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시달려왔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화물연대 파업 장기화에 대한 법과 원칙에 따른 대처 등 윤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적기질을 발휘하면서 자신만만했던 검찰총장 시절의 모습을 회복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취임초를 보냈다. 지방선거 압승 이후 이준석 전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발 내분,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과 정권퇴진을 외치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불복 사태,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이른바 3()로 불리는 경제위기 등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취임 이후 스페인·영국·미국·인도네시아 등 여러 차례의 해외순방 과정에서는 뚜렷한 성과보다는 가십 성격의 크고작은 구설수만 부각되면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다만 취임 7개월을 기점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 때문일까? 한때 레임덕이 거론되면서 20%대 초중반으로 추락했던 지지율 또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30%대 초중반을 회복했다. 지지율 상승이 탄력을 받을 경우 40%대 회복도 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관저정치는 보다 가속도를 내면서 당과 정부, 대통령실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한남동 관저. 뉴시스
한남동 관저. 뉴시스

- 한남동관저 첫 손님 빈살만 이어 국힘 지도부·윤핵관 초청 만찬
- 역대 대통령도 식사정치 활용대통령 관저정치 다목적카드 포석
- 지지율 30%대 안착 완만한 상승세 속 대통령 국정장악력 강화

윤 대통령의 히든카드는 바로 관저정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주거공간을 단순히 휴식차원에서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다목적 포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정국의 고비 때마다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격의없는 소통을 통해 위기탈출을 노리겠다는 의지다.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이와 관련해 소탈하고 호방한 윤 대통령의 특유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통치 스타일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미스터 에브리씽으로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한남동관저 첫 손님으로 맞은 이래 여권 고위인사들을 잇따라 초청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내대표 등 투톱을 포함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 장제원·권성동·이철규·윤한흥 의원 등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의원들을 부부부동반으로 초청해 화합의 시간도 가지기도 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차기 전당대회와 총선을 앞두고 다소 어수선했던 당 안팎의 분위기를 바로 잡은 것은 물론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불협화음도 정리했다.

레임덕은 없다최악 위기 벗어나 자신감 되찾은

윤 대통령의 회복세는 지지율에서 잘 드러난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30%대 초중반으로 올라섰다. 이는 지난 8월 서울 폭우피해 당시와 10월 미국순방 중 비속어 파문의 여파로 20%대로 추락했던 시절과 묘하게 대비된다. 취임초 레임덕이라는 최악의 위기상황만은 벗어난 셈이다. 물론 대선 득표율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뒤쳐진 지지율인 데다가 부정평가가 60%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추세전환은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1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2%였다. 113주 차에 29%로 떨어졌다가 2주 만에 다시 30%대 초반으로 반등한 것이다. 부정평가 역시 2%포인트하락한 60%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2일 공개한 조사에서도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1%, 부정 평가는 60%로 각각 집계됐다. 직전 조사보다 긍정 평가는 1%포인트 상승, 부정 평가는 2%포인트 하락했다. 긍정 평가 이유로 공정·정의·원칙’ 12%에 이어 노조 대응8%를 차지한 점이 눈길을 끈다.

앞서 다른 조사에서는 30%대 중반의 지지율이 나올 정도로 회복세가 가파르다. 지난달 28일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6.4%, 부정 평가는 60.8%로 나타났다. 이는 직전 조사와 비교할 때 긍정 평가는 3.0%p 상승하고 부정 평가는 3.0%p 하락한 것이다. 특히 3%포인트의 지지율 상승은 윤석열정부 이후 최대치다. 이전 조사에서 가장 상승폭이 컸던 경우는 2.8%p(10332.9%10435.7%)에 불과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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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올린 관저정치, 빈살만시작 정진석·주호영.장제원·권성동까지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출퇴근 대통령이다. 청와대 이전으로 한동안 서초동 자택에서 출퇴근했지만 한남동관저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지난달 입주했다. 한남동관저는 외교부장관 공관을 경호·경비 중심으로 리모델링한 것으로 주거동과 업무동 면적은 1421(430) 규모로 조성됐다. 윤 대통령은 한남동관저를 주거 및 휴식공간으로만 활용하지 않고 내외빈을 최대한 예우하는 장소를 활용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김건희 여사도 함께 해 내조에 주력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남동관저의 첫 공식 손님은 해외 VIP인 빈살만 왕세자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방한 중인 빈살만 왕세자와 용산 대통령실이 아닌 한남동 관저에서 정상회담과 오찬을 가졌다. 이른바 관저정치의 첫출발이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방한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최고의 예우와 환대였다. 윤 대통령은 외빈접견 때 관저를 이용한 것과 관련, “나름대로 국가 정상의 개인적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별도 의미가 있기에 어제 굉장히 기분 좋은 분위기였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 성과도 상당했다. 인프라, 방산, 원전, 수소 등 다양한 분야에 20개가 넘는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면서 최대 수십조원에 이르는 세일즈외교의 성과를 냈다.

관저정치의 물꼬를 튼 윤 대통령은 여권과의 대화에도 속도를 냈다.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과 윤핵관 부부동반 모임을 통해 국정장악력을 높인 것이다.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수용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윤핵관 그룹의 단일대오도 재확인했다.

우선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찬회동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를 둘러싼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의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3시간 20분 가량 진행된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지도부의 노고를 격려하면서 당의 화합을 강조했다. 복수의 참석자들은 회동 이후 오랜 친구들이 덕담을 나누거나 서로를 격려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특히 만찬회동에서 윤 대통령 좌우로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나란히 앉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친윤 강경파를 중심으로 터져나온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다독이면서 변함없는 신뢰를 재확인한 셈이다. 아울러 후일담은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예우했다. 주 원내대표가 사법연수원 9기수 선배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정국 최대 현안이었던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 “원칙대로 하면 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논란에는 가짜뉴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지도부를 안심시키며 동백아가씨는 내가 모르는 노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훈 법무장관과 관련해서도 함께 오래 일했지만, 한 번도 2차에 간 적이 없다. 1차도 길어지면 그냥 중간에 나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지도부에 이틀 앞선 지난달 23일 윤핵관 4인방의 부부동반 회동도 관심사였다. 차기 전대와 관련해 친윤계 단일후보를 교통정리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초 이준석 전 대표와의 불협화음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과 달리 임기 중반 이후 안정적인 지도체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핵관 4인방은 윤 대통령의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이다. 여야가 합의한 이태원참사 국정조사와 관련해 윤핵관 4인방은 본회의에서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질 정도로 친윤의 핵심이다. 더구나 당 지도부보다 회동 날짜가 앞섰기 때문에 역시 윤핵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만찬회동의 형식도 부부동반 모임이라는 점에서 윤핵관 그룹에 대한 윤 대통령의 애정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징표였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차기 전당대회 시기가 물밑조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의 의중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차기 전당대회와 총선 승리가 시급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윤핵관 4인방의 단합과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국민의힘 내부에 전달하는 메시지 효과도 상당하다. 이밖에 한때 사이가 멀어졌다는 풍문이 돌았던 권성동 의원과 장제원 의원은 이날 부부동반 모임에서 오해를 풀고 대승적 협력을 다짐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 및 오찬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2022.11.17.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 및 오찬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2022.11.17. 뉴시스

식사정치 상징 한남동관저, 당소통및장악력 강화

관저정치는 역대 대통령들이 주로 활용했던 식사정치와 일맥상통한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비공개 오찬이나 만찬을 즐기면서 현안을 논의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선호했다. 특히 언론노출을 꺼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친박 의원들을 초청한 식사자리에서 유머를 곁들인 소탈한 행보를 자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물론 외부로 노출될 경우에는 다소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보안이 유지될 경우에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보다 명확하게 소속 의원들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 소속 의원들도 대통령과 독대 또는 식사정치 초대를 통해 본인의 정치적 존재감도 높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윤 대통령의 관저정치는 앞으로 보다 활성화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윤핵관 그룹에 이어 다양한 카테고리 별로 의원들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수별로 또는 상임위별로 여당 의원들을 그룹핑해서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수렴에도 나설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지속 등 한반도 안보환경이 악화될 경우 국회 국방위·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초청해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부동산가격 급락이나 금융부실 등 경제상황 전반의 점검이 필요할 경우에는 국회 기재위·정무위·국토위 소속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현 여야 대치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한남동관저에서 여야 영수회담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과거 청와대에 비유하면 상춘재에서 오·만찬을 가지면서 극진한 예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아직 여야 영수회담이 없었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등 여야간 굵직한 현안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여야 소통의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검찰수사의 대상이라는 점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국정운영 협조를 위해 여야 원내 지도부 회동은 원친적으로 가능하다. 윤 대통령이 만일 야당과의 대화 공간으로 관저를 선택한다면 정치적 효과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밖에 여야의 대치 등 극단적 국론분열 해소를 위해 정치사회 원로를 관저로 초청해 지혜를 구하는 시간도 마련될 수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지지율은 여전히 낮고 악재도 산적한 상황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초보 정치인의 티를 벗고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오찬과 만찬을 겸하는 관저정치는 언론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현 단계 여야의 교착국면 해소를 위해서도 관저정치를 검토할 수 있다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은 사법리스크 여파로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민생현안 논의를 명분으로 여야 원내지도부를 초청한 한남동 관저 회동이 성사된다면 여소야대 국면 극복을 위해서도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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