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성 훼손이 핵심 탄핵 근거
의석수 부족, 야당의 탄핵 공염불 

1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뉴시스]
1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헌정사에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순간이 두 번이나 존재했음에도 장관의 탄핵안이 가결된 적은 없었다. 대통령과 비교하면 장관에 대한 견제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인선 동력을 상실시키거나 공식적인 해임 건의안을 발의할 수도 있다.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크다면 행정부에서 개각을 단행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장관의 평균 재임 기간은 13개월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6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75년 만에 처음으로 국무위원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에 본지는 무산된 3명의 장관 탄핵 추진 사례를 통해 과거 장관 탄핵 시도 사례의 근거와 실패 원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총선 필승 외친 정 장관 

이 장관 이전의 장관에 대한 탄핵 논의가 이뤄진 사례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존재한다. 세 장관의 탄핵 근거의 핵심은 모두 국무위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2015년 8월 25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 자리에서 "(제가) '총선'이라고 하면 '필승'이라고 해달라"고 말한 뒤 건배사를 외쳤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즉시 정 장관의 건배사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함과 동시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후 정 장관은 2015년 8월 28일 덕담이었을 뿐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며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깊이 유념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2015년 8월 31일 탄핵안의 추진을 결정했지만 실질적으로 탄핵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헌법 제65조에 따르면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당시 의석수는 119석에 불과했으므로 탄핵안은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더불어 2015년 9월 14일 선관위는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결론 냈다. 그러나 정 장관에 대해선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선거 중립을 의심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국회법 제130조에 따르면 탄핵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72시간 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하며, 기간 내 표결하지 않을 경우 자동 폐기된다. 정 장관의 탄핵안은 2015년 10월 12일 본회의에 보고됐으나 실제 표결이 진행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한국당 제외 예산 처리 홍 부총리 

자유한국당은 2019년 12월 12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특정 정치 세력의 사주를 받아 국가 재정을 정치적 목적으로 거래하는 예산안에 동조했다는 근거로 탄핵안을 발의한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112석의 의석수를 보유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추진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및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견제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한국당은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꺼내 들며 극한의 대치 상태에 직면한다.

당시 여·야의 대치 속에서 2020년도 예산안마저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긴 상태였다. 홍남기 부총리는 민주당에 정기국회가 종료되기 전인 2019년 12월 10일 안에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완료를 요청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 함께 '4+1' 협의체를 구성해 예산안 처리를 진행했다. 

당시 한국당 소속인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한국당을 제외한 채로) 기재부의 예산명세서 작성 결과가 나온다면, 추가된 예산 항목마다 담당자를 가려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와 정치관여죄로 고발하겠다"라고 밝혔지만 민주당과 군소정당의 4+1 협의체는 홍 부총리가 요청한 2019년 12월 10일에 예산안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당은 즉시 총 부총리의 탄핵안을 발의했으나 표결시한이 지나 자동 폐기됐다. 탄핵이 무산된 다음 날인 2019년 12월 27일 한국당은 다시 홍 부총리의 탄핵안을 발의한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탄핵안이 발의된 후 72시간이 지나는 2019년 12월 30일 5시 40분을 피해 6시에 본회의를 개회했다. 이에 따라 홍 부총리의 탄핵안은 다시금 자동 폐기된다. 

'항명 파동' 추미애 전 장관 

한국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임명 9일 만인 2020년 1월 10일 탄핵안을 발의한다. 한국당은 "추 장관이 조국 전 장관 일가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 및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책임자급 검사를 검찰총장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인사 이동시킴으로써 검찰의 정부·여당 관련자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는 보복성 인사를 취임하자마자 단행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주요 참모진인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이두봉 대검 과학수사부장, 박찬호 공공수사부장 등을 지방으로 발령하는 인사발표를 했다. 한국당은 이를 두고 검찰 인사에 대한 숙청과 탄압이라고 비판했으며 추 장관은 윤 총장에게 인사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음에도 이를 거절했다며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한국당의 탄핵안은 발의 이후 72시간 내에 본회의가 개회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으며 이후 2020년 7월 20일에 미래통합당은 추 장관의 탄핵안을 재발의했으며 처음으로 장관에 대한 탄핵안 표결이 진행됐다.

표결이 진행된 2020년 7월 20일 본회의에서 탄핵안 제안 설명자로 나선 배현진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법무부 장관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수호자로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특정 정파가 아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서도 안 되며, 정치권력을 비롯한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성실히 사법 체계를 맡은 공무원"이라며 "그러나 추 장관은 직무 집행에 있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의미를 위반했다"라고 탄핵 근거를 밝혔다.

당시 통합당의 의석수는 103석에 그쳐 가결 가능성은 적었으며 실제 표결 결과 추 장관 탄핵안은 찬성 109표, 반대 179표로 부결된다.

의석수에 달린 성패 

세 번의 장관 탄핵 실패 사례에서 나타나듯 여소야대의 정국이 형성되지 않는 한 장관에 대한 탄핵안은 무딘 칼에 불과하다.

저명한 헌법학자인 고(故) 문홍주 교수의 1971년 공법연구 제1집 탄핵제도에 따르면 "여당이 국회의 다수당이 되지 못하고 군소정당이 난립하거나, 또는 이례적으로 야당이 국회에서 다수를 점하는 경우에만, 탄핵은 국회가 가지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탄핵의 본질은 오늘날과 같은 정당 국가에 있어서는 정치적으로 국회가 가지는 통제권이라기보다 ‘야당의 무기’라고 보는 것이 솔직한 본질 파악이다. 만일, 탄핵을 이런 견해에서 볼 때, 우리 헌법의 탄핵 규정은 너무 안이하게 제정된 감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이후 단일 야당으로는 최다 의석수인 169석을 보유 중이므로 이례적인 상황에 해당한다. 

국회에서는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지만 탄핵에 대한 민심은 다소 온도 차가 나는 상황이다.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지난 6~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으므로 탄핵해야 한다’는 답은 40.4% ‘정치적 공세이기 때문에 탄핵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48.2%였다. 과거 장관에 대한 탄핵안은 항상 공염불에 그쳤으나 이 장관의 탄핵안은 이미 가결됐고 선택권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정사상 최초의 장관 탄핵에 대한 헌재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된다.

※ 상기 여론조사와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SBS 홈페이지 참조.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