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부를 소유한 재일교포를 사칭해 주부들을 농락한 60대 사기꾼이 검거됐다. ‘회장님을 모시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던진 미끼는 회장님이 국내에 머무르는 동안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 조건으로 제시한 액수는 천만원 이상의 고액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은 여성들의 기대와 달리 회장님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인물로서 한 남성의 ‘원맨쇼’에 불과했다. 실제로 회장님을 사칭해 여성들을 농락한 남성은 60대의 무직자였던 것이다.‘따르르릉’대전에 사는 심정숙(가명·37)씨는 집에서 청소를 하던 중 무심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상대는 나지막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지닌 박현섭(가명·61).심씨가 집에 혼자 있음을 안 그는 “사실은…”이라고 말한 뒤 뜸을 들이며 심씨의 관심을 유도했다.

호기심이 생긴 심씨가 말을 계속할 것을 재촉하자 박씨는 “나는 재일교포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심씨가 ‘사업을 크게 할뿐 아니라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회장님을 모시고 있다’는 자신의 말에 솔깃해하는 것을 눈치채고 박씨는 은밀한 제안을 했다.그는 “회장님이 사업차 이번에 한국에 잠시 들렀다”며 “회장님이 머무는 동안 ‘접대’할 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여기서 말하는 접대는 물론 성접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뜬금없는 제안에 어리둥절해하는 심씨에게 그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5일 동안 1시간씩만 접대하면 회장님은 적어도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은 주실 겁니다.”처음에는 장난전화로 알고 끊으려했던 심씨는 통화내내 점잖고 신사적인 박씨의 말을 믿게 됐다. 며칠만 ‘투자(?)’하면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오히려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편으로 내심 불안해하는 심씨에게 박씨는 “회장님은 정말 존경할만한 분입니다. 아주 점잖은 분이시죠”라며 회장님의 인덕을 과시했다. 동시에 그는 또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기회일겁니다”라는 감언이설로 꾀었다.‘굴러들어온 복’이 날아갈까 조급해진 심씨가 “회장님을 모시겠다”고 하자 박씨는 시간을 정해 전주역 앞으로 나올 것을 제안했다.그는 심씨에게 “회장님이 지금 고액수표밖에 없어서 환전에 어려움이 있으니 나올 때 현금으로 100만원 정도만 준비해오라”고 부탁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드디어 약속한 10월 19일 오후.심씨는‘회장님’을 만나러 갈 생각에 오전부터 들떠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는 ‘돈많은 교포 회장님을 만나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그러나 정작 약속장소에 나온 사람은 박씨가 모신다는 회장님이 아닌 박씨 자신이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약속장소인 전주역에 도착한 심씨는 박씨를 회장님으로 굳게 믿고 인근여관으로 따라 들어갔다.심씨는 엄청난 재력가 회장님이 근사한 호텔이 아닌 인근 여관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박씨의 능숙한 궤변에 의심을 접고 ‘접대’에 응했다. 관계를 맺은 후 박씨는 “운전기사에게 수고비를 줘야하는데 현재 고액수표밖에 없다”며 “이따가 환전해줄테니 일단 100만원만 달라”고 말했다.고액수표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내심 기대가 컸던 심씨는 아무 의심없이 미리 준비해온 100만원을 박씨에게 건넸다.그러나 “잠시 기다리라”며 나간 박씨의 모습이 심씨가 본 마지막이었다.몇시간을 기다려도 박씨가 돌아올 기색이 없자 심씨는 그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망연자실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심씨는 ‘여유롭고 중후한 재일교포’라는 박씨의 말을 그대로 믿고 ‘이게 어디서 굴러들어온 복인가’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내심‘엄청난 돈’을 기대하고 대전에서 전주까지 내려온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전주북부경찰서는 10월 22일 박씨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사건을 담당한 형사3반의 김수복 반장은 재일교포를 사칭해서 부녀자를 꾀어내 농락하는 남성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피해여성의 제보에 따른 피의자 파악을 한 결과 경찰은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잠복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또 다른 ‘미끼’를 낚기 위해 전주역 공중전화 앞에서 서성거리던 박씨를 발견했다. 잠시후 박씨가 이숙자(가명·50)씨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경찰은 현장에서 박씨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이 여성 역시 ‘회장님’을 만나기 위해 들뜬 기분으로 춘천에서 전주까지 내려왔던 것이었다.

조사결과 박씨는 이미 몇 차례의 전과가 있으며 가족으로는 딸과 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노동일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일이 없을 때가 많아 거의 무직이나 다름없었으며 “돈을 목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경찰측은 설명했다.김반장에 따르면 박씨는 전주역 앞에 위치한 공중전화에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범행을 시도했다.김반장은 “대전, 여수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여성이 받으면 작업을 걸었다”며 “교포 회장님이라는 말에 넘어가는 여성이 의외로 많았다”고 전했다. 이는 교포 사업가나 미시민권자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일부 여성들의 허황된 심리를 이용한 범죄라는 것이 경찰측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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