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방부 고위간부가 부하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사건의 장본인은 군 장성 출신 국방부 고위간부 안모(55·별정직2급)씨. 안씨는 지난달 20일 새벽 만취한 상태로 부하 여직원 A씨를 데리고 모텔에 가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29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러나 안씨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모텔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려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진상은 과연 어떻게 결론날 것인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들의 ‘진실게임’을 따라가 봤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사고 직후 이상한 느낌에 병원부터 찾았다는 A씨는 ‘누군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이고, 1주일 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고민 끝에 A씨는 사건 발생 3일 후인 23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경찰은 “현장 상황, A씨의 상처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안씨가 A씨를 성폭행했을 가능성이 높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이날 안씨와 A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불러 조사했고, 현장조사도 벌였다”고 전했다.

횟집에서 식사후 폭탄주

A씨의 고소장에 따르면 19일 두 사람은 국방부 인근의 한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소주 2병을 마셨다. ‘1차’를 마친 이들은 자리를 옮겨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까지 마셨다. 이렇게 ‘2차’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었다. ‘2차’에서 나온 A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것. 눈을 떠보니 모텔이었고, A씨는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안씨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씨 입장은 다르다. ‘2차’까지는 A씨의 진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는 게 안씨의 강력한 주장이다. 안씨가 경찰에 밝힌 진술에 따르면 ‘2차’를 나온 두 사람은 모텔로 간 것이 아니라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둘 다 술에 취했던 터라 일단 술부터 깨기 위해 일부러 노래방을 찾았다는 것. 새벽 1시까지 있다가 이들은 다시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만취한 A씨가 구토를 하기 시작해 밖으로 뛰쳐나왔고, 안정부터 취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안씨는 A씨를 인근 모텔에 데려갔다. 이곳에서도 A씨의 구토가 계속되자 옷에 묻고 더럽혀질까봐 A씨의 옷을 벗겨서 한쪽으로 치워놓았다는 것이 안씨의 항변이다. 안씨는 “평소 술을 마시면 발기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이며 혐의 내용을 부인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사건진상은 ‘오리무중’

이처럼 두 사람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군 당국과 경찰의 수사도 진척된 사항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경찰로부터 A씨의 혈흔을 넘겨받아 성분분석 조사를 벌였으나 당초 제기된 성폭행 여부에 대해선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현재로선 예단하기 힘든 상황. 이 사건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일각에서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나도록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를 걸어놓은 채 보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언론 및 방송계에서는 갖가지 얘기들이 떠돌고 있기도 하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고위 간부인 안씨를 감싸고 돈다’면서 ‘봐주기가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 또 군내에 좋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군 당국이 모호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엠바고에 대한 논란도

이에 대해 국방부 공보담당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항간에 나돌고 있는 소문을 일축했다. 이어 “신중하게 보도하는 것이 기자와 군 당국의 의무 아니냐”면서 “아직 확실한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를 취재,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 관계자는 “앞뒤 감당 못하면서 일단 들춰내기만 하려는 몇몇 기자들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시경 기자실 간사는 ‘봐주기’ 의혹에 대해 “우리가 사건을 접했을 당시에는 피의자의 뚜렷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고 의혹투성이 그 자체였다”며 “경찰 조사결과 입건 또는 구속 여부가 밝혀질 때까지 엠바고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기자는 “양쪽 주장이 엇갈리고 있고, 자칫 두 사람 모두 다칠 수 있다고 생각돼 일단 유보시킨 것”이라며 “경찰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경찰 기자들이 수사결과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 서울경찰청 기자실로 사건을 넘겼다”고 말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역시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인데다가 피의자, 피해자의 주장이 엇갈려 둘 다 핏대를 세우고 있는 마당에 자칫 실수했다가 다칠 수 있어 조심스러웠을 것”이라며 기자와 군 당국의 기사 유보에 대해 한마디 보탰다. 이어 경찰은 “오랜 지인이자 직장 동료 사이인 이들이 서로 상처받지 않고 사건이 마무리됐으면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미 도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은 사법당국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 국방부 정책홍보팀 황순용씨 일문일답“안씨 절대 그럴 사람 아니다”

- 이번 사건 발생 후 국방부 분위기는 어떤가.
▲ 아무래도 국장급인 고위 간부가 물의를 일으킨 터라 다소 침체돼 있긴 하다. 하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

- A씨와 안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 일단 두 사람 모두 휴가 중이다. A씨는 사고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고, 안씨는 사표를 낸 후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A씨가 그만둘 것이라는 소문이 많은데 사실무근이고, 안씨의 사표는 아직 수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웠다는데 어느 정도로 친했나.
▲ 그저 밥 몇 끼 같이 먹고, 술 한두 잔 정도 했던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 안씨의 평판은 어땠나. 그가 실제로 성폭행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 내가 아는 바로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과수 채취 결과 또한 그렇게 나오지 않았나.

- 그렇다면 안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는 데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는 말인가.
군내에서는 어떤 말이 오가는가.
▲ 더 이상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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