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한 아픔, 스스로 극복하려 노력”

[사진=주찬양 씨 제공]
[사진=주찬양 씨 제공]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탈북민 재입북’ 관련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월북한 55명 가운데 29명(52.7%)은 탈북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북한매체 보도 등을 통해 탈북민의 재입북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데 확인되지 않은 인원까지 포함하면 재입북 탈북민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재입북을 하는 이유 대부분은 정착 실패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우리 국민인 탈북민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일요서울은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탈북민 정착의 현실을 알아보고, 문제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의 두 번째 주인공 사업가 주찬양 씨를 지난 14일 고려대 앞 카페에서 직접 만났다.

“탈북 과정에서 인권 가치 실현의 중요성 느껴” 
“사회적 가치 실현하는 사업체로 만들고 싶다”

-자기소개를 한다면.
▲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2010년도에 한국에 왔다. 당시 우리 가족은 라디오의 한국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는데 그로 인해 외부세계에 눈을 뜨게 됐고 탈북도 하게 됐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미디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 주얼리 사업체 ‘센느’를 운영하고 있다. 

-주얼리 관련 사업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가 꾸미는 걸 좋아하시는 스타일이다. 고향에서부터 화려하진 않아도 고급스럽게 포인트를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다만 북한에서는 당시에 귀 뚫는 것도 통제해서 꾸미고 다니는 건 어려웠다. 기껏해야 머리 뒤에 리본을 묶는 게 다였다. 그런 어머니가 한국에 오시더니 예쁘게 꾸미셨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외출하려고 단장을 하는데 서랍에 가짜 진주가 꽉 차 있었다. 엄마한테 진짜 진주를 해 줄 수 없을지 고민하다가 진짜 진주 액세서리를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 와서 탈북민 언니들도 많이 만나게 됐는데 북한, 중국에서 자식을 데려오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자식이 있었다. 언니들이 지나가는 말로 일을 하고 싶은데 아기 때문에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언니들이 경제적 자립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수작업이 대부분인 액세서리 만드는 일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사업체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했을 텐데 관련 준비는 어떻게 했나.
▲ 학교 다니면서 운영하려다 보니까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 생기니까 에너지가 분출됐다. 학교가 끝나면 동대문, 남대문에 있는 주얼리 백화점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사업체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소상공인에게 주는 씨앗자금을 받기 위한 노력도 했다. 면접을 볼 때 진짜 진주와 가짜 진주를 가져가서 면접관 앞에서 비벼보고 설명하고 하다보니까 자금도 마련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사진=주찬양 씨 제공]
[사진=주찬양 씨 제공]

-사업체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 ‘서로 서’ ‘도울 우’를 써서 ‘서우네’ 라는 의미를 담은 프랑스어다. 나의 아기 이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뜻은 서로 돕는 마음을 갖자는 뜻이다. 예쁜 진주 주얼리를 사면서 좋은 일도 함께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다. 현재 센느는 경력 보유 여성 및 탈북민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진주 액세서리 구매하나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마음이 들게끔 하고 싶었다.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 플리마켓과 온라인으로 진행해 왔다. 올해 오프라인 매장을 열지 말지도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직은 시작하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서 카페처럼 커피도 마시고 주얼리도 구경하고 직접 만드는 것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또 북한 관련 서적도 비치하고 결국 사람과 사람, 남과 북을 이어주는 허브로 만들고 싶다. 단순히 생업을 위해 액세서리를 판다는 개념보다는 다 같이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작게나마 통일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도착해서 특별한 계획이 있었나.
▲ 탈북하는 과정에서 북송위기에 놓였는데 그때 당시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구출이 됐다. 당 간부 자식도 아닌 내가 이름 모를 사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북한에 있을 때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꿈이었는데,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의사뿐만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실현해 생명을 살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학에 바로 안가고 탈북민을 구출하는 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살리는 일에 중요한 가치를 두게 됐다. 

-지금의 자리에 올 때까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한국에 와 보니까 내가 공주처럼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을 겪어 보지도 않았고 순수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어렵거나 주위 환경이 나쁘지도 않았고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라 큰 어려움을 겪어 보진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면서 사람들한테 뒤통수도 맞아보고 발등도 찍혀 보는 경험을 했다. 정을 너무 쉽게 줬다가 아픔을 오래 겪는 상황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제일 아끼는 사람들한테 배신을 당했을 때 참 힘들었다. 

-어려움에 대한 극복은 어떻게 할 수 있었나.
▲ 종교적인 부분이 스스로에겐 가장 큰 위로가 됐던 것 같다. 사람에 의해 지쳤다가 혼자 조용히 기도를 하고 눈물을 쏟아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가족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큰 위로가 됐다. 다만 같이 아파해 주긴 해도 근본적인 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TV나 언론에도 얼굴이 많이 노출되면서 나도 모르게 잘난 척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척하는 삶을 내려놓고 진짜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도움이 됐다. 단단하게 깎인 보석이 빛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금도 스스로를 다듬어 가고 있다.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 탈북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그런 친구들이 연락 오면 우선 내가 경험했던 좋은 단체들을 추천해 주는 편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기회를 얻고 어떻게 도전하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또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무심코 던진 명함을 잡았는데 다양한 길이 열렸던 경험이 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통해 지나는 사람, 지나는 명함 한 장 소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준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나.
▲ 미래를 어떤 틀에 맞춰서 규정짓고 싶진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잠재력이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그렇지만 누군가를 살리고 돕는 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최종적인 목표는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데 가치를 두는 것이다. 앞으로 사업을 하면서 내가 공부한 미디어를 활용해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고 특별한 힘이 발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갈고 닦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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