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끊고 도주한 성범죄자… 강력범죄 재범 예방 현주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기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된 50대 성범죄 전과자 강 모씨가 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1.08.31. [뉴시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기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된 50대 성범죄 전과자 강 모씨가 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1.08.31. [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도주 후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전과 14범 강윤성(56)의 범죄 행각이 사회적 공분을 사는 가운데 지난 2008년 ‘전자발찌법’이 시행된 이후 강 씨와 비슷한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지만 관리·감독 부실 논란에 법무부가 여섯 차례 개선을 했음에도 재범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자발찌 제도에 대한 개선뿐 아니라 수사당국 간의 공조도 밀접하게 이뤄질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순 위치 추적 전자발찌에 거는 기대 너무 커… 법무부-경찰 밀접 공조 이뤄져야”

강 씨가 출소 이후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강력범죄 보호관찰 제도와 운영상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재범 가능성이 높아 보호감호 대상인 강 씨를 보호관찰제도 하에서 오래 관리하려면 출소를 시켜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음데도 강력범죄를 염두에 둔 강제수사 전환이 신속히 이뤄지지 못했던 상황이 알려진 것이다. 최근 강 씨처럼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한 출소자가 최소 3명 이상(3명 중 2명은 성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법무부와 경찰은 또 한 번 비상이 걸렸다. 

보호감호 조치 중인데… 재범 위험 감안 안 했나

보호감호 중이던 강 씨를 가출소시킨 법무부 조치가 적절한 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보호관찰 규정을 위반했는데도 재범 위험을 감안한 적극적 수사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논란이 된 셈이다. 강 씨는 가출소 이후 심야시간대 외출금지 규정을 두 차례 어겼고 두 번째 위반은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직후인 지난달 27일 새벽에 발생했다. 

강 씨처럼 심각한 범죄 전력을 가진 대상이 보호관찰 규정을 위반했다면 바로 대면조사를 진행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6월 보호관찰 관련 준수사항 위반이 발생할 때 보호관찰관이 특별사법경찰(특사경)로서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감독 특사경’ 제도가 시행됐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특사경들의 소극적 대응에서 보듯이 제도가 안착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뒤 보호관찰소와 경찰이 그의 집을 5차례나 찾고도 내부 수색을 하지 않은 점도 주목받고 있다. 당시 그 집엔 첫 번째 피해자 시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택 수색이 이뤄졌다면 두 번째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거란 분석이 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도 “강 씨 주거지에 들어가지 못한 데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었다”며 “(강 씨 주거지를 수색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신속한 현장 수색을 위해선 수색영장 신청 및 발부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법무부가 수색영장을 신청한 시점은 전자발찌가 훼손된 지 16시간 가까이 지난 후였다. 경찰은 이 사건 수사의 주무 기관이 법무부였기 때문에 경찰이 영장을 발부받으려 적극 나서기 어려웠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훼손 쉬운 전자발찌… 무용론 반복

이번 사건에서 드러나듯 전자발찌 훼손은 손쉽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자발찌는 절단 도구만 있으면 쉽게 끊을 수 있고 훼손하고 움직이면 시스템 상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자발찌를 찬 상태라도 피해자를 자택 등으로 유인해 범죄를 저질러도 수사당국이 인지하기 쉽지 않다.

전자발찌 훼손은 지난 2008년 9월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전자발찌법)’이 시행된 이래로 꾸준히 발생했고 최근 몇 년 새 증가 추세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는 매년 두 자릿수의 훼손 사례가 나온다. 

법무부는 기존 우레탄 재질로 된 전자발찌가 일반 가위로도 쉽게 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2010년 10월부터 금속 재질인 스프링 강을 삽입한 신형 모델을 보급하는 등 6차례에 걸쳐 개선했다. 그럼에도 절단 자체를 막을 순 없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8월까지 13명이 전자발찌를 끊었고 이 중 2명은 아직 검거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일요서울에 “전자발찌 제도가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구점에서 산 용품으로도 쉽게 끊을 수 있다”며 “법무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재질을 강화했음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 하다. 전자발찌를 차고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개선책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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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 사과만 반복… “땜질식 대책”

강 씨 사건 이후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전자장치 훼손 사건 경과 및 향후 재범 억제 방안’ 브리핑에서 교정 당국과 수사당국은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두 차례의 살해 뒤 자수하기까지 무려 38시간30분 동안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경찰 등의 허술한 대응에 논란이 일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 전자감독제도는 그동안 끊임없이 개선되고 발전해왔지만 아직 물적·인적 한계가 있다”며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법무부가 내놓은 개선 방안은 ▲전자발찌 훼손 방지 대책 마련 ▲훼손 후 신속한 검거를 위한 경찰과의 공조 체계 개선 ▲재범 위험성별 지도 감독 차별화 및 처벌 강화 ▲관련 인력 확충 등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이날 발표한 개선 방안은 기존 대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해당 보호관찰소를 직접 방문해 대상자의 고위험정보에 대한 교도소와 보호관찰소 간 정보공유 부족, 보호관찰 위반 내용과 관련한 보호관찰소 내 직원 간의 소통 부족 등 고위험대상자 관리시스템의 미비점을 확인했다”며 “각 보호관찰소당 1~2명 수준인 고위험대상자에 대한 선택과 집중에 따른 관리시스템이 당장 시행될 필요가 있음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 당시 외출금지 제한 위반 패턴이 동일해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음에도 관행적인 업무처리로 대응한 측면도 발견했다. 지난 6월부터 시행된 보호관찰 특별사법경찰 제도에 따른 관련 업무 지침과 매뉴얼에 대한 준비와 숙지가 부족한 부분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지점”이라며 “경찰과의 공조 시스템이 제도화 돼 있지 않은 점, 각종 영장 신청에 있어 검찰과의 유기적 협력 시스템도 점검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브리핑에서 이전 대책보다는 좀 더 구체화된 내용을 제시했다. 우선 인력 부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충원하고, 보호관찰소에 신속수사팀을 설치해 준수사항 위반자에 대해 심야시간대에도 실시간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전자발찌 훼손 사건 발생 즉시 특사경이 신속 대응하고 필요한 부분은 경찰과 협조한다는 방안과 관련 현재 112상황실에 훼손 사실만 전파하는 수준에서 대상자의 신상정보 및 요구정보를 동시에 제공하기로 했다. 또 경찰관이 현장에서 주로 활용하는 내부시스템(폴넷)에서도 전자감독 대상자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로 했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제도는 범죄 예방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이고 과거보다 많은 발전을 이뤄 왔지만 아직 보완이 필요한 점도 많다”며 “강 씨의 사건처럼 전자발찌가 끊어진 이후 수사당국이 대응을 하는 데 시간이 지체돼 미흡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측면들이 아쉽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법무부와 수사당국의 공조가 빠르게 이뤄져야 하지만 개인정보 등이 민감해 엇박자가 난 듯한 느낌도 있다”며 “성범죄의 경우 재범률이 가장 높은 범죄 중 하나고, 더 나아가면 강력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밀접한 수사 공유로 발 빠르게 움직여야 제2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호 교수는 “전자발찌에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 전자발찌 제도는 범죄자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건데 일반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행동 감시 기능까지 기대한다. 전자발찌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라며 “전혀 효과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기대만큼 될 수는 없다. 위치 추적의 역할로 끝나는 전자발찌 제도에 다른 보완 제도를 함께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호 관찰 정보 시스템에 입력된 다수 범죄 경력자들에 대한 관리를 통해 예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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