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업계의 ‘음성적인 신용정보 거래’ 실태

최근 법조비리 파문 이후 법조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변호사 업계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개인 신용정보를 불법으로 활용한 법무법인 및 전직 부장 판·검사 출신 변호사 등 70여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경찰은 신용정보법 위반 혐의로 변호사 및 법무법인 등을 불구속 입건했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에 보장된 변호사 고유의 권한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검찰이 1년이 넘도록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는 동안 경찰이 또다시 무더기로 변호사를 적발한 상황이어서, 일각에서는 “검·경 갈등 재연에 변호사가 희생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개인 신용정보를 불법으로 빼낸 변호사들이 대거 적발됨에 따라 ‘신용정보 불법 거래문제’가 또다시 세간의 화두에 올랐다. 경찰에 따르면, 변호사들과 신용정보 업체 간 음성적인 신용정보 거래는 ‘관행’처럼 굳어진지 오래며, 실제로 작년 말 같은 사안으로 변호사업계에 파문이 인 적이 있기도 하다.


드러나지 않은 건 ‘상당수’
경찰청 수사과 관계자 A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카드사, 보험사 등에서 회원 정보를 빼내는 사건은 해마다 터지는 ‘고정사건’으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만, 변호사들의 불법 거래문제는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며 “이번에 드러난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즉 일부 변호사들의 개인 신용정보 불법거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행해지고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건이 ‘상당수’라는 얘기다.


신용조사 의뢰서 ‘허위작성’해 정보 빼내
A씨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변호사들은 사건 의뢰인의 민사채권이 마치 상거래 채권인 것처럼 ‘신용조사 의뢰서’를 꾸미는 수법으로 3년여 동안 수백 명의 개인 신용정보를 불법으로 제공받았다.
A씨는 “변호사들은 ‘신용조사 의뢰서’에 개인 신용정보를 ‘승소 사례금, 상거래 참고용’ 등에 쓰며,‘상거래 채권임을 확인한다’는 등의 확인서를 직접 작성한 뒤 신용정보업체로부터 2004년 194명의 개인 신용정보를 불법으로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신용정보법 24조에는 ‘개인 신용정보는 금융거래 등 상거래 관계의 설정 및 유지 여부 등을 판단하는 목적으로 제공·이용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채무자 등이 갖고 있는 전국의 부동산과 자동차 등 동산의 현황, 신용카드 연체 및 불량거래 내역을 건네받아 의뢰인의 사건을 맡을지 여부 등을 판단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신용정보업체는 변호사 등에게 건당 20만~3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개인 신용정보를 건네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채무자 등의 재산·신용 상태를 보고 의뢰인의 사건을 수임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며 “정상적으로 법원을 통해 개인 신용정보를 조회하려면 3~6개월이 걸리지만, 변호사를 통해 상거래를 가장해 개인 신용정보를 조회할 경우에는 15일이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첩보’에 의해 불법행위 포착
그렇다면 변호사들의 불법거래 혐의는 어떻게 드러나는 것일까. A씨에 따르면, 변호사들의 불법거래 혐의 포착은 대부분 ‘첩보’에 의해서다.
A씨에 따르면, ‘전직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아무개씨가 신용정보업체와 암거래를 하고 있다’, ‘변호사 아무개씨는 의뢰인의 재산 상태에 따라 사건 수임여부를 결정한다’는 식의 내용이 흘러들어온다는 것. A씨는 “변호사들의 문란한 사생활, 로비행각 등은 대부분 루머인 경우가 많지만, 불법거래 행위는 허무맹랑한 루머가 아닌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작년 사건도 첩보에 의해 적발된 사례”라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불량 변호사들의 상당수가 활발한 활동을 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것. A씨는 “입건된 변호사 중에는 유명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와 전직 부장판사, 부장검사 출신도 포함돼 있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들의 신상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렸다. 제보자의 신상 역시 함구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제보자 중에는 변호사업계와 법조계 상황을 잘 알거나 그들과 자주 접촉하는 이들이 포함돼 있다고 A씨는 전했다.


검·경 자존심 싸움에 변호사만 ‘불똥(?)’
일각에서는 “검찰이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는 사안에 대해 경찰이 또다시 수사를 하는 것은 검·경 간 자존심 싸움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검·경 갈등에 변호사가 중간에 끼여 괜한 ‘불똥’을 맞고 있다는 것. 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는 법률의 예외 조항을 이유로 들어 경찰의 수사에 강력 반발,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에게 항의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창우 공보이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신용정보법 24조 1항 단서 6호에 채권추심은 상사채권이 아니더라도 추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면서 “검찰이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는 사안에 대해 또다시 수사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변호사는 소송에 관한 행위나 일반 법률사무가 직무다. 채무자의 개인 신용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그것이 상거래 목적이든 아니든 변호사의 직무 수행 범위에 속하는 행위”라며 “채권추심에 관한한 적법한 절차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변협은 18일 상임이사회에서 이 사안을 집중 논의, 검찰 측 판단을 지켜본 뒤 법 개정을 촉구할 방침이다.
하지만 경찰의 입장은 강경하다. A씨는 “변호사가 신용조사 의뢰서상의 목적을 허위 기재해 개인 신용정보를 빼내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부 변호사들의 주장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법에는 상거래 관계 설정 및 유지 판단 목적으로만 신용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고 강조했다. A씨는 또“결국 변협과의 갈등이 불거진 데는 검찰이 사법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혼선을 없애기 위해 검찰의 조속한 사법적 판단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은 당시 입건한 변호사들을 아직 기소조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홍만표 부장검사는 “법률적인 쟁점이 많을 뿐 아니라 사실 관계 확인 여부에 있어 시일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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