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 승객 만나도 ‘어르고 달래기’
강제로 제압할 법적 권리 없어

지하철보안관은 지하철 역사와 지하철 차량 내부를 매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2교대로 순찰하며 승객의 안전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이창환 기자]
지하철보안관은 지하철 역사와 지하철 차량 내부를 매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2교대로 순찰하며 승객의 안전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이남식(가명) 대리는 2016년부터 서울교통공사 고객지원팀에 근무하고 있는 지하철 보안관이다. 지하철 보안관의 업무는 불법 판매상 단속이나 불법 광고물 배포 저지 등 시민 불편 해소를 넘어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일까지 폭이 넓다. 특히 최근 들어 흉기난동 관련 사건이 신림역, 서현역 등 수도권 주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발생하자, 내부적으로는 범죄 예방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19일에는 홍대입구역에서 합정역으로 가던 2호선 지하철 내에서 한 50대 승객이 흉기를 휘둘러 2명이 부상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또 8월29일에는 등촌역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밀어 넘어뜨리고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 대리는 지하철보안관이지만, 이런 상황에도 가해자를 제압할 권한이 없다. 혹 거친 몸싸움이 발생하거나, 난동 취객을 제지하다가 오히려 고소당할 수도 있다. 흉기난동 발생 앞에 속수무책인 지하철보안관의 ‘특별 사법권’ 논란이 재점화 되는 이유다.

지하철보안관, 난동 승객 있어도 자제 요청 외 경찰 출동 전까지 강제 못해

국토교통부 소속 철도경찰 및 산림청 소속 산림경찰 특별사법권에 체포 가능

경찰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사태나 취객 난동 등을 제지할 수 있다. 때에 따라 범죄 예방을 위해 소요를 일으킨 이들을 제압하고 체포할 사법권한이 있다. 이는 경찰의 기본 업무인 치안 유지, 교통정리, 순찰, 각종 범죄 예방 및 범죄자 검거 등과도 연계된다. 또 각종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 따른 수사 범위까지 업무가 이어진다.

하지만 지하철보안관은 경찰과 달리 어떤 사법적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지하철보안관은 일반 시민과 동일한 여건에 놓여 있다. 만에 하나 지하철 역사나 객차 내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가해자를 제압할 수 없고, 난동 부리는 취객이 있다하더라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들을 말리고 승객 피해가 없도록 제지할 뿐이다. 이른바 ‘어르고 달래는’ 수준이다.

반면 유사한 업무 환경에 있으면서도 경찰처럼 사법권한을 가진 직종이 있다. 바로 국토교통부 산하의 철도특별사법경찰대. 속칭 철도경찰로 잘 알려져 있는 이들은 철도교통의 안전 유지와 철도 관련 지역 내 방범 및 순찰 활동을 주로 한다. 또 철도와 관련된 관할 구역 내에서의 대(對)테러 예방 활동을 비롯해 비상 상황 발생 시 대응할 사법권한도 갖는다.

국토부 산하의 철도경찰 외에 산림청 산하에도 특별사법경찰이 있다. 이들은 산림특별사법경찰(산림경찰)로 불린다. 산림경찰은 지방 검찰청의 지명을 받아 범죄 수사 권한을 가지게 된다. 전국적으로 매년 수천 건의 산림범죄가 발생하는 것과 관련해 범죄 수사 및 체포, 피의자 및 참고인 조사 등 경찰과 동일한 수준의 권한을 갖고 있다.

흉기난동 범죄자 마주 해도 강제 제압할 권한 없어

최근 들어 지하철역이나 차내에서 각종 범죄 발생 가능성을 두고 시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미 수차례 발생했던 무차별 흉기난동 관련 뉴스를 접하거나 이를 전해들은 시민들은 일상에 경계가 가득하다. 특히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흉기난동 예고 글이 이어지거나 일부 검거까지 되는 상황이 불안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하는 지하철은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대중교통으로 앞서 언급한 사건 외에도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밀집 공간의 특수성 등으로 몰래카메라 촬영 등의 성추행 사건을 비롯해 야간의 취객 난동 및 승객 간의 시비도 이어진다. 불법 판매상이나 종교 활동 등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과 실랑이도 있다.

이런 상황 발생 시 지하철보안관은 신고 받고 현장에 출동해 사태를 수습하거나, 상시 순찰을 통해 발견한 상황을 해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난동을 부리거나 폭행을 행사하는 승객을 마주해도, 몰카범을 시민들이 발각한 현장에서도 이들에 대한 강제권이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경찰 신고 후, 경찰 출동 때까지 범죄 의심자의 현장 이탈을 막는데 그친다.

지하철보안관 순찰 현장 직접 따라 나서보니

지하철보안관의 근무 시간은 07시부터 다음날 01시까지로 2교대로 돌아간다. 통상 2인 1개조로 편성돼 지하철역사(驛舍)와 열차에 탑승해 직접 순찰한다. 지하철보안관의 현장 업무를 일부라도 살펴보고자 취재진이 나섰다. 지난 8월31일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만난 지하철보안관은 ‘지하철보안관’이라고 새긴 방검복과 방검장갑, 전자충격기 등 안전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태권도나 유도 등 무술 단증을 보유한 유단자에 가산점이 주어지는 업무 특성상 한국인 남성 평균을 넘어서는 체격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객지원 관련 부서에 편성되는 지하철보안관은 취재진을 만날 때 미소를 띈 밝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순찰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빛이 바뀌었다. 뚝섬역에 들어선 지하철의 마지막 칸으로 올라탔다.

10량으로 편성된 지하철의 10-3문으로 올라타면서 끝 쪽으로 살핀 후 재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과 동시에 지하철 차량 내 창가의 부착물 및 승객 주변 수상한 물품은 없는지 탐색해 나갔다. 10호차에서 9호, 8호, 7호를 넘어 1호까지 좌우 살피며 전진했다. 뒤따르는 취재진은 경보 선수로 출전한 듯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가속 및 굴곡구간에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지하철보안관은 묵묵히 1호까지 이동했다. 맨 앞 칸 도달 후 지하철보안관은 좌우 문에 마주 서서 승객들을 한 번 더 살핀 뒤 하차했다. 점심시간이 되기까지 오전에만 대략 30~40편의 차량을 탑승한다하니,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역사 내부도 살피고, 차량의 순찰 규칙도 있는 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황 발생 시 강제력 필요… 개정안 발의 재논의

이날 동행했던 지하철보안관 A씨는 “13년째 근무하다보니 불법 판매물을 들고 올라오다 적발되는 경우, 수차례 발각으로 얼굴을 알아보는 분도 있다”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한 주 3차례의 몰카범 적발 사례가 있었다”라면서 “경찰 신고 후 그들과 현장에서 대기하지만 도망가는 분도 있고, 사실을 부정하는 분도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승객 B씨(20대 남, 성수동 거주)는 취재진에게 “지하철보안관도 경찰과 동일하게 체포하거나 범죄자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면서 “시민 입장에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매순간 경찰이 시민 옆에 있지도 않은데 지하철에서 불상사가 생길 때 보안관이 그럴 권한도 없으면 누가 시민을 지키나”라고 되물었다. 현행법상 지하철보안관의 범죄예방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하철보안관은 업무 시간에 따라 실제 몸싸움이 발생된 사례도 종종 보고된다. 이에 재판까지 진행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출퇴근 시간에 혼잡한 경우는 승객 간의 불쾌한 마찰도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수습하러 나서는 것도 지하철보안관이다. 취객 난동이 있을 때면 최대한 승객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강제할 수 없어 방어하며 경찰 출동을 기다린다.

서울교통공사는 2011년부터 서울시 및 도시철도 운영기관과 ‘제한적 사법권 부여’를 호소해 왔다. 이에 지난 18대 국회부터 발의도 있었으나, 계류 상태. 2015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하철경찰대(경찰 소속)가 이미 범죄예방을 담당한다”라면서 “민간인 사법권 부여는 적절치 않고, 현행범은 누구나 체포할 수 있어 개정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이어지는 각종 이상동기범죄나 강력 범죄 등으로 지난 4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등 11인이 해당 법안의 일부개정안을 다시 제출해, 법사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잦은 흉기난동 및 각종 살인예고 글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라도 지하철보안관에 대한 제한적인 사법권을 부여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사법권 부재로 범죄에 적극 대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피해는 시민에게 전가될 수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입법부뿐 아니라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알리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서울시 지난해 지하철 총 이용건수는 18억8000만 건, 일평균 이용건수는 516만 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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