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외주화’… 묵묵부답으로 입 닫고 있는 기업들에 상처 받는 유족

[mbc 뉴스 화면 캡처]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지난 1일 쿠팡 천안 물류센터 구내식당 조리실에서 한 근로자가 청소를 하다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근로자 박모씨는 인력파견업체 ‘아람인테크’ 소속으로 해당 업체는 동원홈푸드 하청업체다. 쿠팡 물류센터는 구내식당 운영을 동원홈푸드에 위탁했다.
여론의 시선이 쿠팡에 쏠리는 가운데 쿠팡 물류센터 내 청소·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동원홈푸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물류센터 열악한 근무환경… 보호장구 지급 못 받아 자비로 구입

동원홈푸드 “유족과 협의 문제, 경찰 조사 결과 나와야 진행”

박 씨가 사망한 지 20일이 지났지만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박 씨의 죽음을 놓고 쿠팡과 동원홈푸드 아람인테크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최소한의 해명만 할 뿐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입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박 씨 유가족에 따르면 박 씨는 사망 당시 코로나19 방역 강화에 따라 락스와 세제를 혼합해 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코로나19 대응 집단시설·다중이용시설 소독 안내’에 따르면 락스의 주요 성분 중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산성세정제나 합성세제와 혼합해 사용하면 유해가스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절대 섞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고인의 남편은 “코로나19로 약품 세기가 점점 심해지고, 독한 약품을 몇 개 섞어 넓은 구내식당 바닥과 테이블을 하루 종일 닦는다”며 “어떤 날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는 게 힘들다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mbc 뉴스화면 캡처]

 

고인 남편 “사과는커녕 막말·언어폭력”
정치권 비난 쏟아져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박 씨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노동건강연대, 고인의 남편도 참석했다. 류 의원은 “이 사건은 ‘위험의 외주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위기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 다시한번 증명됐다”며 “이 사안에 대해 관계 기관의 엄중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남편인 최 씨는 “고인은 조리 노동자로 취업했지만, 조리하러 온 건지, 청소하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청소 업무가 과중했다”고 말했다.

또한 “(쿠팡은) 고무장갑, 장화 등 작업 도구조차 지급하지 않았고, 자비로 구입해 사용하게 했다”며 “심지어 보호장구도 지급 받지 못한 채 독한 락스와 오븐클리너 등으로 청소를 시켰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쿠팡, 동원홈푸드, 아람인테크는 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막말과 언어폭력으로 인해 더 이상 회사에 연락할 자신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고인의 동료 중 60대 근로자는 약품으로 화상을 입은 적이 있어 고인이 자비로 산 비옷을 나눠준 적도 있다고 증언해 열악한 근무 환경을 시사했다.

강 의원은 “작업장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대책 마련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통해 재해의 책임을 기업에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인건비를 싸게 하는 것,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까지 혁신인지 묻고 싶다”고 말해 기업들의 운영 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원홈푸드 “경찰 조사 기다리는 중… 드릴 말씀 없어”

이번 사건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알려지면서 쿠팡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쿠팡은 메뉴와 비용 외 청소와 관리 업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동원홈푸드는 쿠팡의 대처와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원홈푸드는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해당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쿠팡과 함께 실질적 책임자인 동원홈푸드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쿠팡 뒤에 숨은 모습에 대한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동원홈푸드 관계자는 “저희도 경찰조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 측과의 상황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를 기다리는 중이라 따로 말씀드릴 것은 없다. 협의 문제도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야 진행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언급하기 어려운 (우리의) 입장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현재 따로 경찰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쿠팡 측과는 서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현재 경찰이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라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결과를 보고 추후 입장을 밝히려는 기업들의 모습이 ‘책임 회피’로 보인다며 비판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