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청와대 참모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해 우왕좌왕하면서도 대통령 보고에만 급급했던 모습이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7월 2일 전체회의를 통해서다. 특위는 이날 해경 본청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고받은 유선전화 녹취록, 해경과 지방청이 주고받은 녹취록 및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는 승객구조보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영상 자료 확보에 더 매달렸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 순간에도 청와대 국가안보실 상황반장이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지금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러는데, 영상으로 받은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영상 송출이 늦어지자 “아, 그거 좀 쏴 가지고 보고 좀 하라고 하라니까, 그거 좀”이라고 역정을 내며 재촉하기도 했다. 생존자 파악 과정에서도 승객구조 상황이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상황실은 해경에게서 처음에 370명이 구조된 것으로 보고 받았다. 하지만 잠시 후 166명으로 수정된 보고를 받자 “큰일 났네, 이거 VIP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라며 걱정한다.청와대 상황실이 유무선으로 사고현장을 지휘하고 통제하기보다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한 상황 파악과 영상 자료 확보에만 온통 신경 쓴 셈이다.

이번 일은 청와대 사람들의 속성을 노출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참모들은 원래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하는 일이 주요 임무다. 하지만이 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보좌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참모들 사이에 수시로 충성경쟁이 벌어진다. 이는 곧 이너서클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이어진다.

참모들 수시로 충성경쟁

과거 정부 청와대에서도 파워게임은 늘 있었다. 주로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가신(家臣)그룹과 정권창출 과정에서 영입한 뉴파워 그룹의 대치였다. 물론 가신들 사이에, 또 영입파끼리도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 대통령은 모든 국사를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청와대 참모들의 역할은 제한된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할 뿐 고언을 하거나 스스로 일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받아쓰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익숙해졌을 정도다. 대신 참모들 사이에 충성경쟁이 일어나면서 알력을 겪고 있다는 소문은 청와대 주변에서 꾸준히 나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따른 인적쇄신의 일환으로 지난 6월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하기 전까지 내부 권력투쟁의 핵심은 ‘3각 갈등설’이었다. 친박 원로그룹인 ‘7인회’의 멤버 김기춘 비서실장,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이정현 홍보수석(당시), 그리고 ‘가신 3인방’인 정호승 1부속실 비서관·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이재만 총무비서관이 각각 세 축을 이뤄 파워게임을 벌인다는 분석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청와대 첫 비서실장이었던 허태열 전 실장 재임 시절에는 ‘가신 3인방’의 위세가 비서실을 지배했다고 한다. 문고리 권력을 쥔 그들이 웬만한 수석비서관을 제치고 권한을 행사하는 바람에 다름 참모들의 볼멘소리가 청와대 밖으로도 들렸다. 당시 허 실장은 비서실에서 자신의 영(令)이 서지 않는 데 대해 상당한 허탈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허 전 실장은 임기 5개월여 만인 지난해 8월 스스로 청와대를 떠났다. 그는 부임 직후부터 자진사퇴를 고민했다고 한다. 허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반인 지난해 5월경 정치권의 한 지인에게 “청와대 안의 젊은 아이들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벌써부터 비서실을 이끌어 가는 데 한계를 느낀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허 전 실장의 사의를 받아들인 표면적인 이유는 초기 내각 구성과정에서의 인사검증 실패, 미국 방문 중 터진 ‘윤창중 성 추문’ 사건 등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와 함께 관료 출신으로 비교적 유약한 이미지인 허 전 실장이 청와대 실세 참모들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보고, 서둘러 비서실장을 교체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가신 3인방’ 위세 상당히 위축

허 전 실장의 후임이 김기춘 실장이다. 박 대통령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성의 그가 청와대 군기를 확실히 잡을 것으로 판단하고 지휘봉을 쥐어줬다는 게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의 한결같은 해석이다.

실제로 김 실장 취임 이후 ‘가신 3인방’의 위세가 상당히 위축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 사람으로, 친박 원로그룹의 핵심인 김 실장의 카리스마에 눌렸다는 말이 청와대 주변에 나돌았다.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한 후 야당에서는 물론, 여권 안에서조차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박 대통령은 꿈쩍않고 그를 유임시켰다. 이는 김 실장의 업무처리 능력에 대한 무한 신뢰도 있지만, 그가 청와대의 기강을 확실히 세우고 있는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란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신 3인방’의 기세가 완전히 꺾인 건 아니다. 여전히 박 대통령과의 접근성으로 비서실의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각종 정부 인사 때마다 그들의 이름이 들린다.

이정현 수석은 김 실장과 3인방 사이에서 때로는 가교 역할을, 때로는 견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청와대 첫 정무수석으로 기용됐다가 윤창중 사건 이후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홍보수석으로 있으면서 정무적인 역할도 주도할 정도로 청와대 안에서 파워맨이었다.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정무수석(당시)의 존재감이 워낙 미미했던 까닭에 박 대통령은 이 수석의 정무적 판단을 받아들이곤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 수석이 정무수석실 업무뿐 아니라 민정수석실 등 다른 부서의 일에도 폭넓게 개입해 반발을 사는 일도 있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 수석은 세월호 참사 보도과정에서 불거진 KBS 사태에서 KBS뉴스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을 빚다가 6·4 지방선거 직후 스스로 청와대를 나왔다. 박 대통령의 배려로 형식은 자진사퇴 절차를 밟았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다른 핵심 참모들의 견제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이 수석이 홍보수석실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박 대통령의 귀에 들어간 것도 퇴진의 한 빌미가 됐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홍보수석실 넘버 2인 김행 대변인이 전격 사퇴한 배경에 이 수석과의 불편한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당시 이 수석은 김 대변인에게 브리핑룸 마이크를 잡을 기회를 거의 주지 않고 주요 사안들은 자신이 직접 브리핑했다. 그즈음 김 대변인은 자신이 홍보수석실에서 소외되는데 따른 서글픈 심정을 주변에 털어놓곤 했다.

여기다 홍보수석실 소속인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도 3월 말에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는 김황식 전 총리 캠프로 가겠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그 시점에 박 대통령이 “왜 이정현 수석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떠나느냐”고 의아해했다는 말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

‘3기 참모진’ 친정체제 강화

결국 박 대통령은 이정현 전 수석의 퇴진을 계기로 그동안 구상중이었던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서둘렀다. 이 수석 후임에 윤두현 디지털 YTN 사장을 6월 8일자로 임명했다. 이어 12일에는 4명의 수석을 교체했다.

청와대는 ‘3실장(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경호실장) 9수석비서관 체제’다. 최근 박 대통령이 밝힌 대로 인사수석실이 신설되면 10수석비서관 체제가 된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의 ‘3기 청와대 참모진’을 꾸린 이번 인사를 통해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5명의 신임 수석을 핵심 측근으로 채웠다. 국회의원을 지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을 첫 여성 정무수석으로 기용한 것은 앞으로 여의도 정치를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교육문화수석으로 기용한 송광용 전 서울교대총장은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냈다.

나머지 3명의 신임 수석은 모두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출신이다. 윤두현 홍보수석은 경북 경산, 김영한 민정수석은 경북 의성, 안종범 경제수석은 대구가 고향이다. 특히 안 수석은 박근혜 대선 캠프 정책메시지 본부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위원을 거친 신(新)실세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3기 청와대 참모진을 꾸리면서 1기부터 청와대를 지켜온 유민봉 국정기획수석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을 유임시켰다. 윤창번 미래전략수석과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2기 참모진 구성 때 입성했다.

이정현 전 수석이 빠진 청와대에서 파워게임은 당분간 잠복할 가능성이 높다.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를 장악해 통제하고 있는데다, 신임 수석들의 면면이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가신 3인방’의 힘이 여전할 뿐 아니라 그들이 청와대로 불러들인 행정관급 젊은 참모들이 세력화 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그동안의 3각 갈등과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투쟁이 벌어질 소지는 충분하다.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