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납치설 휩싸인 한성무역 한필수 대표

정착금 2000만원으로 창업…지난해 매출 약 500억 원
사기 밝혀져도 피해자들 투자금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한성무역 한필수 대표의 행적이 묘연하다. 지난달 19일 중국 선양으로 출장을 갔다가 22일 사라진 그는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의 잠적과 함께 국내에서는 수백억 원대의 투자금을 날렸다면서 탈북자 단체 회원들과 직원들이 한 대표를 고소하는 등 속속 사기혐의도 드러나고 있다. 과연 한 대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요서울]에서는 그의 과거 행적을 뒤쫓아 봤다.

함경북도 출신인 한필수 대표는 북한에서 광부로 일하다 2002년 탈북해 남한으로 들어왔다. 탈북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그는 국내로 들어오기 전 중국 선양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훗날 이 경험은 한성무역의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청계천에서 막노동을 하다 동대문 잡화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국내 생필품을 중국에 내다 팔 생각을 했고 당시 정착금 약 2000만 원을 밑천삼아 2003년 한성무역을 만들어 키워왔다.

사업 초기 한 대표는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은행에 찾아가 대출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당시 한 대표는 생각을 바꿔 은행에 적금을 든 후 그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냈다. 이랬던 한 대표가 탈북자들에게 사기를 치고 잠적을 했다는 사실에 주변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상태다.

기업 성공 원동력은 중국 유통망 장악

한 대표는 탈북 후 중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생필품을 중국에 수출해 수익을 냈다. 한성무역의 주 거래처는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CJ, 대상 등이었으며 이들 기업에서 생산한 비누, 치약, 샴푸 등이 주 수출 품목이었다.

중국은 국내와 달리 대형할인점보다 소·도매점 중심의 유통구조를 갖고 있어 국내 대기업들도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대표는 중국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며 안면을 튼 상인들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생필품을 손쉽게 판매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성무역의 성장 원동력이자 한 대표의 자산이었다.

그러던 중 한 대표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자체브랜드 개발을 시도했다. 중국에 불던 한류의 영향으로 ‘made in korea’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실제 국산제품이라면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건 판매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자체브랜드 생산은 지난해부터 시작됐고 생산과 판매는 (주)SL기업을 통해 진행됐다.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하던 한 대표는 탈북 이후 10년여 만에 성공한 탈북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한성무역의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약 500억 원 정도다. 어지간한 중견기업에 견줄 만큼 큰 성공을 이룬 것이다.

탈북자 아끼는 마음 거짓이었나

한 대표는 탈북자 출신이다보니 탈북인들의 남한 정착에 큰 애착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탈북인들의 취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한성무역은 직원의 90%를 탈북자 출신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직장적응 및 전문기술 향상을 위해 다양한 교육도 실시해 왔다. 과거 한 대표는 탈북자들의 급여도 초봉이 2000만원 정도라고 밝힌 적이 있다.

또 탈북자를 고용할 경우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고용지원금도 직원들이 모두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 지원금을 급여에 포함시키지만 한성무역은 급여 외라고 했다.

이처럼 탈북자들을 위한 마음이 누구보다 컸던 한 대표. 정말 그가 사기를 저질렀을까. 만약 사기꾼이라면 과거의 이러한 말과 행동이 모두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 수밖에 없다.

한 대표는 중국으로의 출장이 잦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사업이 중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을 대신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거나 편지 등을 전달해 주는 역할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인터뷰 당시 한 대표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한 대표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한 것을 알면 신기하게도 북한의 가족들이 연락을 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직접 전화통화를 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전화녹음을 해서라도 가족임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단다.

탈북 브로커 발각돼 북으로 끌려갔을 수도

대부분의 전화 내용은 돈을 부쳐 달라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생활이 너무 어려우니 도움을 달라는 것. 한 대표에 따르면 국내 탈북자들이 북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3인 가족 기준 1년에 500만원 가량이라고 했다. 그정도는 돼야 북한에서 생활이 가능하다고.

또 북한에서는 탈북한 자녀가 남한에 정착한 경우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대표는 무역 사업 외에도 탈북자들의 가족을 연결해 주는 브로커 역할도 수행하고 있었다. 납치설이 제기된 이유다. 그래서 한 대표가 북한 측 군인들에게 잡힌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속속 드러나는 사기 행각들

현재 국내에서는 한 대표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경찰서에 고소한 상태다. 한 대표에게 피해를 입은 단체는 귀환국군용사회로 국군 용사 10명으로부터 투자금 28억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용사회 회원들은 40대 여성 2명이 한씨 회사의 홍보팀이라며 찾아와 계약서 등을 내밀고 끈질기게 투자를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들은 투자금의 1.5%를 매달 수익으로 돌려주겠다고 피해자들에게 약속했으며, 한 대표 직인이 찍힌 계약서로 직접 투자금을 받아가거나 은행에서 계좌이체를 하는 방식으로 계약했다.

이 밖에 회사 직원 11명도 한 대표가 수익금 15%를 주겠다고 속여 회사 운영자금 명목으로 5억3530만 원을 가로채 갔다고 파주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여러 고소건을 모아 피해 상황을 정리해 보면 한 대표에게 사기를 당한 인원이 400여 명에 투자원금만 총 100억 여 원에 이른다.

현재 서울노원경찰서가 한 대표에 대한 고소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과 파주경찰서로부터 이첩 받아 수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사기 당한 돈을 돌려 받을 확률이 낮다는 점이다. 수사가 진행 돼 한 대표를 붙잡는다 해도 현재 한 대표는 가진 돈이 거의 없다. 한 대표 소유의 파주공장 토지와 건물, 서울 사무실 모두가 대출을 받은 은행과 개인에게 담보로 설정이 돼 있기 때문이다.

한성무역 공장이 있는 파주시 상지석길 3천65㎡의 땅은 2010년 매매된 이후 최근까지 채권최고액 총액이 27억1천380만 원이다. 한 대표는 3곳의 금융회사로부터 파주공장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아 이곳 전부가 근저당설정이 돼 있는 상태다.

서울 본사 사무실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 203가길 29 사무실도 채권최고액 총액이 9억2천500만원에 은행과 개인에게 근저당설정이 돼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근저당설정한 개인이 여성인 A(36세)씨인데 이 여성 또한 최근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공장과 사무실 등 회사재산을 처분한다 하더라도 탈북 투자자들이 한 대표에게 믿고 건넨 투자금 회수는 사실상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회사 운영진들은 한 대표 없이 회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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