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범인을 잡기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범인에게로 다가가게 된다는 말이 있죠.”연희동, 성북동, 평창동 등 소위 잘나가는 부유층들이 살고 있는 집을 대낮에 털고 다녔던 간 큰 도둑 이씨는 경찰과 한 여관에서 잠을 자다 붙잡혔다. 이씨가 수원의 모처에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된 성북서 강력4반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서며 이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수 일째. 교대로 잠복을 서며 대기했지만, 이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도 허탕이구나’라는 생각이 형사들 주변에서 맴 돌 무렵, 여관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나온 김흥열 형사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그토록 찾았던 범인의 차량이 여관 앞 주차장에 서 있었던 것. 김형사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형사들을 불러모았고, 여관 숙박부를 뒤졌다. 뜻밖에 이씨는 형사들의 숙소 옆방에서 태연히 잠을 자고 있었다. 10여일 동안 쌓였던 형사들의 피로가 확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 형사들은 붙잡힌 뒤에도 용감무쌍(?)한 행동으로 일관한 이씨 때문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 이씨는 조사과정에서 고분고분하다가 자신의 혐의가 드러난다 싶으면 갑자기 돌변하며 경찰들에게 “더 이상 나에게 묻지 말고 니 들이 알아서 수사하라”는 둥 빈정거렸고 심지어 “너희(경찰) 가족들 조심해라.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과 욕설을 퍼부으며 혐의사실을 계속 부인한 것. 심지어 찾아온 당직변호사가 사건 개요를 알기 위해 이씨에게 질문하자 “당신 뭐 하는 사람이냐. 그런 것은 알 필요 없다”면서 “내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당신의 업무 아니냐”고 반문한 뒤 30여분 동안 일장 연설을 해 변호사까지 혀를 내둘렀을 정도.

이씨는 또 자신이 훔친 물건을 팔다 경찰에 붙잡힌 김모씨에게도 온갖 협박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경찰의 주의 조치도 무시한 채 “형은 2, 3달 살다 나가면 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면서 “한 놈을 내세우자”고 은근히 김씨를 부추겼고, “형을 교사혐의로 불겠다”는 협박까지 일삼았다. 심지어 이씨는 자신이 붙잡힌 데에 대한 앙갚음으로 “출소하면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조사결과 이씨는 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이씨는 가족의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한편 수사를 맡았던 한 경찰은 “이미 감옥에서 10년을 넘게 산 경험인지 이씨는 경찰에 붙잡히자마자 담배를 끊고, 유치장에서 책을 읽으며 교도소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경찰 조사에서는 큰 소리를 떵떵 치면서도 자신이 감호소까지 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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