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주문했더니 ‘커피 기프티콘’…“출고 일정 미뤄져 죄송”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의 부품 협력업체들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차량 출고가 지연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의 부품 협력업체들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차량 출고가 지연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조급하다. 차량 주문 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현대차의 그랜저와 기아의 인기 차종인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아 측도 정확한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9월 판매량은 뚝 떨어졌다. 국내는 30% 하락에 해외 수출도 10%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아가 출고를 기다리는 고객들에게 ‘미안하다’며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일이 발생했다. 고객들은 커피가 반갑기는커녕 차량을 원하는 기일에 맞춰 받지 못하게 될까 오히려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출산 앞두고 자동차 계약 했는데”… 공장 가동 중단 고객 ‘발동동’
현대·기아 9월 자동차 판매량 ‘뚝’… 전 세계 완성차 업체 속도 조절

대구광역시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6월 기준 쏘렌토 최초로 적용된 하이브리드 차량을 신청했다. 아내가 내년 초 출산을 앞두고 있어 다른 차종들과 비교하며 어렵게 내린 결론이다. 기아 측에서 12월경이면 차량을 인수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에 담당 영업사원에게도 연락을 취해 보기도 하고 연일 보도되는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 현황 기사를 꼼꼼히 챙겨 보고 있다. 

낯선 커피 기프티콘 ‘출고 지연’ 안내

이런 가운데 지난달 낯선 번호로부터 스타벅스 커피 2잔을 포함한 기프티콘을 문자메시지로 받았다. 해당 문자메시지는 ‘기아 출고지연 고객 안내문’ 이라는 문자 메시지와 함께 전송됐다. 기아로부터 출고 지연 안내도 함께 날아왔다. A씨는 부랴부랴 기아 측으로 확인을 했으나,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기아는 출고 대기 고객들에게 ‘출고 지연 안내’라는 제목으로 “기아를 믿고 계약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면서 “고객님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전 직원이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인도가 빠르지 못한 점 양해의 말씀 드린다”고 내용을 게시했다. 

이어 “기다림의 시간이 더 큰 만족이 될 수 있도록 완벽한 차량 품질과 인도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윽한 향기를 내는 커피처럼 향긋하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A씨는 취재진에게 “당장 아기가 태어날 예정인데 차량 출고를 기다리는 고객에게 출고 지연을 미안하다고 스타벅스 커피 쿠폰 보내오니 오히려 불안하다”며 “마냥 기다려야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답답한 뿐”이라고 토로했다. 

기아가 출고 대기 고객들에게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이창환 기자]
기아가 출고 대기 고객들에게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이창환 기자]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신차 수요 상승에 비해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이 쉬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예상외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어서다. 나아질 거라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 원인으로 풀이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여건이 좋아지길 지켜볼 뿐이다.

이런 가운데 기아는 판매량도 급감했다. 전년 동기 대비 14% 수준이다. 내수는 30.1% 하락했고, 해외 판매량도 10.1% 추락했다. 기아 측은 글로벌 판매와 내수 모두 반도체 수급에 차질을 겪으며 판매량이 하락했다면서, 내수는 추석 연휴를 맞으며 근무일수가 줄어 더욱 급감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9월 판매량 감소가 22%를 넘었다. 내수는 34.6%가 줄고, 해외 판매도 19.4%나 하락했다. 역시 반도체 수급 문제다. 이미 지난달 아산공장과 현대모비스가 수차례 생산 공정을 멈춘 바 있다. 

판매량 급감 이어 현지 공장 가동 중단

해외 공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이 지난달에만 총 5일이나 휴업했다. 교대 근무를 축소하고 생산 라인 스피드를 줄여 왔으나 이를 넘어 휴업까지 해야 했다. 조립 과정에 필요한 부품 없이 차량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개월째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북미에서 인기가 좋은 기아의 주력 대형 SUV도 문제가 심각하다. 쏘렌토와 텔루라이드가 생산되는 미국 조지아 공장도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초래되기까지 했다. 반도체 수급이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기라도 하면 손실도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현재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의 사례가 생기는 이유는 반도체 부품 수급 문제지만 일부 재고 물량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재고는 확보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관계자는 “(반도체)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나 공장 사정에 따라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며 “주요 수입 부품에 대한 재고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방침을 밝혔지만, 재고를 쌓아둘 만큼 반도체 수급이 여유로지 못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 현대나 기아 등 특정 완성차 기업에만 반도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면서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의 완성차 업체들도 부족한 반도체로 주요 부품이 조립되지 못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동남아의 반도체 공장을 비롯해 유럽의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동남아에서 감염자 확산을 가속화하면서 기초 부품인 반도체용 부품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레이시아 소재의 반도체 부품 제조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고, 독일의 ECU 부품 업체 인피니언 역시 코로나19로 생산을 제때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신차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도래하면서 판매 부진을 우려해 반도체 주문 자체도 줄였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지만,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성이 좋은 PC 및 스마트폰 용 반도체 생산 체제로의 전환에도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수급 난항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