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초 친일재산조사위원회 발족을 앞두고 친일청산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친일파 후손들이 자체적으로 이너서클을 만들어 활동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귀속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던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4월 2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일제시대 때 중추원 참의 이상을 지냈던 사람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의원 이상을 했던 친일파의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이너서클을 꾸려오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친일파는 3대가 ‘호의호식’

“나라를 팔아먹고도 자손대대로 잘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한 독립투사의 후손 A(65)씨는 독립투사의 후손들 중 상당수가 택시운전과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독립운동가의 후손 B(68)씨 역시 “갖은 고문을 당하며 죽어간 독립투사의 후손들 중에는 극빈층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일제에 협조하고 독립투사 체포에 앞장선 이들의 후손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간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조사에 의해 드러났듯이 친일파의 후손들 중에는 선조들이 친일행적으로 취득한 재산을 기반으로 부와 명성을 쌓고 현재 정·재계 및 법조계, 교육계 등에서 고위직을 꿰어찬 경우가 상당수다.

‘귀족생활’하며 친목도모

이번 최의원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 일부 친일파 후손들은 그들끼리의 이너서클을 결성, 친목을 도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최의원측은 이너서클은 분명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모임의 실체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렸다. 실명을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이 거론될 경우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의 행적은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친일파의 후손과 잘 알고 지낸다는 K씨에 따르면 이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귀족의 그것을 능가한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매국노 A씨의 후손들은 현재 미국 LA에 대거 거주하고 있는데, 대저택을 소유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청 고위직을 역임했던 B씨의 후손들은 대부분 이중국적자로, 국내에 세금 한푼 내지않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대규모의 농장과 국내 강남의 알짜배기 땅을 소유, 막대한 시세차익을 내고 있다는 것. 일제에 군사물품 자금을 조달했던 C씨의 후손들 역시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을 소유하고 있으며, 군장교 출신 D씨의 후손 역시 수도권 일대 금싸라기 땅을 굴리며 부동산 투자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내 대저택 소유 ‘호화생활’

이들 자손들끼리는 일년에 두어 차례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모임에서는 ‘돈되는’ 부동산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친일 청산법 등과 관련한 정부정책에 대한 논의 및 대응책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 K씨의 설명이다. 자신을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밝힌 L씨는 이너서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L씨는 “이들은 친일청산법과 관련, 현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정·재계 인사들의 조상들을 훑어보면 친일행적을 안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게 이들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L씨에 따르면 친일파의 후손들은 앞으로 도입될 정책 등에 상당히 민감하다. 따라서 자구책 마련에도 적극적이라는 것. 친일파 후손들끼리 잦은 왕래를 하며 친목을 쌓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 없다” 큰소리

이들은 고향이나 지역구, 학군 및 출신고교에 따라 모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대개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집안끼리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1890년대를 전후해서 일본에 유학한 선조가 있다는 공통점으로 친분을 쌓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 한편, 후손들 중에는 유학이나 파견근무 등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인데, 이들은 해외에서도 친목을 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K씨는 “그들은 조상의 친일 행적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개중에는 조상 덕에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며 감사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조상의 친일행각이 무슨 큰 죄가 되는가’, ‘기죽을 필요없다’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는 것이 L씨의 말이다.

또 일부는 친일문제를 끄집어내는 정치인들을 향해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하다’며 못마땅해한다는 것이다.L씨에 따르면 친일파 후손들은 친일청산법 등과 같은 안건에 대해 민감하면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에게 관심사는 오직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고, 앞으로 더욱 많은 재산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L씨는 일례로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을 들었다. L씨는 “1990년대 중반이후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반환 소송이 부쩍 늘었는데, 97년 이완용의 증손이 재산반환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이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너서클내에서는 ‘땅찾기’가 최고의 이슈였다고 한다. L씨는 “두세사람만 모이면 ‘우리도 한번 (소송)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였다”며 “심지어 브로커들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조상이 남긴 땅을 찾아주겠다. 승소하면 조금만 신경써달라’며 설득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친일청산법 대책회의 열기도

그러나 최근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선데 이어 친일관련법안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자 이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는 재산을 지키기 위한 ‘비상대책회의’에 몰입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한 친일청산단체의 관계자는 “정부의 움직임에도 이들 대부분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일부는 벌써 상당한 금액의 재산을 챙겼거나 해외로 빼돌렸을 것이다.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종자들”이라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실제로 최의원은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파 재산 환수법이 발효되면 우리 재산을 다 뺏기는데, 브로커들에게 주든지 해서 내팽개치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환수당한 재산이 국고로 들어가는 꼴은 눈뜨고 볼 수 없다는 식이다. 최의원은 “주요 친일파 11명의 토지를 조사한 결과 440만평에 이르고, 가격도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친일파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자체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친일파 후손들이 정부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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