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변제금 무이자 장기대출 고작 2건…실효성 '한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조합원들이 지난 9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정부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및 피해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시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조합원들이 지난 9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정부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및 피해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이후 약 1년의 세월이 지났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에 이어 수원 건축왕 전세 사기 사건 또다시 인천 전세 사기 사건(본지 보도 38면 참조) 등이 쟁점이 됐다.

현재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사건 고소·고발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재발이 되지 않도록 법이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2일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과도한 요건 적용 등 사각지대를 방치하면서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국토부 실태조사 뒷전, 다수·사기 의도 증명 '이중고'…. 시스템 개선 필요
- 전세보증금 지급 거절 182건, 금액만 359억…보증보험 지급 거절 급증


지난 10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북구갑, 국토위)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전세 사기 피해자 결정 부결 현황’에 따르면 피해자 결정 과정에서 94%(530건)가 특별법 제3조 제1항 제1호 ‘다수’와 제4호 ‘기망 · 사기 의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 반쪽짜리 전세 사기 대책 피해자 절망

특별법 제정 당시 ‘다수’의 피해 발생을 증명하기 어렵고 임대인의 ‘사기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특별법 논의 당시 막판에 제외된 ‘선구제 후구상' 방안 대안으로 최우선변제금만큼 무이자 장기대출을 하는 대책이 포함됐지만 이것 역시 지난 4개월간 실적이 단 2건에 불과했다.

타 대출 정책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공매가 완료될 때까지 저리로 대환대출을 해주겠다는 정책은 신청 401건 중 391건이 처리됐고, 신규전세 희망자에게 제공하는 저리 전세대출은 신청 269건 중 처리는 83건에 그쳤다.

보증금을 받지 못해 전세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신용 불이익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분할 상환은 고작 24건에 불과했고, 피해자가 신규주택을 구입하거나 피해주택을 낙찰받을 때 이용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은 각각 12건, 6건으로 실적이 저조했다.

더구나 국토부는 아직도 전국적인 전세 사기 피해 실태조사를 못 하는데다 전세 사기 피해자 등 결정 신청을 한 피해자만 피해 규모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앞서 지난 5월 10일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의 회의록에서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이 법이 통과되면 더 본격적인 실태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조오섭 의원은 “국토부가 시행하고 있는 전세 사기 대책은 ‘빚 내줄 테니 미반환 보증금에 대한 떠안으라.’라는 무책임한 행정이다”라며 "지금이라도 ‘선구제 후구상’ 방안을 논의해 피해보증금 전액은 아니더라도 더 많은 금액을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일 피해자들은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건축왕' A씨 일당의 조직적인 수법에 대해 신속하게 조사하고 그들의 은닉 재산을 빠르게 찾아내 달라고 수없이 호소했다"며 "그런데도 벌써 1년도 더 되는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A씨 일당은 지금도 혐의를 부인하며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면서 "A씨 일당 모두에 대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 범죄수익을 반드시 몰수, 추징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533가구의 전세보증금 약 43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건축왕' 60대 건축업자 A씨 등 일당 35명을 사기 등 혐의로 지난 6월 기소했다.

검찰은 A씨가 다수의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이를 총괄하는 '중개팀'을 두는 등 체계적인 조직관리를 통해 전세 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저질렀다고 봤다.
이에 검찰은 일당 중 18명에게 국내 전세 사기 사건 중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지만, 피해자들은 공모자 전원에 대한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의 첫 재판은 지난 5일 인천지법에서 열렸다.

- 전세 사기 심각한데 … 보증보험 지급 거절 급증

또한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가 보증사고를 당하고도 보험금을 받지 못한 건수도 최근 5년간 182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간 전세보증보험 가입 후 보험 지급 이행이 거절된 건수는 총 182건이었다. 이렇게 거절된 보증 금액 규모는 359억 83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전세 보증보험 이행거절 건수는 ▲2019년 12건 ▲2020년 12건 ▲2021년 29건 ▲2022년 66건 ▲2023년 1~8월 63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거절된 보증 금액 역시 ▲2019년 27억 5100만 원 ▲2020년 23억 3900만 원 ▲2021년 68 억 8200만 원 ▲2022년 118억 1300만 원 ▲2023년 1~8월 121억 9800만 원으로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0월 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건축왕 남모씨 등 공모자 전원의 범죄단체 조직죄 확대 및 은닉재산 몰수, 추징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0월 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건축왕 남모씨 등 공모자 전원의 범죄단체 조직죄 확대 및 은닉재산 몰수, 추징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거절 사유로는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 상실(임차인의 전세 계약기간 무단전출 등) 65건(116억 4400만 원 ) ▲보증 효력 미발생(전입 미신고 등) 30건(61억 7600만 원) ▲사기 또는 허위의 전세 계약 87건(181억 6300만 원)등이었다 .
이 가운데 '사기 또는 허위의 전세 계약' 의 경우 보증 요건을 충족할 목적으로 실제 계약 내용과 다른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대출 목적으로 실제 보증 금액보다 큰 금액의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를 말한다.

HUG가 보증보험 가입심사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사기행위를 뒤늦게 발견한 경우들인데, 올해 들어서만 48건 (98억 2400만 원)이나 거절돼 지난해 16 건(33억 5200만 원)에 비하면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HUG가 전세 보증보험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반환보증을 이용한 전세 사기 피해를 키워놓고, 그 책임은 세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기원 의원은 “임대차 계약 전 임대인의 정확한 정보 확인과 함께 전세 계약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동시에 심사 기준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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