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참에 ‘분당’ 했으면…”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야당 실종론’ 대두, “여당이 유가족 만났으니…”
친노 강경파 ‘장외 투쟁’ 요구하며 선명 야당 강조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세월호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장외 투쟁 여부를 놓고 친노 강경파-비노 온건파 간의 갈등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몸을 낮췄던 비노 온건파 인사들이 ‘장외투쟁’ 반대 입장을 표명해, 세월호 특별법 대응 방향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 중단과 함께 ‘친노 수장’인 문재인 의원이 단식을 중단했지만 이 과정에서 계파 간의 불협화음이 새어나왔던 것이다. 특히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는 온건파 논리에 친노 강경파 내부는 불만 기류가 팽배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재협상을 했으나 유가족을 설득시키지 못해 ‘야당이 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곪아있던 계파간의 갈등이 터지고 말았다며 차라리 분당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유가족을 설득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온건파)
“야당의 존재감이 없어진다. 유가족을 외면하지 말아야 된다.”(강경파)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장외 투쟁 여부를 놓고 계파간 날선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유가족 측 인사들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유가족이 야당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당내에서 이른바 ‘야당 실종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재선 의원실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유가족들과 대화를 하면서 야당은 더 이상 설 자리도 없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주도권을 다 뺏겼을 뿐 아니라 야당다운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유족과 대화를 하기 전에 야당이 먼저 유가족을 어떤 방식으로 설득하든가, 유가족과 손을 잡고 여당을 압박했어야 했다. 그러나 유족 측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대응 방식 놓고 친노-비노 엇박자

야당 내에서조차 ‘야당 실종론’이 부각된 가운데 엉뚱하게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응책을 놓고 계파간의 갈등만 부각되는 양상이다. 친노 강경파에서는 야당다운 모습을 요구하며 ‘장외 투쟁’, 온건파에선 ‘국회 내에서 투쟁’을 놓고 서로 맞부딪쳤던 것이다.

실제 온건파 성향의 의원 15명이 연판장을 돌려 ‘장외 투쟁’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소속 의원들에게 돌린 성명에서 “국회의원들의 단식과 장외투쟁, 이제 이것만큼은 정말 안 된다”며 “당 차원의 극한투쟁은 곤란하다. 이미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새누리당과 재합의까지 한 만큼 장외투쟁의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야 시민단체와 당의 역할과 선택이 동일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국회에 있어야 한다”며 “이제 ‘졸업’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번 장외투쟁은 의회민주주의 포기로 기록될 것이며, 우리와 국민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명에는 4선의 김성곤 김영환, 3선의 김동철 박주선 변재일 주승용 조경태, 재선의 안규백 유성엽 이찬열 장병완, 초선의 민홍철 백군기 이개호 황주홍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에 친노 강경파에서 크게 반발했다. “세월호 (참사로) 투쟁하는 야당 대표에게 총질하는 야당 의원들을 전문용어로 ‘빨대’라고 한다. 총질을 중단하라”라는 막말논란까지 야기됐던 것이다.

친노에 기죽은 비노 “의원총회 목소리 내봤자~”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야권 내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렸던 친노 강경파에 대한 실체가 온건파를 통해 낱낱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새정치연합 한 의원은 “국민의 일반적 보편적 정서와는 다른 의견들이 의원총회에서 지배적인 분위기를 차지한다”며 “밖에 나가보면 이게 아닌데, 의원총회에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이 국민의 뜻인 양 인식되고 의원총회 분위기를 지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원총회에서 강경 발언을 하면 야유가 안 나오는데 온건 발언을 하면 야유가 나올 정도”라며 “중도 성향의 한 4선 의원이 나에게 `의원총회 포비아(공포)’가 있다고 하더라.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강경파의 위세가 등등하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달 24일 국회의사당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총회에서도 감지됐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둘러싼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논쟁이 불거졌던 것이다. 앞서 온건파 측에서는 “지금은 투쟁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강경파에선 “유가족 뜻대로 투쟁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3자협의체 구성 제안을 거절한 새누리당을 강력 규탄한다. 원내대표단을 중심으로 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힐 뿐 소수 의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온건파 15명이 연판장을 돌렸을 당시에도 일부 의원들은 머뭇거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 강경파에 ‘찍’힐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일부 의원들은 이름을 뺄지 말지를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의원실 일부 보좌진들은 의원이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과거에도 ‘한 지붕 두 가족’ 양상은 존재해 왔다. 지난 3월 안철수 전 대표와 합당을 추진하면서 김한길 전 대표는 새정치연합의 노선을 ‘중도’쪽으로 바꾸려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이 불거지면서 당내 강경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정권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느냐”는 게 주된 골자다.

결국 김 전 대표는 강경파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장외 투쟁을 벌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결과 상처만 남았다.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회에 들어왔으나 강경파에 밀려 중도 노선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권 내에선 친노-비노 측이 쉽게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놓고 새정치연합의 태생적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합당하면서도 당내 일부에서는 ‘김 전 대표가 친노와 내통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친노 강경파에 대한 입장을 무시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지난 대선 때 당시에도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 계획대로 됐을 뿐 아니라 김한길-안철수 체제,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도 친노 강경파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사석에서 “당내 친노들이 매 사안마다 사사건건 반대를 하면서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고 말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또한 ‘당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도 문제다. 대안 제시보다는 당성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좌관들이나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친노와 비노 측 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한 보좌진은 그 동안 허물없이 지내던 보좌진이 친노 의원실로 간 이후부터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문재인 의원 행보는 차기 당권 겨냥한 것”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의원이 ‘단식 농성’을 한 것도 ‘친노가 전면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온건파 측도 ‘문재인 당권 도전’을 의식한 듯 단식 농성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나타냈었다. 지도부를 무력화시켜, 친노가 전면에 나서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실제 수도권 한 의원은 “문 의원의 행보는 차기 당권을 겨냥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단식이 지지층 결집과 야권 내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계산된 행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의원 측은 억울해하고 있다. 순수한 의도로 단식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의원은 “자꾸 그런 식으로 저에 대해 말들을 하니까. 정치하기 싫어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내에서는 문 의원이 ‘당권과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이와 관련,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재정으로 인해 친노 강경파와 비노 온건파 간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차라리 분당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친노 강경파가 아닌 비노 측에서 이러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친노 강경파에 당 지도부가 좌지우지 되는 것을 우려하며 친노와의 결별을 통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선거가 없는 이상 분당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럼에도 분당 얘기가 나오는 것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당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야당실종론이 대두돼 답답한 심정에서 나오는 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향후 당내 갈등이 더 가속화되면 충분히 그럴 소지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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