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푸르른 날에>가 오는 26일부터 6월 8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서 관객과 다시 만난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30여 년 전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광주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 우리 모습을 통해 과거와 역사를 바라보는 동시대적 시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다. 2014년 다시 남산예술센터의 무대에 오르는 연극 <푸르른 날에>는 한국 연극의 현실적 여건 속에서 작품의 의미와 재미 모두를 인정받고 중극장 규모의 극장에서 4년 연속 재공연을 이어왔다는 것 자체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번 공연은 서울 공연 직후 극의 배경인 광주 공연이 예정돼 있다. 서울에서의 공연 성과를 바탕으로 5·18의 중심에서 더욱 깊은 감동과 묵직한 울림을 통하여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차밭이 보이는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과거의 오민호)은 조카이자 ‘딸’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그의 기억은 30여 년 전 전남대를 다니던 야학 선생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민호는 전통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에 빠져 있었고, 정혜의 동생 기준은 민호를 친형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터지자 그 소용돌이 속에 정혜는 민호를 떠나보내고 도청을 사수하던 민호와 기준은 운명이 나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한 자가 된 민호는 고문 후유증과 함께 정신이상을 겪고 삶을 포기한다.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진흙탕이고 거부하고 싶은 생, 결국 민호는 속세의 자신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다. 민호와 정혜 사이에 생긴 딸 운화를 친형 진호가 거두었지만, 세월이 흘러 운화의 결혼에 이르러서는 끊을 수 없는 속세의 인연에 애달파한다.

기존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루었던 작품들이 역사 현장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극으로 반성과 감동을 주었다면, 연극 <푸르른 날에>는 현재 그들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생의 ‘푸르른 날’을 역사적 비극에 빼앗긴 사람들이 잃어버린 푸르른 날을 그리워할 수도, 노래할 수도 없었던 한 세월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오늘을,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작품은 역사적 비극의 실체를 30여 년간 이루어지지 못한 남녀의 사랑으로 은유함으로써 5·18의 역사적 사실과 정신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정주 시, 송창식의 노래로 여는 마지막 장면은 ‘푸르른 날’이 개인과 역사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기억함과 동시에 푸르른 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펼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암시하고 있다. 연출가 고선웅은 무대화의 과정에서 어둡고 무거운 서사와 통속적인 멜로드라마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역이용하여 다소 과장되며 희극적인 연극어법을 취하고 있다. <푸르른 날에>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극에 아이러니와 위트를 더함으로써 지난 역사가 아닌 오늘의 역사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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