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곳

무료급식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김혜진 기자]
무료급식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사람들은 크고 중요하거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에는 집중하지만 작고 사소한 일은 근본적인 일이라고 해도 경시해 버린다. 우리 사회에는 작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고마운 사람들의 일터를 동행하며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려 한다. 일요서울은 지난 1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꾸준히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현재는 봉사자를 받고 있지 않아 일손이 부족한 탓에 기자도 함께 거들며 동행취재를 진행했다.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 “춥고 배고픈데 고맙고 미안합니다”
노인·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밥은 코로나19 이기는 ‘무기’

새벽 7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바로 뒤쪽에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허름한 건물 2층에 도착하자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다. 400여 명의 점심밥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임지고 있는 자광명보살(66)과 봉사자들은 새벽 6시부터 나와 분주하게 준비했다. 1년간 활동하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한 70대 봉사자는 “새벽 4시 반에 집에서 나와 첫차를 타고 왔다”며 “오자마자 쌀을 씻고 밥솥에 밥을 안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솥에서 밥이 완성되자 김장할 때 쓰는 커다란 대야에 뽀얗게 김이 나는 밥을 옮겨 담았다. 봉사자들은 깨, 소금, 참기름, 김 가루 등을 한가득 뿌려 밥을 섞으며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광명보살과 봉사자는 함께 성인 여성 두 주먹이 넘는 크기의 밥을 뭉쳤다. 바로 옆에서는 반 장으로 자른 김을 함께 올려줬다. 주먹밥 하나가 완성되면 그 옆에서는 작은 봉투에 담아 내는 시스템이었다. 칼 같은 분업화가 이뤄진 모습이었다. 스티로폼 박스 안에도 빠르게 주먹밥들이 쌓여 갔다. 

다른 한쪽에서는 주먹밥과 함께 먹을 요구르트와 단무지를 검정 봉투에 하나씩 담느라 분주했다. 기자도 옆에서 이 일을 거들었다. 400인분의 양이라 얼른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봉투를 집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추운 날씨로 손이 건조해 봉투 입구를 열려고 해도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반면 반대편에 있던 봉사자는 익숙하다는 듯 물을 살짝살짝 묻혀 가며 재빠르게 담아 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대안 ‘주먹밥’…더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이던 2월부터 정부 지침에 따라 서울에서 운영되던 무료급식소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곳 무료급식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광명보살은 방법을 달리해서라도 운영을 이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밥은 이분들의 ‘무기’인데 굶고 어떻게 힘든 코로나 상황을 견디라고 하냐”며 “여건이 좋으면 밥을 주고 상황이 어렵다고 바로 식사를 중단해 버린다면 이 일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판 급식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한 단계 내려 주먹밥을 준비하게 됐다”며 “오히려 식판으로 준비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나눠줄 수 있어 좋다. 마스크를 나눠주고 철저한 소독을 통해 안전수칙을 꼼꼼하게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8시 반이 되자 급식소 앞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먹밥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의 손도 다급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일부 봉사자가 주먹밥과 요구르트, 단무지가 담긴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자 김이 모락모락 났다. 매서운 바람이 두꺼운 패딩을 뚫고 들어오는 추운 날씨 때문에 봉사자들은 손을 호호 불며 거리를 두고 줄 선 노숙인, 노인 등에게 차례로 주먹밥을 건넸다. 봉사자들이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라며 말을 건네자 이들은 “춥고 배고팠는데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한 노숙인은 “밥을 무료로 받으면서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급식소 앞에서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무료급식소 앞에서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노숙인·노인·봉사자 모두에게 ‘새로운 변화’ 찾아와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자립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계기가 됐다. 자광명보살은 “30여 년간 이 일을 하면서 사업에 실패해 가족을 잃고 술로 매일을 달래는 힘든 사람들을 많이 봤다. 도움을 주면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얻어먹는 줄이 아닌 나눠주는 줄에 서라고 조언하고 작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며 “이곳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이제는 직접 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인력시장에도 나가거나 폐휴지 줍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가 생긴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몇몇 봉사자에게도 큰 변화의 계기가 됐다. 한 여성 봉사자는 “독실한 불자지만 사회적 봉사를 해 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노숙인이나 노인 근처에도 가지도 않았다. 냄새가 나거나 병이 옮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한동안 직접 밥을 나눠주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일 때 봉사자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직접 한 명 한 명에게 밥을 나눠줬는데 그날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며 “나도 이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마스크 교체도 해 주고 손 소독까지도 함께 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같이 나와 일을 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또 다른 봉사자는 “이 일을 안 하다가 하면 힘든데 꾸준히 하다 보니까 힘들지 않다”며 “늘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또 이 사람들을 우리와 한 가정이라고, 단지 식구가 많은 가정을 챙긴다고 생각하며 밥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가정에 다양한 구성원이 있듯이 우리도 그 테두리 안에서 늘 해온 일을 한다. 봉사가 아니라 생활처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3년부터 한 달에 한 번 봉사를 하다 재작년 9월에 책임을 맡게 된 자광명보살은 “밥 주는 장소가 바뀌거나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해오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지만 주민등록이나 거주지를 확인하고 복잡한 절차에 따라 지원을 해 준다. 이곳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이 많아 정부의 발길이 미처 닿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힘이 닿는 데까지 운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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