 주류세력과 반대세력인 비주류간의 물밑 파워게임도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여기에 두 번의 대선 패배와 진보성향이 강한 젊은층 유권자들의 증가 등으로 이대로 가다간 차기 대권도 불투명하다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비주류측은 당 정책 노선의 전향적인 변신 등 대변화를 촉구하고 있다.주류측도 정치환경 변화와 비주류측의 주장을 일부 공감하면서도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국보법 등 각종 개혁정책을 여과없이 수용했을 경우 든든한 지지층인 보수·기득권층마저 외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심각한 이념갈등과 주류·비주류간의 파워게임을 봉합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 또한 분당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여야 차기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계파간 세력확장 경쟁도 빅뱅설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여야 잠룡들은 파행정국 와중에도 이해득실을 따지며 물밑 세력확산을 모색하고 있는게 현실이다.여권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근태 복지부장관은 4월 전당대회때 당권 장악을 노리고 있다. ‘당권=대권’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두 잠룡에게 있어 4월 전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장관 신분인 만큼 직접 당권에 도전하지 못한다는 현실론을 감안, 두 사람이 대리인을 통해 당권 장악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란 게 여권 내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한나라당의 유력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도 대권행보를 가시화하고 있다.

박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두 사람은 당 외곽 조직을 중심으로 대권행보를 걷고 있다.따라서 두 사람이 향후 당내 경선에 참가해 공정한 경쟁과 그 결과에 승복할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당 외곽에 대선캠프를 마련해 독립적인 대권 마이웨이를 선언할 경우에는 당 분열은 물론 분당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처럼 신년 벽두부터 정치권 주변에선 4대법안 후폭풍 및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린 3월 빅뱅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비록 이러한 빅뱅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여야 정치권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심각한 내홍 및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줄서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작금의 정치상황을 감안하면 정치권의 일대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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