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동산'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던 1996년, 당시 검사였던 강민구 변호사는 그 날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신이다'에서는 강 변호사가 수사했던 최낙귀와 강민경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창환 기자, 강민구 변호사]
'아가동산'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던 1996년, 당시 검사였던 강민구 변호사는 그 날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신이다'에서는 강 변호사가 수사했던 최낙귀와 강민경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창환 기자, 강민구 변호사]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지난 3일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에 오르고, 5일 만에 국내 1위에 등극한 넷플릭스 시리즈물은 다름 아닌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이었다. 그 중 5부와 6부를 통해 공개된 ‘아가동산’ 역시 다른 사이비 종교 이야기처럼 충격적이었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 속, 돼지우리에 묶인 채 돼지 똥을 삼켜가며 뽕나무 매질에 맞아 죽은 5세 아이, 최낙귀. 그로부터 10년 만에 아가동산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 ‘김기순’을 쫓아 법의 심판대에 세웠던 당시 담당 검사 ‘강민구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낙귀의 죽음에 대해 김기순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던 당시(1996년) 관련법의 한계를 안타까워했다.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포항제철소 쇳물에 사람을 밀어뜨려 죽여도 사체가 없으면 무죄입니까”

- 아가동산 급습하며 살펴본 현장 어땠나?
▲ 당시 수사팀은 기초 조사를 충실히 했다. 관련자(탈퇴자) 등을 통해 충분한 신빙성이 있다 생각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고 갔다. 깜깜하고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매우 넓었다. 많은 건물들이 있었고 굉장히 큰 대학교 캠퍼스 같았다. 당시 경기도에서 수십억 원을 지원받아 지은 유리하우스(식물 재배용)까지 포함해 거대한 자신들만의 성을 이루고 있었다. 

- 김기순의 왕국? 
▲ 그곳은 작은 나라였다. 김기순이 왕인 왕국이었다. 사법·행정·입법이 모두 있었고 최종 결정권자는 김기순이었다. 당시 ‘리틀 북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아가동산 사건을 수사하니 북한이 이해되더라. 주민들은 김일성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며 3대가 내려오기까지 추종하고 있다. 아가동산이 그래 보였다. 북한을 벤치마킹해 자기 부모를 고발하기까지 하는. 결국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메카니즘을 여실히 보여준 종교집단이었다. 

- 아가동산 거주자들은 어땠나?
▲ 인간에게 SD카드가 있다면 그것을 뺀 사람들 같았다. SD카드를 빼내고 그 자리에 자기들만의 칩을 집어넣었다. 조종 받는 인격체였다. 자기 의지가 상실된 채 누군가에 의해서 리모트 컨트롤 되는 피지배층이었다. 그래서 모정마저 짓밟혔던 것이라고 봤다. 이 세상에서 엄마의 사랑만큼 큰 사랑이 있겠나. 그런 엄마의 사랑마저 뭉갤 정도의 지배가 있었다. 칩을 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자식대신 맞거나 대신 죽는 것이 부모인데. 그런데 자기 자식이 맞아 죽었는데도 심부전증이라고 하나. 5살짜리가 무슨 심근경색이 있겠나.

- 낙귀 사망 사건 어떤 배경
▲ 그 사건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2~3일간 돼지우리에 가뒀고, 두들겨 팼고, 물과 음식을 안줬다. 그리고 8월 찜통더위에 세균덩어리인 돼지 똥을 입에 넣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인데 입에 똥을 집어넣고, 뽕나무로 매질을 했으니 건장한 20대 바디빌더라도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5살 고사리 같은 아이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은 징계 차원을 넘어섰다.

- 현장검증 재현하던 사람들은?
▲ 아가동산에서 탈퇴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영혼이 없는 것 같았다. 폭행 상황 재현하면서도 아무 감정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 안에서 하루에 16시간 일하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신나라레코드. 내가 조사하면서 깜짝 놀랐던 것이 16시간 일하면서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답하더라. 더 일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휴일도 없이, 그들이 쉬는 유일한 시간은 압수수색 갔던 일요일 저녁 예배 시간뿐이었다. 문제는 그 상황에 불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했다. “더 일을 못 하는 것이 한입니다”라고 했다. 

- 김기순 탈출했는데
▲ 변명같지만, 당시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으로 들이 닥친 곳은 너무 넓었다. 한강에서 모래알 줍듯 찾아 다녔다. 늦은 밤인데다 신도들이 야수처럼 날뛰었다. 그 틈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 사이에 도망갔다. 수백 명의 신도들이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50여명의 수사 인력을 헹가래치듯 집어 던졌다. 보통은 영장만 들고 가도 가만히 있는데, 그들은 여왕벌을 보호하는 일벌 같았다. 탈출시켜줘서 도피한 것도 나중에 알았다. 

- 검찰 조사 받은 김기순
▲ 말을 상당히 잘하더라. 검사 앞에서도 내공과 자기만의 화법으로 당당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유혹당하는지 이해가 됐다. 도망가 있는 동안 변호사들과 사전 리허설을 했겠지만, 똑똑했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할 만큼 세련되게 답변했다. 혹시라도 도주할지 몰라 그걸 막고자 급습한 것이었다. 만일 압수수색 당시에 잡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는 모르나, 결국 이순복의 도움으로 몰래 탈출하면서 대비할 시간을 가진 셈이다. 

- 두 가지 살인사건 기소했는데?
▲ 최낙귀 건은 때린 것은 인정, 죽은 것도 인정, 맞아 죽은 것도 인정. 그런데 살인에 고의가 없고 징계 차원이라고 결론이 났다. 즉 상해치사로 봤는데 당시 상해치사 공소시효가 7년이었기에 공소시효가 지나 무죄가 됐다. 상해치사 공소시효가 7년 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정도라도 인정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 어린 아이를 8월 찜통더위에 굶겨가며 때렸는데 ‘얘가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재판장은 살해 고의가 없다고 봤다. 특히나 때린 사람은 “때려죽였다”고 진술했는데, 정작 피해자(최낙귀)의 엄마는 김기순을 두둔했다. 무죄 가능성을 높인 셈이다. 

- 강미경 건은 어땠나. 그 어머니도 영상에 안 보이던데?
▲ 아마 강미경 어머니는 아직 안(아가동산)에 있을 것이다. 강미경 어머니는 기소 당시에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김기순을 옹호했다. 모정과 부정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강미경 아버지는 정상적인 목사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 있었다. (한숨) 사람들이 “강미경을 때려 죽였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소변까지 싸면서 죽은 것도 봤고, 윤방수가 멍석에 말아서 끌고 나간 것도 봤다. 그런데 진술뿐이었다. 재판부는 ‘사체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인 장면을 봤다고 진술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체를 찾지 못하니 무죄가 됐다.

- 아가동산 수사하면서
▲ 사실 아가동산 사건 맡고서 ‘어떻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엄마의 사랑마저도 저렇게 거짓으로 덮을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까지 조절할 수 있나. 어떻게 인간이 이런 식으로 한 인간(신봉자)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나. 이것은 어떻게 보면 칼로 심장을 찔러 죽이는 살인죄보다 더 악랄하고 잔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강민구 변호사는 강미경 건에 대해 “폭행과 살인현장에서 10여명이 그 상황을 목격했는데도 강미경 건은 사체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죄를 선고했던 재판부를 향해 논고를 펼쳤던 상황을 회상했다. 강 변호사는 당시 재판부에게 “포항제철에서 쇳물에 누군가를 밀어 넣었는데 사체가 사라지면 그 사건은 무죄입니까”라고 물었다. 

강민구 변호사 사무실 한쪽, 당시 사건이 스크랩 돼 있었다. [이창환 기자]
강민구 변호사 사무실 한쪽, 당시 사건이 스크랩 돼 있었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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