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헤매던 나는 과학 수사연구소를 찾아갔다. 설 나희의 부검 보고서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거기서 아주 흥미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극히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하기 때문에 극비로 처리된 내용인데 설 나희의 몸에서 두 사람의 정자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두 사람은 남편과 조 조길 사장, 그리고 김 수 전무의 혈액형과 일치 한다는 사실이었다.

조 조길과 김 수는 혈액형이 같기 때문에 혈액형만으로 본다면 세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더 확실하게 알자면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하지만 아직 거기까진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세 사람의 정액이 섞인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생물학 과장의 견해였다. 그러나 물론 그렇지 않을 확률도 있는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별로 그럴듯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막히면 현장으로 다시 가라는 탐정학 제1조를 생각해내고는 일산 봉숭아 아파트 404호를 찾아갔다. 밤중에 갔기 때문에 박 상구가 혼자 집에 있었다. 그는 신나게 싸우는 성 룡의 액션 영화 비디오를 보고 있다가 멋쩍게 나를 맞았다.

 “시체가 발견 된 현장을 좀 볼까요?”
 나는 그를 앞세우고 욕실과 침실등을 살펴 보았다. 신혼 보금자리 답게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살림이었다. 침실을 살피다가 문득 서랍위에 놓인 핸드폰 하나를 발견했다.

 “이거 부인이 쓰던 거군요. 근데 배터리가 나갔네”
 “나희가 쓰던 것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여기 내꿈꿔 강아지 인형이 장식으로 붙어 있잖아요. 남자는 이런 악세서리 안 쓰죠. 이거 충전 좀 시켜 줄래요?”
그는 핸드폰을 들고 건넌 바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충전기가 거기 있는 모양이었다.

 “박실장님 궁금 한게 있어서 몇 가지만 물을께요. 설 나희씨를 좋아한 남자들이 꽤 있었던 모양인데 어떻게 쟁취를 했나요?”
 “쟁취라구요? 흐흐흐 거 잼있는 표현이네요. 사랑이란 설명이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모든 걸 해결해 주니까요.”

 “나희씨도 회사에 투자를 했던데...”
 “김종서(주)의 제 주식을 좀 나눠 준거죠.”
“김종서주식회사라고요? 왜 이름이 김종서예요?”
“그건 역사속의 김종서 장군이 아니고 제 옛 애인 이름이 김종서 였어요. 지금 나희를 많이 닮았었는데... 저는 나희를 늘 김종서라고 착각을해요.”

 “그랬군요 그런데 부부인데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까?”
 “그건 결혼 전에 준거예요”
 나는 H로부터 설 나희의 야망에 대해 잠깐 들은 것을 기억하고 물었다. 그녀는 박상구가 말하는 사랑을 위해 사는 여자라는 인상보다는 자기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랑 같은 건 헌 신짝처럼 버릴 수도 있는 여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 나희 씨가 첨엔 조 사장이나 김 전무를 무척 따랐다고 하던데...”
 내가 박 실장의 표정을 흘깃 보면서 말했다.
 “누가 그래요?”
 그는 뜻밖에 화를 벌컥 내다가는 곧 참았다.

 “나희는 원래 누구한테나 상냥한 여자 였어요. 그렇다고 그 남자들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마구 주는 여자는 아니예요.”
 “이제 핸드폰 충전 되지 않았을까요?”

 박 상구가 나희 핸드폰을 들고 왔다. 나는 우선 리다이얼을 눌러 보았다.  
 나희가 죽은 뒤 이 핸드폰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가 마지막 건 전화 번호가 나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니 핸드폰 부인 죽은뒤 한번도 안쓴 거죠?”

 “물론입니다.”
 내 추측이 맞았다.
‘5678-5678’
 “이 번호는 어디죠?”
내가 핸드폰을 박실장 눈 앞에 디밀었다.

“어? 이건 김 수 전무 책상 번호인데”
박실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놀라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나요?”

나는 설 나희의 몸에서 김 수와 혈액형이 같은 정액이 검출 됐다는 것을 떠 올리며 물었다.
 그는 충격에서 벗어 나려는 듯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말씀 드리죠. 나와 결혼 한 뒤에도 두 사람은 가끔 마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이 그러는데 김 전무의 차가 가끔 우리 아파트 앞에 서 있었다고 하거든요. 우리 회사의 실질적인 오너는 김 전무입니다. 그가 돈을 다 대다시피 했거든요. 그는 회사와 여자를 모두 가지려고 했습니다. 내가 그걸 막은 거죠 말하자면...”

 나는 박 실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명확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 사람 사이애 갈등이 있었던 것은 틀림 없었다. 그러나 조 조길이나 김 수는 설 나희 피살되던 시강의 알리바이가 충분히 성립되어 있었다.
 나는 설나희 가 언제 김 수 전무와 통화 했는가를 알기 위해 추 경감을 찾아 갔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범인은 박상구, 즉 남편이 틀림 없습니다.”
나는 추경감에게 결론을 제시 했다. 나는 사건 의뢰인이 범인이라면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을 그쪽으로 몰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설나희의 핸드폰에 남아 있는 전화 번호가 어제 날짜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 했어요. 박 상구는 내가 핸드폰 충전을 해 오라고 했을 때, 얼른 머리를 쓴 거죠. 설 나희가 마지막 전화를 건 사람은 김 수라는 흔적을 남기려고 그렇게 해 가지고 나한테 핸드폰을 넘겨 준거죠.”
“그럴 듯 한데...”

나는 계속해서 내 추리를 설명했다.
박 상구와 설 나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였다. 둘이서 모종의 음모를 가지고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 조길사장이나 김 무전와 계속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질투에 눈이 어두운 박 상구는 아내를 죽이고 난 뒤  김 수에게 덮어 씌우려고 한 것이다. 경찰이 자기를 용의자로 자꾸 몰고 가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나를 끌어 들여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엄청난 탐정 결론에 대해 추 경감은 한마디로 나를 놀라게 하고 말았다.

 “추 탐정 미안해요. 설 나희는 자살 했어요. 그가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보낸 유서가 어제 이곳에 도착 했어요. ”
 “예? 아니 그럴 수가... 왜 자살을 했어요?”

“ 그녀는 원래가 연애 지상 주의자가 되어서 한 남자를 섬기며 살기는 힘들었던가 봐. 여러 남자와 저질은 일 때문에 괴로워 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아는 남편의 괴롭힘을 더 이상 당할 수가 없었지. 박상구는 다 알면서 추 기자, 아니 추 탐정을 찾아 갔던 것이지”

 이렇게 해서 나의 탐정 첫 사건은 실패로 끝났다.

[작가소개]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5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6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1983년 한국추리작가협회를 창설하고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 포장 등 수상.

50판 까지 출판한 초베스트셀러 <악녀 두 번 살다>를 비롯, <신의 불꽃>,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추리소설 잘 쓰는 공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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