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받긴 했는데, 후계자는 어디로…

 

▲ 구자원 LIG그룹 회장<뉴시스>

장남 4년형·차남 3년형…경영권 승계 적신호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 LIG손보 매각도 눈길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검찰의 면죄부를 받았음에도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앞서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기소됐던 구 회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이끌어 냈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할 두 아들은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실상 구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계획은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더욱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 회장의 집행유예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또 다시 사회에 상기시키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구 회장을 비롯해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2012년 11월 LIG건설 인수 과정에서 담보로 제공한 다른 계열사 주식을 회수하기 위해 LIG건설이 부도 직전인 사실을 알고도 2000억 원 상당의 CP를 발행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그리고 지난 11일 이들 LIG 오너일가의 운명은 엇갈렸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이 됐던 구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알려진 장남 구 부회장은 징역 4년, 차남 구 전 부사장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차남 구 전 부사장의 실형 선고는 충격이었다.

재판부는 구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에 대해 “구 회장은 그룹 총수로 LIG건설의 회생신청 사전 계획을 최종 승인하는 등 가담 정도가 중하지만 고령으로 간암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구 회장은 허위 재무제표 작성과 공시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다만 1심에서 분식회계와 CP 발행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구 전 부사장의 경우 항소심 재판부는 “LIG건설 부사장으로 경영을 좌우하면서 허위 재무제표가 작성·공시되는 것은 물론 CP를 발행하더라도 만기에 갚을 자력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실형을 내렸다.
구 부회장 역시 경영을 지휘하는 대주주로 범행 전반에 모두 가담했고 사기성 CP 발행 등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상당부분 누렸다고 보이는 점이 부각됐다.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허위 재무제표 작성은 기업 투명성을 저하하고 시장 경제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기업범죄”라며 “LIG그룹은 사건 실상을 밝힐 회계자료를 폐기해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된 자료를 금융감독원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진지하게 반성하는지 의문스럽다”고 전했다.

또 “기업 사망선고에 버금가는 회생신청을 계획하고도 대주주 일가의 담보주식 회수를 위해 회생신청을 미루고 자금조달을 계속했다”며 “이는 기업 내부 정보를 독점한 최고경영자가 정보가 부족한 고객을 속인 것으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파렴치한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 LIG그룹

다행이긴 하지만…

항소심의 결과를 1심과 비교해보면 형량만으로 따졌을 땐 거의 면죄부를 받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그룹의 수장인 구 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됐으니 LIG 입장에서 당장은 더할 나위 없었다.
구 부회장에 대해서도 징역 4년이 선고되긴 했지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보다 4년가량 형량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가벼워졌다. 구 전 부사장만 무죄에서 징역 3년으로 죗값이 무거워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오너 일가가 지난해 말까지 사기성 기업어음 피해액 2000여억 원을 모두 변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재판부가 이를 감안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다. 구 부회장은 그동안 지분매입 등을 활발하게 보이며 고령의 구 회장을 대신할 것으로 전망됐던 터라 경영 공백이 불가피한 상태다. 구 회장과 LIG그룹으로선 졸지에 장자 승계 원칙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더구나 장자 승계 원칙도 원칙이지만 구 전 부사장도 잃어 마땅한 대안조차 없다.

길게 본다면 구 부회장의 출소 이후 경영권 승계를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4년의 시간 내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노심초사다. 현재 LIG그룹은 구 회장 일가의 법정구속으로 생긴 경영공백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하는 중이다.

또 일부는 LIG가 LIG손해보험을 매각하기로 한 결정과 연관지어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LIG손해보험이 핵심 계열사로 그룹 수익의 70~80% 가량을 차지하는 초우량 금융사인 만큼 경영권 승계 자체는 딱히 의미가 없어졌다는 풀이다. 앞서 구 회장은 LIG건설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혐의로 2012년 11월 기소된 뒤 피해 보상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해 지난해 11월 LIG손해보험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LIG그룹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담당하는 LIG손해보험을 매각하게 되면 기업에 남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냐”면서 “경영권 승계를 중단한 상태에서 기업 구조 재편에 힘을 쏟는 것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라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 회장의 집행유예를 바라보는 시선도 따갑다. 경제개혁연대는 구 회장의 집행유예가 결정되자 성명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 개선이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이라며 “법원의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 판결로 규정할 수 있다. 경제발전에 힘쓴 점과 좋지 않은 건강상태를 참작한 것은 과거 재벌들의 형사사건에 대해 면죄부를 주던 판결문 표현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날을 세웠다.

경제개혁연대의 한 연구원 역시 “각 범죄마다 양형 기준이 있는데, 재벌 총수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이라며 “LIG의 경우 LIG손해보험을 매각해 변제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즉, 변제능력이 충분한 재벌 총수들은 실형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피해자 합의나 변제의 노력이 감형 사유가 되려면 수사나 기소 전에 선행됐어야 한다”며 “결국 돈으로 집행유예로 나온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말뿐인 처벌이다. 향후 일어날 기업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겠나’라는 인식이 생길 위험도 있다”며 “노동자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보면 총수들의 재판과 너무 비교가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LIG그룹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LIG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경영공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문경영인 체제에 돌입했던 것”이라며 “앞으로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LIG손해보험 매각과 관련해선 “매각 자체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구 회장의 향후 움직임을 묻는 질문엔 “경영 현안을 둘러보지 않겠냐”면서 “피해자 변제에 대한 사재출연이라든가 하는 부분도 개인적 결정이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계는 구 회장이 LIG손해보험 매각과 관련된 구체적인 작업들을 가장 먼저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두 아들의 실형이 확정됐고, 자신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LIG손해보험을 매각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목소리도 들리는 가운데 구 회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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