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낙제점에도 공공기관 성과급 수억씩 챙겼다

본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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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적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공공기관이 최근 보너스 잔치를 벌인 데 이어 역시 빚더미에 올라앉은 또 다른 공공기관들이 천억 원이 넘는 성과급을 나눠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일각에서는 공기업이 적자를 내더라도 일자리 창출, 상생협력 등을 잘하면 높은 경영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여서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영 성과 평가 실효성 의문...매년 수억 성과급 국감지적 물방망이 논란
 공공기관 경영 평가 방식 대수술…중대 일탈행위 발생 시 성과급 환수


기획재정부는 매년 7월 129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경영 성과를 등급화해 발표한다. S~E까지 6개 등급으로 C등급 이상만 받으면 임직원에게 성과급이 지급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성과와 상관없다.

공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나날이 나빠지고 있지만 올해 7월 D등급 이하를 받은 곳은 17개로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심지어 순손실 상위 10개 공기업 가운데 일곱 곳이 성과급을 받았다. 직원들은 수백만 원, 사장들은 수천만 원씩을 받았다. “공기업이 매년 성과급 잔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유다.

공기업 성과급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총 36개 공기업 임원성과급 총액 평균은 2억4839만원, 1인당 지급액 평균은 5386만원에 달했다.

- "세금은 나의 돈" 혈세 투입 논란도

실제로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경우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 부문에서 낙제점인 D등급을 받고도 종합등급은 최고등급인 A등급이었다. 부패나 윤리 문제에 대한 경영평가단의 지적사항이 매년 이어졌지만 LH는 우수한 경영평가로 입지를 공고히 해왔다. LH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최근 3년 연속 A등급을 받은 바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김천)에 따르면 LH는 최근 경영평가 성과급이 40.1%(284만원) 늘어났다.

LH 직원 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만433명에서 2019년 1만3675명으로 3242명(31.1%)이나 증가했다. 이로 인해 인건비는 5870억600만 원에서 7596억6500만 원으로 1726억5900만 원(29.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매출액은 23조5594억 원에서 20조5298억 원으로 3조296억 원(12.9%) 감소했고, 이로 인해 LH 직원 1인당 매출액은 22억5820만 원에서 15억130만 원으로 7억5690만 원(33.5%) 줄었다.

송 의원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자료를 확인한 결과, LH 임직원들의 평균 경영평가 성과급은 2017년 708만원에서 2020년 992만 원으로 284만 원(40.1%)이나 증가했다. 특히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LH 사장 재직 시절 받은 총성과급은 1억9715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도시공사의 성과급 지급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인천평화복지연대에 따르면 인천도시공사는 2017년 송도웰카운티 3단지 외국인 전용 임대주택 120세대를 약 515억 원을 받고 A업체에 매각했다.
 
당시 거래로 도시공사는 370억 원에  가량의 당기순익을 냈고 직원들에게 약 4억8000만 원의 인센티브 성과급과 12억 원의 자체평가 성과급을 지급했다. 문제는 공공임대주택을 민간사업자에게 매각한 자체가 위법이라는 점이다.

공공주택 특별법 제50조의2는 공공임대주택을 다른 공공주택사업자에게 매각하거나 임대 의무기간 1/2이 지나 임차인에게 분양 전환하는 경우를 빼고는 매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2015년 8월28일 신설됐으며 4개월 후 시행됐다. 결국 도시공사가 위법 행위로 번 돈으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셈이 됐다. 도시공사는 공공임대주택을 매각한 돈으로 일부 부채를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공사 관계자는 “매각 당시 절차상 하자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자체 감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곳은 한국수력원자력(5억88만원), 한국부동산원(4억8336만원), 한국도로공사(4억7710만원), 한국조폐공사(4억6435만원) 등이 있다. 2017년 3785억원 이익에서 지난해 3조8954억원의 대규모 손실로 돌아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A등급, 같은 기간 1조4414억원에서 1조1745억원으로 적자전환한 한국전력은 B등급을 받아 성과급이 지급됐다. 건보는 보장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문재인 케어’를 앞장서 이끄는 과정에서, 한전은 탈원전정책으로 대규모 손실을 냈다.

- 사고 치면 전체 임직원 성과급 삭감...대안 될까?

LH 사태가 논란이 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윤리경영 평가 강화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공공 기관 경영 평가에서 공공성과 윤리 경영의 비중을 대폭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부도 LH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같은 대형사고를 치면 해당 공공기관 임직원 전체가 성과급을 못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LH 사태의 경우 기본적으로 개인의 일탈행위이지만 중대한 일탈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관에도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고 이런 방향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LH 사태와 같은 중대 일탈행위의 경우 해당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공공기관에도 큰 불이익이 가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LH의 해체를 원하는 분위기로, 정부가 성과급을 통해 연대 책임을 물으며 인심 쓰는 체만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대형비리 땐 성과급 삭감? 삭감이 뭔가. 퇴직금, 연금 다 몰수하고 퇴사시켜야 한다", "전직원이 성과급 안 받고 투기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등의 지적이 봇물을 이룬다.

한편 당초 경영평가 성과급은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기관 개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호봉제를 철폐하고 성과 연동 급여제를 확산하는 만큼 공기업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개혁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경영평가 성과급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공기업에 제시하는 ‘당근’으로 변질됐다.

성과급 지급 기준도 100점 만점에 19점이던 ‘사회적 책임’ 부문은 30점으로 늘리고, 재무실적에 해당하는 ‘일반 경영관리’는 31점에서 25점으로 배점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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