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운영의 쉼표, 대통령의 휴가지 조명
이승만·김일성의 '화진포'·정국 구상의 '청남대'·朴 대통령 부녀의 '저도'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2013.7.30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2013.7.30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부터 6박 7일간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온갖 격무에 시달리는 대통령에게 있어 휴식은 필수적이다. 혹자는 대통령은 휴식마저도 정치적 의미가 내포된다고 한다. 대통령은 넥타이 색감마저도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지는 자리다. 따라서 대통령의 휴가 시점과 장소 선정 또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은 휴식을 통해 다음 정국을 구상한 만큼, 휴가조차도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역대 대통령들이 머무른 쉼터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고민과 역사가 함께 남아 있곤 한다.

이승만·김일성의 별장이 나란히, '화진포'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에는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이 위치한다. 이 전 대통령 부부가 수시로 방문한 화진포 별장은 1954년 건립됐으며 1961년부터는 방치된 채 남겨진다. 

그 뒤 1997년 육군이 재건축에 착수해 1999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한다. 현재는 이 전 대통령의 집무실 및 침실을 재현해 놓은 상태이며 이 전 대통령의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 중이다. 별장 뒤에는 이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와 의복 등을 전시한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이 조성됐다. 

아울러 이 전 대통령의 별장 주변에는 근현대사 속 동지와 적수의 별장도 나란히 존재한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별장과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화진포의 성’이라고 불리는 김 주석의 별장은 1938년 캐나다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의 의뢰로 독일인 H.베버가 건립했다. 그 뒤 1948년부터 김 주석 일가가 해당 건물을 별장으로 사용했으며, 1964년 육군에 의해 철거된다. 

자유당의 2인자 고(故) 이기붕 전 부통령의 별장은 이 전 대통령과 김 주석의 별장 사이 호숫가에 위치했다. 화진포의 세 별장은 1999년 육군이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조한 뒤 현재까지 일반에 공개 운영 중이다. 당시 육군은 휴전선 인근의 화진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안보와 민주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별장을 개조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국 구상의 쉼표, 청남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위치한 '남쪽의 청와대' 청남대는 민주화에 얽힌 대통령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여한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청호 일대의 경관에 매료됐다. 이에 5공화국의 2인자인 장세동 전 경호실장은 1983년 6월 청남대 건립을 지시했다. 

청남대는 착공 6개월 만인 1983년 12월 완공됐다. 조성 당시에는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빈관 개념으로 '영춘재'란 명칭으로 준공됐으나, 1986년 전 전 대통령에 의해 현재의 청남대로 개칭된다. 그 뒤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와 명절휴가 등 연 4~5회 많을 경우 7~8씩 이용해 20여 년간 총 88회 방문, 471일을 청남대에서 보냈다.

이렇다 보니 역대 대통령들은 청남대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다음 개각과 정계 개편을 단행한 경우가 많아 '청남대 구상'이라는 별칭도 생길 정도다. 전 전 대통령은 1985년 여름 청남대에서 민주화 시위를 봉쇄하기 위해 '학원 안정법'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야당과 대학가의 반발이 거세지자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남대 구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는 '금융실명제' 발표를 앞둔 1993년에도 청남대를 찾아 마지막 정리에 몰두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청남대에서 3박 4일을 보내며 전 전 대통령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한 계기가 된 '역사 바로 세우기'의 구상하기도 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 동안 청남대를 즐겨 찾은 바 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청남대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알려졌다. 청남대와 낚시의 이야기는 김 전 대통령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로도 이어진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후 다음 해 1월 1일,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원장을 청남대로 불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박 전 원장에게 동교동계의 해체를 선언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청남대를 일반에 개방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관련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후보 시절 노 전 대통령을 돕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시 청남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라'는 것과 '개방 직전에 그곳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그 뒤 2003년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이행해 청남대를 일반에 공개했다. 

朴 대통령 부녀의 추억이 담긴 '저도'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에 위치한 저도도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던 별장 중 하나다. 원래 저도는 일본군이 1920년부터 통신소와 탄약고로 사용했으며, 1950년부터는 주한 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됐으며, 1954년부터는 이 전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됐다. 

그 뒤 1973년 저도에는 '바다의 청와대'로 불리는 청해대가 완공돼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됐다. 박 전 대통령은 저도에서 어린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상징'이란 이유로 1993년 청해대를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했다. 

청해대가 대통령의 별장으로 다시 쓰인 것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시기부터다. 취임 첫해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과장 시절 청해대 건물 공사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대통령이 돼서 다시 올 줄 알았으면 그때 별장을 좀 더 크게 지을 걸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에 이어서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저도를 방문해 백사장에 나뭇가지로 '저도의 추억'이란 글귀를 남겼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 취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저도 개방을 약속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후 2019년 9월부터 일부 개방됐다. 아울러 2022년부터는 대통령의 별장인 청해대도 외부 관람이 가능해졌다. 

윤 대통령도 올해 여름휴가를 통해 저도를 방문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저도 방문을 검토했지만, 국정 지지율 및 현안을 고려해 서초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바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도 저도를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도 여름휴가를 통해 소폭 개각 및 광복절 특사 그리고 한미일 정상회담 등 정국을 구상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