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해고 무효’ 결정에 항소…한전산업개발 ‘버티는’ 속내는

김평환 한전산업개발 대표가 보령 사업처 현장 점검에 나선 모습. [한전산업개발]
김평환 한전산업개발 대표가 보령 사업처 현장 점검에 나선 모습. [한전산업개발]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자유총연맹을 대주주로 두고 있는 한전산업개발은 정치적 유착성이 강해 논란이 끊이지 않던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중략)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 회사의 정치적 배경으로 인해 수십 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힘없는 직원들이 희생양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한전산업개발 전(前) 대표이사가 2020년 7월1일 사임한 이후 ‘억울한 해고’를 호소한 과거 자신의 부하직원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데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밝힌 입장이다. 

대주주 ‘한국자유총연맹’의 정권 연계 낙하산 인사의 거침없는 ‘해고’ 릴레이
표창받은 임직원 해고, 줄 잇는 소송전(戰)…중노위·지노위 패소 버티는 한산

근무하던 회사로부터 억울한 해고를 당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일반적으로 억울한 해고 또는 해임을 토로하는 이들은 직급이 낮은 사원들의 경우 혹은 노조 간부일 경우가 많다. 직급이 높다 하더라도 20년 이상 공로를 인정받거나 표창 등의 수상 경력까지 있는 고위직 사원을 사측이 해고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요서울이 만난 A씨는 한전산업개발 1직급 실장(또는 처장)급 사원이었다. 그런 그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힌 데는 이유가 있었다. A씨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로 설립됐다가 2003년 한국자유총연맹에 매각된 한전산업개발 직원이었다. 그는 1997년 입사해 24년째 근무해 온 회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통보 하고나서 징계 ‘인사위원회’ 열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억울하다는 그의 사연은 자초지종을 듣는 순간 취재팀이 가동됐다. A씨가 해고당한 사유는, ‘계약업무규정’ 위반. 한전산업개발은 A씨가 특정업체 특혜 제공, 회사 손실 초래, 은폐 및 허위보고, 감사규정 위반을 했다고 봤다. A씨는 당시 사측의 해고 사유를 보고 스스로를 의심했다고 했다. 

바로 직전 “회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대표이사로부터 공로상까지 받게 했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그런데 한전산업개발은 그 동일한 내용으로 인해 그를 해고한다고 통보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기에 사측이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해고’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는 정말 해고를 당할 만큼 잘못을 저질렀던 걸까. 

그런데 한전산업개발은 가장 기본적인 ‘징계’ 관련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A씨에게 해고 통보를 하고 나서 징계를 위한 절차 상 인사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러니 A씨의 소명이나 사측이 통보한 해고 사유를 반박한 근거 자료가 통했을 리는 만무했다. 

2014년부터 급여복지팀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전산업개발의 산재보험요율을 확인해 이를 경감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47억8100만 원의 산재보험료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환급받았다. 그는 이일로 당시 대표이사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는 앞서 한전산업개발과 여러 해에 걸쳐 업무를 진행해 온 노무사의 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전산업개발이 통보한 징계사유서에는 A씨에게 결재권자(본부장 및 사장 등)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면밀한 검토를 거쳐 보고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재권자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의미가 되는 걸까. 한전산업개발에서 징계시킨 A씨의 사안과 관련 결재권자가 받은 징계나 고소, 고발 등 책임을 묻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창환 기자]
한전산업개발이 통보한 징계사유서에는 A씨에게 결재권자(본부장 및 사장 등)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면밀한 검토를 거쳐 보고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재권자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의미가 되는 걸까. 한전산업개발에서 징계시킨 A씨의 사안과 관련 결재권자가 받은 징계나 고소, 고발 등 책임을 묻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창환 기자]

노무법인과의 수의계약에 의한 특혜 여부?

하지만 대표이사를 비롯해 감사 등 임원진이 교체되면서 A씨가 세운 공로의 내용이 “회사에 손실을 초래했다”는 징계 사유가 된 것. 한전산업개발은 해당 용역 체결 시 회사 부담 비용의 적정성을 검토하지 않고 산재보험요율 경감 신청 위임 시 ‘한도 표기 없는’ 성공보수 20% 계약으로 B노무법인에 9.08억 원의 이익을 취득케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해고무효 소송에 앞서 국내 최고 수준의 로펌을 찾아가 “전 재산을 털어도 좋으니 억울한 사연을 들어만 달라고” 울며 사정했다. 그렇게 의견서를 받아 회사에 제출했다. ‘징계처분의 타당성 검토’라는 의견서는 “A씨 해임처분은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고 징계양정이 과다하므로 위법이라고 판단”이라고 결론 내렸으나 한전산업개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한 A씨는 소송 중 해당 노무사가 한전산업개발로부터 수임료 과다청구에 대한 반환 청구를 받게 된 사실을 듣게 됐다. 한전산업개발은 동종업계 시장조사 결과를 발췌한 것이라며 노무사의 부당한 초과 이익을 주장했고, 그 근거를 법원에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해당 업무를 수행했던 B노무사는 일요서울에 “한국공인노무사회도 ‘해당 건의 수임료가 과하지 않고 적정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A씨와 B노무사에 따르면 B노무사가 소속돼 한전산업개발 노무를 수행했던 前 노무법인이 민원을 제기해 진행된 것.

지난 3월24일 A씨의 재판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며 “고용 관계를 게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징계양정에 관한 재량권을 현저하게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사측이 제시한 노무법인 비용 과다지급에 따른 손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 과정에서 결재권자인 본부장 및 사장까지 적법한 승인과 결재가 진행됐다고 봤다. 특히 수의계약 특혜가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한전산업개발과 해당 노무사 간의 법적 다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노무사는 오히려 사측 상대로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이다. 

한전산업개발 ‘패소’ 즉각 항소제기 이유는?

법원의 ‘해고 무효’ 결정이 내려졌으나 한전산업개발은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황. 일요서울이 만난 주변인에 따르면 한전산업개발의 대표이사와 감사 등 임원진이 해임 또는 해고자는 A씨뿐만 아니라 다수 있었다. 

또 다른 1직급 직원을 비롯해 팀장급 인사부터 대리 직급에 이르는 직원까지 다양했다. 해고당한 일부 직원에게는 사측이 배임 혐의 등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직원들의 아파트에 가압류도 걸었다. 

이들은 처음 한전산업개발을 상대로 지방노동위원회 심의를 요청했고, 부당해고 판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사측은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제기를 했고, 역시나 중노위에서도 ‘부당해고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한전산업개발은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고 당사자와 한전산업개발을 둘러싼 주변인들은 이런 해고가 이어지는 데는 한전산업개발의 특수성을 들여다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무슨 말일까. 한전산업개발의 최대주주로 한국자유총연맹이 들어선 이후 이른바 ‘낙하산’ 인사 주장이 이어졌다. 

자유총연맹은 정권과 맞물려 있고, 이로부터 선임된 대표이사나 감사 등 사내·사외이사들이 실적 사냥에 나선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일요서울에 한전산업개발이 또 다른 해고자에 대한 징계를 결정지었던 일부 감사실 소속 담당자들이 감사 업무를 진행하기 전 무보직 조치된 바 있다는 제보도 접수됐다.

이와 별개로 일요서울은 한전산업개발 측으로 A씨 해고 내용 관련 질의를 전달하고 답변을 요청했다. 소송 진행 내용을 제외한 기업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답변을 당부했다. 징계 인사위원회 전에 해고 통보가 된 이유, 타당한 승인 및 결재를 거쳐 진행된 산재보험료 환급 업무에 대해 실무자만 징계한 이유 등이었다. 재판 결과가 없더라도 답변할 수 있는 질의로 축약해 전달했다. 

이에 대해 한전산업개발은 “당사 A씨의 징계는 회사 규정에 따른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사안”이라며 “현재 고등법원의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라고 전해왔다. 

한전산업개발(피고)로부터 해고 징계를 당한 A(원고)씨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징계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창환 기자]
한전산업개발(피고)로부터 해고 징계를 당한 A(원고)씨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징계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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