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보다 일본’ 4일 동안 17만 명 일본行

내국인 관광객이 연휴를 맞아 제주도보다 일본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창환 기자]
내국인 관광객이 연휴를 맞아 제주도보다 일본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지난 1월21일부터 24일까지 총 4일간 설 연휴 앞뒤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했다. 항공사마다 항공권 릴레이 매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예기치 못한 해외 여행객의 폭증에 언론도 저마다 대서특필했다. 해외여행 수요 증가의 선두는 일본여행이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으로 떠난 여행객은 전체의 30%에 이르는 17만 명에 달했다.  

코로나19 방역 90% 완화되면서 제주도 대신 일본…노선 확대까지
닛산 철수 이후 저조했던 일본차…하이브리드 앞세워 시장 확장 계획

지난해 10월부터 일본의 방역조치 완화에 따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면서 각 항공사가 일본 노선을 급하게 확대해야 할 만큼 일본 여행객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설 연휴가 불을 지폈다. 특히 예년의 경우 명절 기간 동안 제주도를 찾는 수요가 일본 여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풀이까지 나오고 있다. 

제주도 물가 비싸서 일본행, 거리도 가까워 2시간 이내

여기에는 제주도의 물가가 한 몫 했다. 최근 들어 제주도에서는 1만 원 이하의 식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올라버린 현지 물가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각종 SNS를 통해 늘어났다. 이런 제주도의 고물가 행진에 대한 반사효과가 일본을 향하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항공료는 조금 더 비싸지만 숙박비나 물가가 큰 차이 없고, 오히려 저렴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주요 도시가 한국으로부터 항공기로 2시간이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는 이점도 작용했다. 

최근 연휴를 맞아 일본 여행을 계획하던 30대 A씨는 취재진에게 “주말에 휴가를 붙여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다가 일본으로 목적지를 바꾸게 됐다”라며 “거리가 멀지도 않고, 숙박비나 식비 등을 포함한 여행 경비를 계산해 봐도 큰 차이가 없어 관광객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일본행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히려 제주도를 방문했던 관광객들은 제주도의 바가지 물가를 지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주도 은갈치 요리를 현지에서 먹기 위해 갈치 전문점을 방문했던 B씨와 친구들은 기본 5만 원을 넘어서는 갈치 요리 1인분 가격에 발을 돌렸던 사례를 설명했다. 

B씨 등이 방문했던 갈치요리 전문점은 갈치구이나 갈치조림은 2인 가격으로 5~6만 원이 기본 이고, 정식 메뉴라도 시키면 2인 기준 8~10만 원에 이르는 곳이었다. 갈치요리 식당들 중에 1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1인 여행객들이 먹을 수 있는 1인 갈치요리는 찾기 힘들다. 

이는 1인 ‘혼밥’ 또는 ‘혼술’을 하고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식당이 많은 일본과도 대조된다. 일본의 경우 1인 고객을 위한 식당이 어디나 있고, 가격 역시 부담 없는 선에서 다양한 요리를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유명한 관광지에 간다고 해서 타 지역에 비해 턱없이 비싼 메뉴만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결국 일본 관광 수요가 늘어날 이유는 국내에 있었던 셈이다.

해외여행객 30%의 선택, 일본불매 넘어선 매력은

국내 최대 관광지인 제주도가 상식을 뛰어넘는 물가로, 국내 관광객들이 일본불매를 넘어서서까지 일본으로 관광을 떠나게 만들었다는 오명을 쓰게 됐다. 실제 국토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4일 동안 해외여행객은 총 58만7000명을 넘었고 이 가운데 무려 30%인 17만 명이 일본행을 택했다. 

일본 여행의 장점은 국내 여행처럼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에 가까운 거리에 있다. 서울에서 부산을 자동차나 KTX를 이용해 여행가는 경우와 비교해도 2시간을 넘지 않는 일본 여행은 매력이 있다. 그리고 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국내여행과 달리 해외여행이 주는 만족감이 있다. 

최근 여권발급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일부 지역에서는 10배 내외로 늘었다는 뉴스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 지자체 중 일부는 야간 여권민원실을 열어야 할 정도라니, 해외여행 수요 및 기대 심리 확대가 증명되고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전자여권으로 교체되면서 발급까지 소요기간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자가 늘면서 2~3일의 여권 발급 소요기간이 최대 10일까지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NO JAPAN은 어디로, 일본 맥주 속속 등장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NO JAPAN’, ‘일본불매’가 각종 SNS를 장식했다. 일본불매를 마치 국민운동처럼 전개하던 시기였다. 항공여행도 일본 노선을 줄여야 했고, 일본 맥주도 마트나 매장에서 사라졌다. 일본에 본사를 둔 의류 업체인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등 일본 제품 판매는 거의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일부 한국 법인 대표가 방송에 나와 사과하거나 일본과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을 해도 소용없었다. 불처럼 타오른 일본불매 운동을 막아설 길은 없었다. 길에 주행하는 차량들의 후면에 ‘일본, 사지 않습니다’라거나 ‘일본, 가지 않습니다’라고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과거 국내 10위권에 있던 일본 맥주들이 상당량 순위권에서 사라졌지만, 최근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중심으로 일본 맥주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리테일 업체들이 각 편의점에 “일본맥주 판매하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식 선술집을 지양하던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방역 완화와 함께 다시 늘고 있다. 

잠깐 주춤했던 일본 완성차 업체의 국내시장 확대는 초읽기다. 친환경 분위기에 맞춰 하이브리드 강국인 일본의 자동차들이 일본불매가 사라진 국내 시장에서 다시 자리 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시각이다. 일본 토요타 그룹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는 지난해 국내 판매 8위에 올랐다. 토요타가 그 뒤를 이어 9위에 올랐고, 혼다는 11위를 기록했다. 

한때 일본불매로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LCC 업체들이 일본행 여객 확대로 노선을 늘리는 등 다시 날개를 펴고 있다. 주가도 덩달아 오르고, 해외여행 수요 확대에 여행사와 공동으로 관광 상품 확대에도 나섰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한국시장 수요 확대를 위해 안간힘이다. 주류와 의류도 마찬가지. 언제까지고 일본불매가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업계에서 일본여행이나 일본 제품들의 기존 실적이 회복되면, 상품의 가치로 대결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매가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펼칠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풀이다. 

[이창환 기자]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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