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급락한 기름 값, ‘반사이익’ 누리는 가솔린 SUV 판매

코로나19에 따른 전 세계적인 저유가 기조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SUV 등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차량 판매가 호조를 띠고 있다. [이창환 기자]
코로나19에 따른 전 세계적인 저유가 기조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SUV 등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차량 판매가 호조를 띠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해 국내 완성차들이 때 아닌 가솔린 모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 가솔린 SUV의 판매 실적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른 환경부 등의 배출 가스 관련 규제에 따라 경유차의 대명사였던 SUV의 가솔린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가솔린 모델 생산을 시작하면서 경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가솔린 엔진 차량에 대한 판매 우려가 앞섰던 것도 사실. 어떻게 가솔린 모델 차량 판매가 증가할 수 있었을까. 이는 휘발유 평균 가격이 지난해 12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데 따른 반사이익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에 따른 산유국의 증산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이 비교적 저가 상태에 머물러 있다. 가솔린 차량 판매에는 물이 들어오는 시기다.

대형 SUV까지 가솔린 엔진 채용…디젤 대비 가솔린 차량 2배
저유가 기조에 자동차 회사 ‘다행’…판매 늘어난 가솔린 SUV

앞서 이명박 정부에서 ‘클린 디젤’을 언급하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중인 차종들 대부분에 디젤 엔진을 얹은 승용차 개발에 나섰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단은 가솔린 엔진, SUV는 디젤 엔진이 공식처럼 여겨졌으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환경 친화적인 클린 디젤을 채용한 차량 개발이 자동차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에 디젤을 채용한 세단까지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클린 디젤 실패 후 SUV 가솔린 엔진 채용

하지만 2010년경을 전후해 유럽에서 시작된 클린 디젤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이른바 아우디폭스바겐 사태로 불리는 글로벌 사기극이 들통 나면서 ‘클린 디젤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국내에 수입되던 승용차 가운데 디젤엔진 차량의 비중이 2011년 기준 35%였으나, 2015년 폭스바겐의 저감장치 조작이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까지 무려 70%까지 올라갔다. 

이후 디젤 엔진 채용은 급락했고, 올 상반기 기준 수입 차량의 디젤 모델 판매 비중은 30%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정부에서는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를 지원에 나섰고, 서울을 비롯한 각 지자체는 수도권 진입 금지를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5등급 이하의 경유차가 운행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까지 마련했다.

이에 국내 완성차들은 앞 다퉈 가솔린 모델 개발에 나섰다. 앞서 언급했듯 SUV에도 가솔린 엔진을 얹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의 대표 SUV인 싼타페와 투싼, 기아자동차의 쏘렌토와 스포티지까지 전에 없던 가솔린 모델 생산에 착수했고,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개발했다. 

문제는 가솔린 엔진 차량의 연료인 가솔린, 즉 휘발유 가격이었다. 경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휘발유는 세금 정책에 의한 것이다. 차량 소유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저렴한 비용에 차량을 운용·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만 환경 오염원으로 지목된 경유차를 구매하기가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신길동에 사는 40대 A씨. 취학 전 자녀가 있는 그는 가족용 차량으로 SUV를 구매했다. 이전에는 디젤 엔진을 얹은 SUV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올해 차량을 교체하면서 가솔린 엔진이 적용된 SUV를 선택했다. 그가 해당 차량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대비 상대적으로 저가에 머물러 있는 휘발유 가격이다.

A씨는 “예전에는 유류가격 등 유지비를 고려하다 보니 휘발유 차량을 구매할 수 없었다”면서 “최근 저렴한 상태에 있는 휘발유 가격 덕분에 가솔린 엔진을 가진 차량을 구매했다. 친환경 정책에도 일조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유가 기조에 따라 현재 휘발유 가격이 지난해 11월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어 가솔린 엔진을 채용한 차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웃고 있다. [오피넷 자료, 이창환 기자]
저유가 기조에 따라 현재 휘발유 가격이 지난해 11월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어 가솔린 엔진을 채용한 차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웃고 있다. [오피넷 자료, 이창환 기자]

경유차 보다 가솔린 승용차 선호 

환경부 산하 수도권대기한경청에 따르면 올해 가솔린 엔진 승용차의 누적 등록 대수는 지난 11월 기준 1135만5431대에 이른다. 반면 디젤 엔진 승용차는 587만4620대에 머물러 있다.

이런 가운데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11일 탄소량을 줄이는 정책인 탄소 중립에 대해 언급하며 경유 가격이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명래 장관은 “탄소 중립이 되기 위해 모든 생활 부분에서 탄소 제로가 되어야 한다. 내연기관차 타는 것도 언젠가는 우리가 중단을 해야 되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유차”라며 “노후 경유차를 중심으로 폐차를 하거나 친환경차로 전환하는 지원들을 확대하며 경유 가격의 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론적으로는 반드시 도입을 해야 하므로 시기를 결정하는데 따른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는 시점에 가서 시작할 것”이라며 “폐차를 우선하고 친환경차로 대체하면 보조금을 주는 것을 더 확대하게 되면 경유 가격 인상에 따르는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갖도록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경유는 탄소 중립을 위해 장기적으로 가격을 올려 사용을 지양하게 하고 친환경차로 대체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저유가 상황에 가솔린 차량 및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에 나선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코로나19로 판매 절감에 처할 줄 알았던 자동차 산업이 오히려 신 차 개발로 활기를 띨 수 있게 된 상황이다. 

한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는 내년부터 산유량을 하루 50만 배럴 더 늘리기로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감산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지만 미국이 셰일 가스(오일) 생산을 추가적으로 재개하면 시장 점유율 유지 차원에서 OPEC+ 산유국들이 증산에 나선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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