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미술품 의미 알려 한국미술 정립하고 파”

남영호 무용단에 현대무용 ‘달항아리’ 모티브 제공, 호평받아
남은 소임은 재능있는 후배 지원, ‘도자기 인형’ 발전시키고파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우리 고미술품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앞장선 이가 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미술품을 보는 안목, 그리고 실력과 열정을 갖춘 황규완 작가다. 고미술품 수집가에서 달항아리를 그리는 화가로 변신한 그는 일흔의 나이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로 우리 미술과 대중을 연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황 작가를 만나 고미술과 함께한 그의 인생사를 들어봤다.


▲‘석경’이라는 호는 어떤 의미인가.
- 돌 석(石)자에 벼슬 경(卿)자다. 돌같이 변하지 말고 우직하게 수집해서 성공하라는 의미다. 20대부터 인연을 맺은 한학자 이가원 선생이 지어주신 호다. 선생은 우리나라 한문학 연구의 태두로 불린다. 수집을 시작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찾아갔다. 선생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와주셨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선생이 특별히 아끼시던 종이, 인장, 인장 재료 등을 선물로 드렸다. 어느 연초에 인사차 방문했는데 그 때 ‘석경’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한동안은 그 호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가원 선생이 석경을 주제로 시를 한 수 지어주셨다. 그 이후로 전시마다 석경을 사용하고 있다. 전시장을 찾는 분들이 꼭 의미를 물어 본다.

▲ 석경고미술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 한국 미술품에 대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분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석경고미술연구소는 미술계에서 다루지 않는 미술품을 다룬다. 그래서 우리 미술품의 의미를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도자기 인형을 제작하는 오주현 작가와 협력해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 도자기 인형은 무엇인가.
- 우리나라를 알리는 관광 상품 중에 인형이 있다. 종류도 종이, 나무, 저열도 도자기 등 다양하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인형들은 거의가 한국의 복식이 무시되고 진정한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고열도의 도자기 인형은 전무하다. 더욱이 복식사를 제대로 공부해 이를 재현한 작가도 드물다. 이 쉽지 않은 길을 오주현 작가가 걷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조선시대 궁중 여인을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나는 오 작가가 복식 고증과 제작기법을 조금 연구한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인형을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 연구소가 전시하는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
- 연구소는 주로 단일품목을 수집해 전시했다. 처음에는 민화를 알리기 위해 민화를 수집했다. 수집만 하면 일반인이 알지 못하니까 작품에 대한 설명을 써야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전 조사와 연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축적된 자료를 가지고 세미나를 하고 대중 강연까지 하게 됐다.

민화에 이어 떡살과 다식판을 수집했다. 떡살과 다식판이 단순히 떡에 무늬를 내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남편이 부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옛날에 가난한 집이라도 선비는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다. 대개 부인 혼자서 살림을 꾸려나갔다. 부인이 고생하는 걸 보던 선비가 부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떡살과 다식판에 무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데 이런 스토리가 전승되지 않아 아쉬웠다.

목칠공예도 세분화하면 많은 것들을 전시할 수 있다. 사랑방 가구를 전시할 때는 선비 문화에, 안방가구를 전시할 때는 규방문화에, 부엌가구를 할 때는 음식문화에 집중했다. 특히 우리민족은 음식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서 소반의 종류가 다양하다. 주안상, 찻상, 수라상, 다과상 등 종류에 따라 상의 쓰임이 전부 달랐다. 상이 많다는 것은 음식의 종류가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음식을 담는 그릇의 종류도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토기부터 고려청자, 분청, 조선백자, 청화백자, 문방구류 등 도자왕국이라는 이름답게 우리 도자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런 문화재를 수집해 일반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조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다. 해외에서도 우리 문화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수집활동에 나선 것은 언제부터인가.
- 수집을 한 것은 대학 때부터다. 처음에는 우표를 수집했고 이후엔 화폐를 모았다. 어느 날은 화폐를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해봤는데 집 2채 값이 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더 이상 화폐를 수집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도자기였다. 도자기는 화폐 수집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도자기를 사려면 도자기를 알아야 했다. 도자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우리 도자기만을 다룬 서적이 별로 없었다. 일본에서 발매된 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그때는 도자기로 나름 쏠쏠한 재미도 많이 봤다.

▲ 도자기 공부는 어떤 식으로 했나.
- 도자기를 많이 봐야 도자기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도자기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다. 특히 인사동 같은 경우에는 좋은 작품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한번은 좋은 작품을 보고 싶어서 대학 학보사 기자라고 신분을 속이기도 했다. 알면서 속아준 분도 계셨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 당시 최순우 학예관장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그분이 가마자리에 가서 파편으로 도자기를 공부하라고 일러주셨다. 맨날 도자파편만 들고 다니다보니 여자들한테 인기가 별로 없었다.(웃음)

▲ 달항아리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 1990년대에 해저 유물 인양작업을 위해 필리핀에 갔었다. 2003년에 귀국한 이후에 우리나라 도자기 전집을 사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자왕국이라는 나라에서 도자기 전집이 없었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나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수집한 자료만 6~7천 점이 됐다. 도자기 전집이라는 게 수요는 없고 값이 비싸다 보니 출판사에서도 쉽게 엄두를 내지 않았다. 학자들도 회의적이었다. 그 때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예전에 수집했던 달항아리가 생각났다. 옛날 생각이 나서 달항아리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고 행동에 나섰다.

▲ 왜 하필 달항아리였나.
- 달항아리는 누가, 왜 만들었는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달항아리가 18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당시 한옥 양식에 비교하면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달항아리가 어느 도공과 대 석학의 합작품이 아닐까 추측한다. 달항아리는 효제충신예의염치라는 8덕목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 8덕목을 이미지화해 교화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또 달항아리는 두 개의 항아리가 가마 속에서 뒤틀리면서 하나가 된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가마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는 게 놀랍지 않은가. 달항아리는 둥글지만 둥글지 않다. 그런 매력 때문에 달항아리를 가까이 하게 됐다.

▲ 직접 달항아리 공예에도 나섰는데.
- 사람들은 달항아리의 본성을 잘 모른다. 기성 작가 조차 달항아리가 갖춰야할 요건이 뭔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본질을 담은 항아리를 제대로 만들어서 정확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강화에 가서 도자기 공예를 배웠다. 당시 나를 가르쳤던 공예 선생이 나중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자기는 도자기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만들었다며 가르침을 청했다. 그래서 내가 그분에게 도자기를 가르쳤다. 도예를 하는 사람들이 도자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도자 제작을 했던 것을 바로 잡으려 했으니 성공한 게 아닌가. 이후에 나는 달항아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달항아리를 해외에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 달항아리를 주제로 현대무용창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 남영호 무용단의 남영호 무용수의 춤사위를 보고 반했다. 이 사람이라면 달항아리를 주제로 멋진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영호 씨에게 달항아리를 가지고 춤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남영호 씨에게 한 달간 꼬박 달항아리 관련 자료를 보냈다. 달항아리의 의미에 반했는지 남영호 씨가 전통과 현대를 잇고 이질성과 동질성을 탐구하는 춤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에 처음으로 공연을 가졌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서도 달항아리 춤 공연을 준비 중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 후학을 양성해서 한국미술을 정립하고 싶다. 또 후배들을 후원하고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를 물려주고 싶다. 그게 내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chocho621@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