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거래내역 272건 확인, 각종 의혹 제기
다수 페이퍼컴퍼니 법인 존재, 은밀한 투기

[일요서울 | 특별취재팀] 재벌 총수일가의 부동산 실태가 낱낱이 파헤쳐졌다. KBS 시사기획 창 탐사보도 팀은 지난 6개월 동안 국내 재벌과 부호들의 미국 부동산 보유 현황을 추적했다. 그 결과 주요 재벌과 부호들의 미국 부동산 거래내역 272건이 확인됐다. 또 이 과정에선 다양한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이 이들의 해외 재산 취득과 은닉을 도운 정황이 드러났고 불법증여 및 횡령·배임 등 의혹 역시 제기됐다. 그러나 관련 회사들은 하나같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공분을 사고 있다. 회장님들의 숨겨진 부동산은 어떤 모습일까.

보도에 따르면 다수의 재벌가들이 미국 현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KBS가 8대 재벌 일가와 300대 부호, 횡령·배임·추징금 미납 등으로 논란이 된 기업인 등 1825명을 대상으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미 서부 캘리포니아, 동부 뉴욕과 뉴저지, 매사추세츠 그리고 대표적인 휴양지 하와이 등 다섯 개 주에 걸쳐 35개 카운티의 부동산 소유 내역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주요 재벌과 부호들의 미국 부동산 거래내역 272건이 확인됐고 특히 다수의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들이 부동산 거래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거래액만 따져도 수천억 원에 달했고 부동산 거래 중 불법이나 탈법이 의심되는 사례가 140여건이었다.

지역별로는 하와이가 110건, 뉴욕 등 동부가 89건, LA 등 미 서부가 73건이었다. 이중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는 133건, 탈세 의심 거래는 63건이었다.

보도팀은 “문제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거나,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었다는 점”이라면서 “2006년 5월 이전에는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이 사실상 금지돼 있었으며, 이후 100만 달러, 2007년에는 300만 달러까지 투자할 수 있었지만 272건의 부동산 가운데 64%가 2006년 5월 이전에 거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재벌가와 부호들은 몇 곳의 지역에 공통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했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리움 관장 부부는 미국 하와이를 선호했다.

이건희 회장은 직접 별장을 짓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말 오하우 섬의 고급 별장촌인 카할라 해변에 땅을 사놓은 상태다. 카할라 해변은 하와이에서도 단연 최고의 부촌이다.

홍라희 리움 관장은 하와이의 고급 골프장에 2개의 회원권을 갖고 있다. 그 중 와이알레이 골프장 회원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와이알레이 골프장은 매년 소니 오픈이 열리는 곳인데 기존 회원 6명이 추천해야 회원 자격 심사를 받을 수 있고, 심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동의해야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만큼 까다로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의 하와이 쇼핑은 건강이 좋지 않은 이건희 회장 때문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골프 등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한 목적도 엿볼 수 있다.

삼성가의 하와이 사랑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으로 이어진다. 삼성그룹의 2인자로 불렸던 이학수 전 부회장도 고급콘도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항공과 운수업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회사이다 보니 미국 부동산 투자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지난 1990년대 중반 마우이 섬에 여의도 면적의 거대한 농경지를 샀다가 5년 뒤 2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았다.

불법과 탈법 사이

다만 보도팀은 “미국에서 200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 거래를 했고 한국에선 송금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 거액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의문점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 60억 원 규모의 저택을 보유하고 있다.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뉴욕에서 근무할 때 5억 원에 집을 샀다가 20년 뒤 23억 원에 팔았다.

LS그룹의 구자홍 회장은 지난 2008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지역에 고급주택을 매입했다.

인근 카우아이 섬에는 5살이 채 넘지 않은 손주들에게 10억 원이 넘는 땅을 사준 재벌 회장도 있다.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이다. KCC그룹은 한국컴퓨터라는 정보통신업체를 기반으로 성장한 중견 기업이다. 혼다, 재규어, 랜드로버 등 수입차 딜러 사업에도 진출해 지난해에는 연 매출 5천억 원대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은 아니지만 마우이에서는 ‘땅 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주용 회장 일가는 1988년부터 마우이에 땅과 집을 사들였고 지난 1995년에는 손주들에게 110만 달러짜리 땅을 사주기도 했다. 당시 손주들의 나이는 한 살과 세 살이다.

이 외 캘리포니아와 동부 뉴저지 부촌에는 이미경 CJ 부회장과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 등이 사들인 수십억 원짜리 대저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동원 농심 회장, 장영신 애경 회장, 두산 박용만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등도 마찬가지다.

증여와 탈세 등의 의혹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의혹이 더해진다. 페이퍼 컴퍼니 등을 이용한 기업인들의 해외 재산 은닉 의혹은 여전히 찝찝함을 남긴다.

물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고 불법은 아니지만 이를 악용해 개인의 재산을 빼돌리거나, 법인의 재산을 불법으로 이전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지적됐다.

의문의 법인들

첫 번째로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 일가는 미국 하와이와 시카고 등지에서 여러 차례 부동산 거래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부동산 거래에는 항상 페이퍼 컴퍼니가 관련됐다. 하지만 국회의원직을 거친 김호연 회장은 당시 이 같은 내용을 신고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으로서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것이다.

보도팀은 빙그레가 에버그린 글로벌을 통해 바닐라나 초콜릿향 등을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김호연 전 회장의 외동딸이 대표를 맡고 있음에도 상장회사 빙그레는 이 같은 사실을 단 한 차례도 공시하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 1997년 시작된 외환위기로 그룹이 해체된 쌍용그룹 김석원 전 회장이다. 부자는 망해도 부자라는 말의 표본이었다. 쌍용그룹은 수천억 원대의 채무를 남겼고 공적자금, 즉 국민 세금도 2200백억 원 이상 투입됐다.

망했다는 말 그대로였지만 김석원 전 회장의 딸이 뉴욕 맨해튼에 지난 2008년 집을 샀다는 점은 물음표를 달기 충분했다. 더욱이 딸은 20대로 미국에서 공부중인 학생이다.

이를 두고 쌍용 측은 여러 가지 해명을 내놨지만 보도팀은 자꾸만 변하는 해명을 믿기가 힘들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는 SK그룹이다. SK는 티볼리라는 회사를 세워서 뉴욕 맨해튼 등지에서 모두 7건의 거래를 했다. 거래 금액은 3000만 달러가 넘었다.

그런데 이 티볼리라는 법인의 정체는 당시 SK 미국 법인장도 몰랐던 회사다. SK그룹과 미국법인도 티볼리 관련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또 보도팀은 티볼리란 회사의 이름이 나중에 OCMP로 변경됐는데 이 단어가 SK 미국법인에서는 ‘회장실’로 통했다는 제보도 전했다. 최태원 회장 일가와 티볼리란 회사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하는 의구심이 든 대목이다.

실종된 죄의식

한편 가장 큰 문제는 이와 같은 부동산 거래 중 다수가 탈법과 불법을 오가는 의혹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일가와 사측은 오히려 너무 당당해 보였다는 점이다. 그들 대다수에게서 조금의 죄의식도 느낄 수 없었다.

탐사보도팀이 불법과 탈법이 의심된다고 밝힌 사례 중 대표적인 인물은 한진과 LG가가 많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조사에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이 들통났던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해외 부동산 투자 전면 금지시절부터 하와이에서 총 13건, 2000만 달러 규모의 부동산을 거래했다. 조현준 효성 사장은 만 18살,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저택을 구입했다.

LG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은 LG그룹이 소유한 부동산을 개인적으로 인수하면서 특혜성 대출 거래를 했던 점이 지적됐다.

특히 이들의 부동산 매입이 몰려 있던 시기를 살펴보면 1990년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다.

해외 부동산 투자가 전면 허용된 것은 지난 2008년으로 불과 6년 전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외 부동산 구입을 위해 외화를 갖고 나가는 건 엄격히 금지됐지만 이들은 신경을 아예 쓰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투자 한도를 지켜 신고한 경우는 조사 대상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해외 파견근무와 유학 기간 등 외환거래법 적용을 받지 않는 비거주자 신분을 이용한 부동산 거래도 심심찮게 드러났다.

정황상 불법과 탈법임이 유력했고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당당한 대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영상 속 기업 관계자들은 “개인적 거래를 왜 회사에 물어보냐”는 등 취재진에게 핀잔을 주기 바빴다. 일부 관계자는 “모르는 사항이다”라거나 “그만해라. 취재진이면 다냐”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보도팀은 이런 태도에 대해 “가진 돈이 곧 특권이고, 처벌받지 않은 반칙은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민낯”이라며 “뒤늦게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겠다고 밝힌 경우는 272건의 거래 중 단 5건 뿐”이라고 탄식했다.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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