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총선 승리를 위한 최고의 지름길은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이다.” 여야 정치권에서 총선을 앞두고 공천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쓰는 말이다. 역대 총선을 돌이켜보면 공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엇갈렸다. 보통의 경우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을 실시한 정당은 손쉽게 선거승리를 거뒀다. 참신한 인재의 발탁과 다선 중진의 물갈이가 효과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극심한 공천파동을 겪은 정당은 패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진박감별사 논란과 옥쇄파동이 대표적이다. 여야 모두 알고 있는 총선승리의 전제조건이지만 현실에서의 적용은 녹록지 않다. 여야 모두 총선 시즌만 되면 공천 난맥상을 겪는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높은 국민적 불신 탓에 과감한 물갈이와 새피 수혈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계파간 갈등과 혼란이 극심이다. 여야, 보수·진보, ·호남이 따로 없었다. 때로는 거센 공천 후폭풍 속으로 당 전체가 침몰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공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천혁명을 통한 총선승리를 노리는 여권 안팎의 분위기를 짚어봤다.

용산 대통령실이 있는 구 국방부 청사 전경. 뉴시스
용산 대통령실이 있는 구 국방부 청사 전경. 뉴시스

- 대통령실, 김기현 체제 중심의 총선승리 주문, 공천개입 의지 차단
인위적 컷오프 없는 경선원칙 윤핵관·영남권 현역 텃밭다지기 분주
- '검사공천설' 설왕설래 속 경선과정 컷오프 가능성 비윤계 전전긍긍

집권 여당의 공천은 늘 고차방정식이다. 대통령이라는 변수 때문이다. 역대 정부 임기 도중 치러진 총선에서는 어떤 식으로는 대통령의 의중이 직간접적으로 공천에 반영됐다. 때로는 승리를, 때로는 패배를 불렀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년 422대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윤석열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의 거대 의석에 가로막혀 사실상 식물정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당이 걸핏하면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외치는 것은 물론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발목잡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괴담정치를 통한 선동으로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엇보다 총선승리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여권 핵심부에서는 전국 지역구 국회의원 전반에 걸쳐서 경선 실시를 원칙으로 하는 파격 카드를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구 경선 원칙에는 윤석열정부 핵심 관계자들도 예외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용산 대통령실의 공천개입 시비와 잡음을 차단하기 위해 김기현 대표 중심의 총선 대비체제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핵관도 예외없이 전지역구 경선당중심 총선체제

윤석열정부는 다급하다. 정권교체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민주당의 발목잡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과도한 스토킹 공세는 물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괴담 정치로 민심을 선동하면서 정권 핵심부를 끊임없이 정조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을 벼르고 있다. 반드시 과반 의석의 원내 제1당이 되겠다는 각오다. 내년 총선에서 패할 경우 윤석열정부 임기 중후반기 역시 야당의 거센 반대로 무기력한 국정운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내년 총선 승리가 유일한 탈출구다.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최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핵관 그룹과 가까운 한 핵심 측근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김기현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전체적으로 책임을 지고 주도하는, 이른바 이기는 총선을 강력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역대 총선 때마다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의 공천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대통령 책임론 차단을 위한 당 중심의 총선 체제 보장 윤핵관을 포함한 모든 지역구의 경선 원칙 등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기현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따라서 실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공천을 받도록 할 것이라며 내년 총선 압승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당 대표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이는 과거 거센 반발을 샀던 일방적인 공천배제, 다시 말해 컷오프는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대목은 지역구 전반에 걸쳐 경선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역대 총선에서는 광주, ·남북 등 호남지역의 경우 보수의 정치적 불모지였기 때문에 국민의힘 후보 자체가 없거나 단수공천이 적지 않았다. 다만 보수의 텃밭이 영남의 경우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등식 탓에 공천경쟁이 극심했다. 특히 전략공천으로 불리는 단수공천이 이뤄지면 공천불복 사태가 벌어지면서 내홍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모든 지역구의 경선체제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불공정 공천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구 경선 원칙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게 용산 대통령실의 강력한 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모든 현역 의원들 또한 지역구 사수와 경선 대비 모드에 돌입했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진 윤핵관 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권성동·장제원·이철규·윤한홍 등 윤핵관 핵심관계자들 역시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본격적인 경선 준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윤핵관뿐만이 아니다. 총선 본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영남권 현역 의원들 또한 서울에서 특별한 국회 일정이 일정이 없으면 지역구로 내려가서 밑바닥 표심 다지기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새들고 나르샤·비례대표 뒤집기국힘전신, 공천후폭풍

윤 대통령을 출국 배웅나선 김기현 대표와 지도부들. 뉴시스
윤 대통령을 출국 배웅나선 김기현 대표와 지도부들. 뉴시스

국민의힘이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에 목을 매는 것은 과거 학습효과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620대 총선에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자중지란 끝에 몰락했다. 미래통합당 역시 202021대 총선에서 그야말로 기록적인 참패의 수모를 당했다. 총선 패배의 원인은 간단했다. 바로 공천파동이었다. 20대 총선의 경우 청와대의 노골적인 개입과 김무성 대표의 거센 반발 속에서 공천파동으로 불릴 만큼 후폭풍이 거셌다. 21대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총선을 앞두고 언론에 공개된 비례대표 명단이 뒤집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조국사태와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문재인정부의 실정에도 미래통합당은 보수정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의 대승이 확실시됐다. 박근혜정부 4년차로 임기말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당 안팎에서 180석 대망론이 불타올랐다. 1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주도한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주도했던 국민의당으로 양분됐기 때문이다. 이는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야권 분열에 따른 새누리당의 반사이익과 어부지리가 가능한 구도였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과반 승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더 나아가 180석 대망론에 이어 200석 이상의 초유의 압승이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무성 전 대표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옥새들고 나르샤라는 희대의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다.현직 대통령과 유력 차기주자의 갈등은 총선패배로 이어졌다. 이후 정국은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보수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21대 총선은 20대 총선의 판박이였다. 문재인정부 4년차에 치러진 총선은 기본적으로 민주당이 불리한 구도였다.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뒤흔든 조국사태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후안무치한 정권의 도덕성에 여론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집값을 잡겠다는 청와대의 다짐에도 규제 위주의 잘못된 정책으로 연일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참여정부 시즌2라는 비아냥과 더불어 민심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코로나19 초창기 과도한 방역 논란에도 민심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미래통합당은 2017년 대선 패배와 2018년 지방선거 참패를 설욕하기 위해 총선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허망했다. 민주당에 180석 대승을 안긴 미래통합당은 허망하게 몰락했다. 유력 차기주자로 대우받으며 총선을 이끌었던 황교안 전 대표는 총선 참패 이후 사실상 정계은퇴 수순을 밟았다. 참패 원인은 역시 공천이었다. 정치초보였던 황교안 전 대표와 보수원로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갈등은 당을 서서히 침몰시켰다. 특히 김형오 전 위원장의 사천 논란에 황교안 전 대표의 막판 뒤집기는 비극의 씨앗이 됐다. 아울러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공천명단 뒤집기도 혼란을 더했다.

국민의힘은 20·21대 총선 공천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각오다. 앞선 2번의 총선에서 선거구도의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공천악몽에 다잡은 총선승리를 놓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정치 특유의 보수우위 지형을 고려하면 합리적이고 투명한 공천은 선거승리의 주춧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지만 야당 또한 자중지란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 공천설화약고용산 대통령실·국힘, 윈윈 가능할까?

윤핵과 양대축 권성동.장제원 의원이 의총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윤핵과 양대축 권성동.장제원 의원이 의총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국민의힘은 총선 승리를 벼르고 있다.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2022년 대선 승리와 지방선거 승리에 이어 내년 총선마저 승리하겠다는 각오다. 의회 다수의석을 확보해서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각오다. 다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별다른 잡음 없이 총선 공천을 매끄럽게 마무리할지는 미지수다. “공천을 잘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단순한 명제를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최대 화약고는 검사 대규모 공천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검찰총장으로 활약할 때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측근 검사그룹이 내년 총선에 전진배치될 것이라는 설 때문이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법무부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위원장 등 핵심 측근들은 대통령실은 물론 권력 주요 포스트에는 파격 발탁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중후반 이후 친정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검사를 대규모로 공천할 것이라는 설은 여의도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만일 검사 공천설이 현실화될 경우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집단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용산 대통령실의 강한 장악력과 위세에 숨죽이고 있지만 낙천을 통해 정치생명이 위태로와질 경우에는 집단 반발도 불가피하다.

김기현 대표는 특정 직업 출신을 수십 명씩 대거 공천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당 대표인 제가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중에 떠도는 검사공천은 근거없는 괴담이라고 일축하면서 용산이 오더해서 검사들을 지역구에 낙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물갈이론에 시달리는 원내외 당협위원장들에게 검사 공천설에 동요하지 말고 총선승리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뛰어달라는 메시지다.

김 대표의 해명에도 경선을 명분으로 컷오프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여의도연구원장에 친윤계인 박수영 의원인 점도 논란이다. 과거 여연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했던 여의도연구원은 역대 총선 때마다 공천실무를 주도했다. 유력인재 영입은 물론 다선 중진 물갈이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여론조사 작업을 실시해왔기 때문이다. 지역구 경선 역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복수후보의 여론조사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강성 친윤인 박수영 의원이 원장이라는 점 때문에 공천과정에 용산 대통령실의 입김이 대거 반영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감이 흘러나온다. 다시 말해 용산 대통령실이 여론조사 중심의 지역구 경선을 통해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대거 지역구에 공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비윤계 일부 의원들의 경우 상당한 경계심 속에서 낙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국민의힘은 과거 20·21대 총선에서 과반 승리가 유력했지만 자멸에 가까운 막장공천의 여파로 민주당에 승리를 헌납한 바 있다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기는 총선이라는 기조 아래 당 중심의 총선준비 체제와 대통령실의 개입 금지라는 원칙을 확립한 것은 내년 422대 총선에서는 과거의 공천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 체제의 불안한 구조가 여전하다국민의힘이 모든 지역구 공천의 경선 원칙이라는 혁명적 패러다임 도입에 성공할 경우 내년 총선을 둘러싼 여야의 주도권 다툼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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