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가스 누출’ 사망자들 하청업체 소속… “산안법 위반 여부 조사”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 2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가산메트로지식산업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소화약제 누출 사고로 하청업체 근로자 3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당한 이들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용균법 제정 이후 또다시 하청 근로자들이 안전사고의 희생자가 되면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되지만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 불감증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8시52분께 서울 금천구 가산동 가산메트로지식산업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소화약제 누출 사고로 현장팀장 김모(45)씨를 포함해 정모(47)씨, 박모씨 등 3명의 현장 노동자가 사망하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고는 건물 지하 3층에서 발생했다. 발전기실 화재대비용으로 설치된 이산화탄소 저장용기 120여 병에서 가스가 누출되면서 산소 농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바람에 현장에 있던 이들이 미처 대피를 하지 못한 것이다. 경찰은 이들의 사인을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질식사’로 보고 있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현장 관리자를 불러 사고 경위 조사에 착수하고 지난 26일 경찰과 안전보건공단 사고조사원 2명, 고용노동부 관계자 2명, 국과수 관계자 11명, 소방 관계자 4명 등 19명가량이 차례로 시간 간격을 두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 현장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작업자의 ‘수동 조작’에 의한 이산화탄소 유출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합동 감식을 진행한 김상훈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CCTV영상 분석, 소방설비시스템 자료 분석, 재현실험 등을 통해 소화약제가 수동 조작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가결론을 내렸다”며 “아직 관련자 조사가 남아 있고 추가 감정 결과를 받아 결론을 확정짓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수동 조작함 근처에서 작업 중이던 사망한 작업자에 의한 조작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며 “해당 작업자가 수동 조작함을 조작한 원인과 경위에 대해 수사해 사고 경위를 규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사 현장에 대한 안전 수칙 준수 여부, 안전 교육 이행 여부, 대피 시 조치의 적절성 등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08.23. [뉴시스]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08.23. [뉴시스]

하청업체 노동자 또 사망
위험의 외주화 ‘반복’

일요서울 취재를 종합하면 금천구 가스 누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3명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사망한 김 씨는 시공사 원청 소속 직원이 아닌 전기 공사 작업 하청업체 소속 현장소장이었고, 정 씨는 또 다른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이들을 하청업체 직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 역시 ‘위험의 외주화’ 로 인한 참사로 규명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에 따라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해 사고 상황을 파악해 관계 부처와 공유할 계획이다. 당시 사고 현장을 찾았던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망한 이들의 빈소에서 “사실 관계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엄중조치하겠다”며 “원인 규명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소속 20대 노동자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여 사망하게 된 것을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공론화되며 이를 근절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하청업체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을 제한하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의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018년 12월27일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고 있지만 이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은 매년 수차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법안이 마련된 직후인 2019년에도 산업재해 상위 13개 기업에서 숨진 노동자 51명 중 78%가 일용직을 포함한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또 지난해 4월에도 건설노동자 38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가 일어나면서 위험의 외주화라는 우리 사회 문제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5일 김용균 씨 사망 3주기를 앞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발전소비정규직 노동실태폭로 증언 대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이어졌다. 김 씨의 동료들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이들은 여전히 비정규직 신세인 데다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돼 일하고 있고 위험한 일을 하청에 떠넘기는 원청의 관행도 바뀐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신대원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발전비정규 노동자는 여전히 화재가 멈추지 않는 저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전비정규 노동자들은 수입해 온 유연탄이 쌓인 야적장에서 자연발화가 발생하면 소방 호스를 이용해 불을 진압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신 지부장은 “안전지침은 따로 없다”며 “현재 시점까지 방독면과 같은 보호 장비조차 지급 받지 못하고 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의 사고 이후 일부 설비 개선이 됐다고 하지만 (석탄 운반설비) 개구부에 몸을 넣고 낙탄을 제거하는 위험 작업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3대 안전조치 현장점검의 날을 맞아 서울 신당동 상가 주택 신축공사장을 방문해 점검을 하고 있다. 2021.08.13. [고용노동부]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3대 안전조치 현장점검의 날을 맞아 서울 신당동 상가 주택 신축공사장을 방문해 점검을 하고 있다. 2021.08.13. [고용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된다면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내년 1월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주목을 받고 있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가 안전 보건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확인되면 처벌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특히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할 경우’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원청에 동일하게 부여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하청에 책임을 떠넘길 수 없게 돼 원청 책임자가 처벌 받는다면 원청은 위험을 외주화를 할 필요성이 줄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예방 조치에 힘을 쏟게 될 것이라고 본 셈이다. 금천 가스 누출 사고도 중대재해처벌법 사례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노동계와 일부 관련 시민 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이 요구 사항의 핵심 내용이 거의 빠져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5인 미만 적용 제외, 인과 관계의 추정 조항 삭제를 비롯해 직업성 질병, 민간위탁 금지를 포함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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